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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톨 Aug 21. 2024

언제 아이를 다 키웠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

이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생각 문제다. 

아들 녀석이 빅뉴스가 있다며 전화를 했다. 

"엄마, 나 00이랑 사귀게 되었어요." 

"가볍게 사귀는 건 절대 아니에요." 


(충격)


처음이라 그럴까? 연애할 여유가 없다는 말을 믿어서였을까?

모자 사이가 너무 돈독해서였을까? 

내면 아이가 화를 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다)


내면에 두려움 많고 질투심 가득한 내면 아이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이 났다.)


나무는 소년을 너무나 사랑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네가 되어주고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서 소년이 웃도록 해줬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 돈이 필요할 때는 자신에게 있는 사과열매를 가져가서 팔도록 했다. 소년은 한참이나 나무를 찾지 않았다. 당연히 나무는 슬펐다. 하지만 소년은 나이가 들어 집이 필요했고 또 나무는 집을 지으라고 나무를 자르도록 했다. 소년은 또 한참이나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소년은 노인이 되어 나무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멀리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려면 배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무는 자신의 둥치를 잘라서 배를 만들어라고 한다. 노인이 된 소년은 배를 만들어 멀리 떠났다. 한참이나 나무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나무는 슬펐다. 시간이 흘러 늙은 소년은 힘없이 나무를 찾아왔다. 나무는 같이 놀 수 있는 그네도 없고 사과도 없어 미안하다고 말한다. 늙은 소년은 자신도 늙어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그는 그저 편안히 앉아 쉬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무는 자신에게 남은 나무둥치를 흔들어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쉬어라는 말을 남겼다. 


다 큰 아이들에게 부모가 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문제는 내가 이런 나무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무 주변에 맹수를 풀고 가시를 설치해서 빼앗기기 싫어하는 나무임을 깨달았다. 

바라지 말고, 준 것은 잊어버리고, 

줄 것이 있는 게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여태껏 인생공부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렵구나. 

난 아직도 아이구나. 


몇 달 만에 아들이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편안히 쉬고 언제나 찾을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공부를 하기로 했다. 

다행이다.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내면의 어린아이를 볼 수 있어서. 


 아낌없이 주는 바보, 준 것도 잊어버리는 부모가 되는 법을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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