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니 이제야 반성문을 쓸 수 있다.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은 철저한 무계획의 결과였다. 아이가 들어선 줄도 모르고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참 열심히도 했다. 운동의 마무리는 전동 마사지 벨트기구, 배에 대고 얼마나 진동을 해댔는지... 그래도 아이는 살아남았다. 워낙 생리가 불규칙적인 몸이었던 터라 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정도의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알게 된 임신 사실은 내 인생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임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출산은 내 인생 최대 변혁이 되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그날, 나는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그 작은 호흡소리가 남편과 둘만 지내던 방안을 꽉 채웠다. 아이는 아토피와 감기로 잠을 자지 못했고 나는 점차 폐인이 되어갔다. 한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식사와 수면 생리작용을 해결하는 것이 이리 힘들 줄이야. 내겐 자유도 없고 인권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 끝났다. 도망도 못 간다.
나는 이 아이에게 존재하는 단 한 명의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공부도 안 했고 시험도 안쳤고 자격증도 안 땄는데 말이다.
춥고 바람 부는 겨울밤, 아이는 뭐가 불편한지 얼굴이 빨간색이 되도록 울어댔다.
나도 목놓아 울었다. 그 전날까지 내가 잠을 잔 시간이 8시간도 안되었다.
남편이 12시 넘어 퇴근하고 돌아왔다. 아기와 내가 목놓아 우는 장면을 멍하게 서서 바라보았다.
나와 함께 울던 아기는 이제 23살의 건장한 청녕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의 쓴 맛을 보며 아기를 키웠건만 7년 뒤 또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둘째는 지금 16살이 되었다.
첫 육아를 책으로 배웠고 내 실패로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엄마 아래서 탈 없이 건강한 아들들로 장성한 것을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도 엄마라는 것을 느낀다. 다만 나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수많은 실수와 후회를 남기게 되었다. 내가 참 열심히 성실히 노력했음에도 말이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안 것도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지금 현재 나는 장성한 아들이 독립하는 과정을 옆에서 보며 또 실수를 하고 있고 배워나가고 있다.
내가 아들들을 키우며 저지른 실수들의 바탕에는 나의 잘못된 태도와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칭찬으로 길들이고자 했다.
내 말을 안 들으면 화가 났다.
내가 가진 생각이 아이에게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에게 희생하는 부모라고 생각했다.
독립하기 얼마 전 큰 아들과 불이 꺼진 침대에 누워 예전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러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엄마가 처음이라 너한테 잘못한 게 많아. "
아들은 말했다.
"아니에요 엄마. 엄마도 처음이었잖아요.
눈물이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수돗물처럼 계속 흘러내렸다.
베갯잇이 눈물로 젖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