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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냐 Apr 14. 2024

[책듣기] 음악 없는 세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발견한 음악

무슨서점 @musn_books에서 선보이는 "한문단클럽"

6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발견한 음악입니다.



책을 열면 외뿔이 솟은 단각수와 험상궂은 문지기가 지키는 완전히 새로운 '도시'가 펼쳐진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이 도시는 소설의 1부, 3부에 나오는데 이때만큼은 음악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조차 "그 도시에서는 음악을 듣고 싶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음악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지도 못했을 정도다." 라고 말한다. 도시는 '음악 없는 세 상'이다. 사람들은 헛되게 욕망하지 않고 관계를 깨뜨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만 유지한다. 시계가 없어도 될 만큼 쫓기지 않으며 단순하고 반복된 일상으로 불안을 없앤다. 이들을 보는 내내 '실리카겔'의 <No Pain> 가사가 생각났다. 'No Pain, No Fail 음악 없는 세상'.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소리로 바꾼 것이다. 결국 음악이 없는 세상은 인간의 고독과 고통 혹은 환희나 설렘이 없는 세상. 어쩌면 외부와 나 사이에 벽을 쌓는 것이야말로 평온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르 겠다. 하지만 생태 사상의 선구자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는 것, 다른 존재들과 밀접한 관계로부터 단절되는 것을 '지옥'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소설 속 환상의 도시는 페퍼랜드Pepperland(비틀스The Beatles '옐로 서브마린Yellow Submarin에 나오는 이상향)인가, 지옥인가. 여전히 답을 알 수 없기에,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 그 불확실한 벽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인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나온 음악 듣기



*책 2부의 실제세계에서 언급된 곡들입니다.


P431 

천장 가까이 붙어 있는 소형 스피커에서 데이브 브루벡 쿼텟이 연주하는 콜 포터의 오래된 스탠더드 넘버가 낮게 흘러나왔다. 맑은 물줄기를 연상시키는 폴 데즈먼드의 알토색소폰 솔로 귀에 익은 곡인데 도저히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비록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도 조용한 휴일 아침에 듣기에 어울리는 음악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살아남아온 아름답고 기분좋은 멜로디. 나는 잠시 아무 생각 않고 그 음악에 귀기울였다. 



P434 

그러다 문득 - 마치 발밑의 풀숲에서 갑자기 새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 그 제목을 생각해냈다. 역 근처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던 콜 포터의 스탠더드 넘버 제목을. [Just One of Those Things(흔히 있는 일이지만)다. 그리고 그 멜로디가 의식의 벽에 들러붙은 주문처럼 귀 안쪽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P454 

요트파카 앞면에는 노란 잠수함이 프린트되어 있다. 비틀스의 [옐로 서브마린]이다. 존 레넌이 옛날에 썼던 것과 비슷한 금속테 안경이, 소년의 홀쭉한 얼굴에는 너무 큰 듯 약간 비스듬하게 얹혀 있다. 마치 1960년대에서 이곳으로 잘못 섞여들어 온 것 같다. 



P458 

“이 노래 아세요?” 

“마더 구스의 한 소절이에요. 월요일의 아이는 아름답고, 화요일의 아이는 품위 있고, 수요일의 아이는 수심이 가득….”



P470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역시 편안한 재즈곡이 알맞은 음량으로 흘러나왔다. 제목은 [스타 아이즈]였다. 피아노 트리오의 단정한 연주였는데, 피아니스트의 이름까지는 알 수 없었다. 



P508 

늘 그렇듯 오래된 재즈가 작게 흘러나왔다. 폴 데즈먼드가 알토색소폰을 연주했다. 그러고 보니 이 가게에 처음 왔을 때 데이브 브루벡 쿼텟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 곡에서도 데즈먼드가 솔로를 연주했다. 

“유 고 투 마이 헤드”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중략)

멋진 음악이다. 하얀 눈을 바라보며 듣는 폴 데즈먼드. 



P518 

소에다 씨는 가볍게 소리를 내며 내 책상 위에 잔과 접시 설탕 단지를 내려놓았다. 덕분에 평소에는 휑하고 살풍경한 방에 한낮의 살롱처럼 우아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생겨났다.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가 어울릴 듯한 정경이다.



P554 

라디오를 틀자 FM 방송에서 이무지치 합주단이 연주하는 비발디의 [비올라 다모레를 위한 협주곡]이 나오길래 멍하니 들었다.

라디오 해설자가 곡 사이에 말했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생전에 육백곡이 넘는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작곡가로도 인기를 누렸고 명바이올리니스트로 화려하게 활약했지만. 그후 오랜 세월 전혀 회고되지 않아 잊힌 과거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에 재평가의 기회가 왔고, 특히 협주곡집 [사계]의 악보가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면서. 사후 이백 년이 넘어서야 단번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며 이백 년 넘게 잊힌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이백 년은 긴 세월이다. '전혀 회고되지 않고 잊힌’ 이백 년. 이백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물론 아무도 모른다. 아니, 이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P624 

FM 라디오로 알렉산드로 브로딘의 현악사중주를 들으며 셔츠 몇 장과 시트를 다림질했다. 시트를 다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라디오 해설자는 당시 러시아에서 보로딘이 음악가보다 화학자로 더 널리 알려지고 존경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 그 현악사중주에 화학자다운 부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매끄러운 선율과 부드러운 하모니···· 어쩌면 그런 것을 화학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P663 

가게 안 작은 스피커에서 제리 멀리건의 솔로가 흘러나왔다. 아주 오래전에 자주 들었던 연주다. 나는 뜨거운 블랙커피를 마시면서 기억의 밑바닥을 더듬어 곡명을 생각해냈다. [워킹 슈즈], 아마 맞을 것이다. 피아노리스 쿼텟의 연주, 트럼펫은 쳇 베이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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