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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냐 May 04. 2024

[책듣기] 반쪽

김창완의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에서 발견한 음악

무슨서점 @musn_books에서 선보이는 "한문단클럽"

7회는 김창완의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에서 발견한 음악입니다.


십여 년 전 일이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유재창 선배는 까마득한 대선배, 그러니까 어느 정도냐면 '한국방송작가협회 라디오 연구회'의 장이었다. 한참 막내 였던 나는 회장님을 돕기 위해 연구회 연말 모임 포스터를 만들었다. 연구회의 가장 큰 행사였기에 여러 라디오 디제이 에게 '작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 취합했다. 그때 '아침창(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 SBS라디오)' 팀 에게 받은 건 김창완 아저씨가 직접 그린 자기 얼굴을 들고 "작가님 나의 반쪽"이라고 쓴 메시지였다. 나는 디제이의 반쪽이구나! 그 메시지는 박봉에 개편만 다가오면 늘 불안 했던 나에게 긍지를 심어주었다. 프로그램을 함께 한 적은 없지만 같은 방송국에 있어 아침마다 11층 스튜디오 라운 지에서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허공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던, A4 종이에 펜으로 글을 끼적이던 모습. 그것은 라디 오 센터의 오랜 풍경이었고 23년 간 계속되던 아침 의식 이었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들이 차곡차곡 모여 두툼한 책 으로 나왔다. 김창완 아저씨가 발견한 일상의 이면, 매일의 기록을 오랜 연륜과 통찰로 덖어 맑고 담백하게 우려냈다. 뜨겁게 끓어오르거나 차갑게 식지 않고. 외롭지 않을 정도로 딱 적당한 온기로.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에 나온 음악 듣기


p30 

제가 ‘아니 벌써’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보다 더 많이 연주한 게 있다면 베토벤의 ‘월광’입니다. 진짜 밥숟가락 내려놓으면 연주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습하는데요. 아직 단 한 번도 흡족한 연주를 한 적이 없어요. 


p110 

얼마 전 제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봤어요. 관객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려고 연주하는 것 같다고 하기도 하고, 글렌 굴드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피아노가 이 사람을 연주하는 것 같다는 댓글도 있었어요.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그 누구 아닌 자신을 위해 인생을 연주해보세요. 


p174 

아침에 눈을 뜨니 썰렁한데, 아이유 ‘가을아침’이 귓가를 간지럽혀요. 그 노래에서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구절이 좋아요. 뭐, 아침을 깨우는 게 자명종일 수도 있고 엄마의 고함이나 새들 노랫소리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나의 새아침을 깨운다는 건 그저 하루의 시작 정도의 일이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행복하고 다행ㅅ럽게 감사한 일입니다. 


p180 

(녹음 스튜디오 문을 닫자) 그 정적의 세계는 단절의 세계였으며, 롤링 스톤스의 노래 제목처럼 ‘지구에서 2천 광년 떨어진’ 고독한 세상이었다. 


p206 

아마 좋은 날씨 때문이겠죠. 현관문을 나서면서부터 잭슨 5의 ‘아일 비 데어 I’ll be there’를 흥얼거렸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어렸을 때 어린 목소리로 부른 노래지요. 


p226 

지난주에 드라마 종방연을 마치고 몇몇 후배 배우와 집에 와서 아쉬움을 달래는데 술기운이 도도해서는 또 기타를 치며 놀았지요.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라는 산울림 노래 잇잖아요. 허구한 날 불러대고 요즘도 공연 때마다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인데 그걸 불러줬더니 “첨 들어봐요. 그런 노래도 있어요?”하는 친구들이 있더군요. 충격을 받았죠.


p227 

저희 집 마당에는 고양이 밥그릇 두 개하고 새들 물 먹고 목욕하는 수반이 하나 있는데요. 걔네 와서 노는 것 보면 존 레논의 ‘이매진 Imagine’이 떠올라요. 가사 중에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라는 대목이 있는데 새들, 고양이들이 그렇게 살아요. 


p239 

‘노노레타’는 그 당시 질리올라 칭케티라는 이태리 여가수가 부른 ‘나이도 어린데’라는 뜻을 가진 칸초네였는데, 분필 지우개를 우리들 머리에 털면서 칠성이가 백뮤직으로 늘 부르곤 했다. 우리는 칠성이가 굳이 그 노래를 선곡한 이유를 안다. 그것은 순전히 ‘노노레타’가 ‘너 노랗다.’하고 아주 흡사한 발음이었기 때문이었다. 


p254 

아이큐 200이 넘는 컴퓨터가 곧 등장할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렇게 똘똘한 컴퓨터보다 감사드릴 줄 아는 기계가 더 멋진 기계가 아닐까요? 영원한 봄날을 꿈꾸기보다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봄날은 간다’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게 더 로맨틱하지 않을까요?


p258 

날짜 잘도 간다 하면서 휴대폰 달력을 보다가 문득 시간이야말로 눈물의 씨앗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훈아 씨죠?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가 찾아보니 1969년에 발표됐더군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 참 기가 막힌 가사예요. 사랑을 뿌리고 가꾸었더니 눈물이 막 피어났다는 것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사랑도 씨았이 있다면 그게 시간 아닐까요. 그러니 시간이야말로 눈물의 원천이에요. 


p275 

멜로디도 훌륭하지만 가사가 기가 막힌 노래지요. ‘타임 인 어 보틀 Time in a bottle’이 병 속에서 흘러낭로 것만 같습니다. 문득 병속의 시간, 앞뒤를 바꿔서 시간 속의 병이라 해도 말이 될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비워지는 참기름병, 화장품병, 술병… 병들은 비워지고 가을은 맛있게 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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