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극에 단순한 소동의 나열에서 끝나는 게 무슨 의미일까
<거미집>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영화 하나. 오마쥬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슷해서 <버드맨>의 리메이크라고 하는 게 어울릴.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나?
<버드맨>은 겉에서 보기에 우당탕탕 요란한 소동극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레이어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레이어들은 각각 저마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어려움에서 겪는 그들만의 갈등, 번뇌, 성장의 이야기가 있고 그 레이어들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쌓여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인물들 간의 다이나믹한 관계를 생성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 영화는 마블과 같은 블럭버스터 영화나 고상한 척하는 평론가, 작품에는 관심 없고 스캔들에만 관심 있는 기자 등 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보여주죠.
<버드맨>의 미덕은 결국 그 화려한 원 테이크 촬영의 수면 밑에 숨어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서로 간의 갈등, 예술판(!)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굉장히 높은 밀도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난잡스럽지 않게 밀도 있게 그려내는 건 정말 놀라운 능력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영화는 극히 드물죠.
반면 <거미집>은 안타깝게도 그저 단순한 소동에서 끝나버립니다. 우당탕탕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것들은 거의 대부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의미 없이 휘발되어 버립니다. 결국 이 영화 역시 다른 수많은 한국 영화들이 그러하듯 한국 영화의 인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가벼움이 그저 가벼움만으로 끝나버립니다.
<버드맨> 같은 농도 짙은 영화를 만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죠. 과연 김지운 감독은 그런 높은 수준의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 걸까요. 김지운 감독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게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김지운 감독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씁쓸하고 서글플 뿐. 이 영화를 찍고 김지운 감독은 본인의 영화에 얼마나 만족했을지 궁금합니다.
<거미집>을 보니 <버드맨>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영화적 성취였는지 새삼 다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