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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Feb 25. 2021

여성의 사회 생활 (feat. 미투 운동)

그 당시에 나는, 아니, 우리는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채팅캣 사업을 막 시작할 무렵 내 사업 파트너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에이프릴은 사업상 술 접대를 해야하는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거예요?” 


당시 우리는 서로에 대해 탐색해 가는 과정이었다. 공동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같이 사업을 할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는 사업의 성패는 물론 하루하루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다. 사업을 꾸리는 데는 서로가 가진 전문성이 달라야  도움이 되지만, 바라보는 지향점이 다르면 다투기 마련이다. 마치 부부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집안이 편안한 것과 같다. 


“술 접대? 내가?”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상황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의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사업이든 사회생활이든 잘하려면 술을 잘 마셔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지라 “사업에 도움이 된다면야 그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접대"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까보면 참으로 비슷한 사회 초년 여성들의 경험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들의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종종 혼란스럽다. 직장 상사, 학교 선배, 사업 선배, 투자자, 멘토... 다 마찬가지인데, 단순한 호의인지, 성적 코드가 담긴 초대인지가 불분명한 사건들이 부지기수다. 세상 물이 들 만큼 든, 마흔을 앞둔 내게도 불분명한데, 스무 살의 내가 어떻게 그 차이를 알 수 있었겠는가. 


이십 대 때 컨설턴트로 일할 때, 선배 컨설턴트들은 고객을 만나러 가는 술자리에 종종 나를 동행시켰다. 술을 따르라는 노골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술을 따르는 것은 막내 몫이라 여겼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술병을 들어 열심히 선배와 고객의 잔을 채웠다. 여자 직원들은 다루기 힘들다, 여자 직원들은 회식이나 팀 행사를 하면 도망가기 바쁘다는 등의 말을 듣는 게 싫어, 노래방을 끔찍이 싫어함에도 빼지 못했고, 술을 잘 못함에도 술자리에 빠질 궁리 대신 오늘은 어떻게 잘 버틸지를 고민했다. 


아마도 당신들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라 그럴 수도 있고 비슷한 기억이 너무 많아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그게 뭐 대수냐? 라고  반문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이름, 당신의 직책, 장소, 불빛, 공간에서 풍긴 냄새까지도 또렷이 기억한다. 잊고 싶어도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나는 그 경험들이 매우 불쾌했기 때문이다. 


큰 프로젝트를 마치고 팀원들이 함께 간 노래방에서 어둠 속에 등 뒤를 훑던 손, 같은 방향이라고 택시에 태운 후, 집으로 향하는 내내 내 손을 주물럭 거리던 상사라는 인간. 십수 년이 지난 일임에도 그때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한 것을 자학하고, 되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이 참 기가 막히고, 화가난다. 


생각해보면 명백히 이상한 일인데, 그 당시에 나는, 아니, 우리는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그 밖의 기억들


2005년, 내가 사회초년생으로 첫 발을 내디딘 회사는 I사 컨설팅이었다. 1차, 2차 면접 후, 3차 인터뷰는 전무님과 만나는 자리였다. 그리고 전무님과의 최종 인터뷰 후, 나는 노래방에 초대되었다. 그 자리에는 먼저 입사한 다른 부서의 신입 컨설턴트들과 선배 컨설턴트, 역시 3차 인터뷰까지 마친 또 한 명의 지원자가 있었다. 결국 둘 중에 나만 입사가 결정되었으니, 노래방도 인터뷰의 일부였던 것일까? 


내가 그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면접을 노래방에서 봤다고?” 하며 놀라워한다. 말은 농담처럼 했지만, 마음은 늘 혼란스러웠다. 그 이상한 프로세스에 문제 제기는커녕 “절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실 그것은 사회초년생의 사회생활 서막에 불과했다. 한 번은 여러 컨설팅 부서가 함께 회식하는 자리였는데 전무님이 각 팀 리더들에게 신입 컨설턴트와 짝을 이뤄 춤을 추라고 지시했다. 팀 대항 경쟁이다 보니 경쟁심리가 발동했고, 우리 팀은 일등을 차지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니 뭐 그런 개차반 같은 일이 벌어졌나 싶다. 파트너들은 나이가 많은 유부남이었고, 짝이 된 신입 컨설턴트들은 나를 포함해 갓 대학을 졸업한 이십 대 여성들이었다. 


당시 나는 말 없이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직장 생활을 잘하는 길이라고 여겼던것 같다. 어디서 어떻게 세뇌된 건지 모르지만,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때로는 여성성을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혹은 여성성을 이용하려는 자들을 용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MeToo #미투


2006년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는 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도록 북돋는 “미투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7년, 할리우드를 뒤흔든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의 성추행 사건이 터지자 배우이자 사회 활동가인 알리사 밀라노(Alyssa Milano)는 미투(#MeToo) 해시태그를 사용해 여성 자신들의 경험을 온라인 상에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유명인들이 동참 및 지지 의사를 밝혔고, 그동안 쉬쉬하던 여성들이 하나, 둘 각자의 경험을 해시태그를 달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적 학대를 폭로하고, 성폭행에 대한 인식을 크게 높인 “미투 운동”은 그렇게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마침  그 무렵 한국에서도 스타트업계에 발생한 한 성폭행 사건이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내 경험을 공개하면서, 스타트업계의 리더들에게 이 문제에 침묵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글을 써 페이스북에 올렸다.



떨고있으시죠? (2017년 페이스북에 적은 글)


어렸을 때, ‘언젠가 내가 힘이 세지면, 너희들 다 죽었어!’라고 다짐한 적이 있다. 얼마나 우리가 성추행, 성폭력에 취약한지를 공론화하고자, 개인적인 경험을 털어놓으면, 이십 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술 취한 상사가 무턱대고 손을 잡는 일은 다반사였다. 실제로 정확히 상황과 장소, 이름을 기억하는 사건만 세 건인데, 내가 일하던 회사의 상무, 전무, 선배 컨설턴트였다. 


나는 내가 꽤나 당당하고 쎄 보이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부남 상사가 택시 안에서 이십 대 새파란 부하 직원의 손을 잡을 배짱이면, 그 인간이 미쳤거나, 술이 그를 미치게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스물일곱, 스물여덟의 나는, 이 일을 이슈화 시키기는 커녕, 대부분은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 술 취한 상사가 잡아버린 손을 뿌리치는 방법조차 몰랐다. 


내 과거 보스이자, 멘토인, 나보다 십 년 이상 사회생활을 한 여자 선배는 말한다. 여성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술 취한 남성과 단둘이 있지 않는 거야. (어떤) 남자들은 술을 마시면 X가 되는데, 정신 멀쩡할 때는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을 술을 마시면 하는 거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섭렵한 골드미스 선배의 얘기다. 


선배는 여직원들이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혹은 남자 직원들이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여직원은 바로 집에 보내고 자신도 빠져나온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문제의 해결방법이 여성인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성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닌가요? 라고 하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국에 유독 술을 빙자한 성폭력이 횡행한 것은 솜방망이식 처벌과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하는 마초적 사고방식, 혹은, 술을 마신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악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라고 직장 혹은 프로페셔널한 관계에서 성추행과 성폭행이 없지는 않지만, 처벌과 사회적 매장이 두려워 알아서 조심한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성폭력 가해자에게 좀 더 과중한 처벌 및 사회적 매장이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잠재적 성폭력의 위험 때문에 술자리를 피하는 것처럼, 남성은 처벌이 무서워서라도 미리미리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되기 전 자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폭행은 한 사람의 몸과 정신을 황폐화하는 심각한 악이다. 작은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언론도 주목하는 이런 일이 스타트업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 조용한 것은 정말 유감이다. 물론 어쩌면 사건을 잘 모르고 있고, 피해자의 상황을 잘 공감할 수 없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 죄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스타트업 업계의 선배님들도 이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혀 주셨으면 좋겠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방어기제가 없는 상태의) 약자를 상대로 하는 모든 폭행은 근절되어야 하며, 특히 영혼까지 상처 내는 성폭력은 어떻게든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고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다.




풀어야 할 문제, 그러나 어려운 문제


이십 대의 나는 나이 많은 남자들, 선배든, 상사든, 멘토든, 그들이 내게 보이는 순수한 호의와 성적 코드가 뒤섞인 은밀한 초대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이 없었다. 나는 호의를 오해하고 싶지 않았고,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려웠다. 때문에 헷갈리는 상황에 직면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막고자 내가 이 사람에게 이용 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특별하고 매력적인가보다'라고 내 편리한 대로 해석했다. 불쾌감을 가슴에 새기는 것보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편이 훨씬 쉬웠다. 그때는 그런 “편리한 생각”이 남성들의 행동을 부추겼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당시 주변에 털어놓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배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내가 혹시 오버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대신, “네가 불쾌하게 느꼈다면, 성추행이 맞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더라면 내게 일어난 사건을 조금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네가 겪은 일은 네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여성이 연대해 싸워야 할 문제라는 것을 누가  알려 주었더라면, 선배에게, 상사에게 이쁨받고 사회생활을 잘하고자 애쓰는 나와,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해 나가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나 사이에 덜 후회하는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마흔을 앞두고 돌이켜보니, 스무 살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보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론은 이렇다. 


하나. 네 허락 없이 상사가 네 몸에 손을 댔다면 그것은 명확한 성추행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오버하는 거 아닌가”하는 고민은 하지 말자. 


둘. 네게 가해진 폭력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너는 암묵적으로 상사의 행동을 부추기는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말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게 일어난 문제를 예외로 생각하지 않고 시스템 문제로 인식해 그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할 때 세상이 변한다. 


셋. 살다 보니 흑백이 분명한 일보다 그레이한 영역의 일이 훨씬 더 많다. 상대도 처음부터 나를 성적 대상으로 보고 식사에 초대한 것은 아닐 수 있다. 나도 상대도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관계가 소중할수록 분명한 선 긋기는 도움이 된다. 


넷.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데 사회는 유난히 남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여자에게 주홍글씨를 씌운다. 여성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있다. 남자들이 비즈니스를 성사시키기 위해 힘 있고 돈 있는 자에게 굽신거리고, 접대 골프를 나가는 것과 여성 대표가 투자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투자자의 술자리 초대를 응하는 것 사이에 나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자기 뜻대로 당당히 행동할 때 그 거래는 공정한 거래가 된다. 


다섯. 성폭행의 피해자가 되레 내가 잘못한 게 뭐였을까를 고민하도록 만드는 여성들의 자기검열은 학습의 결과이며 이는 사회가 여성에게 가한 성폭력이다. 


이제 이 질문에 조금 쉽게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업상 술 접대를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덧붙임)


현 미국의 부통령 카멜라 해리스가 바이든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선거를 치를 때, 여러 스캔들이 터져 나왔는데 그 중 하나가 캘리포니아 정가를 쥐락펴락하던 흑인 정치인 윌리 브라운과 해리스가 연인 사이였다는 것이다. 당시 브라운은 30년 연상이었고, 부인과는 별거 상태였다고 한다. 


끌림이 먼저였는지,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 야심이 먼저였는지 우리는 모른다. 아마도 둘 다였지 않을까. 


해리스는 브라운의 도움으로 민주당 지지 부호들의 파티에 초대받아 일찍이 힘 있는 사람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브라운은 정치적 야망이 컸던, 당시 서른 살의 해리스의 정계 데뷔를 도왔다. 


나는 해리스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가 계산에 의해 브라운을 만났든 아니든, 우리는 해리스를 비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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