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벗어나 세계를 무대로 살겠다는 다짐 (feat. 실리콘밸리)
한국을 벗어나 세계를 무대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96년도에 아버지가 미시간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시게 되면서 나는 중고등학교 때 약 1년 반을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한국말로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영어로 “노바디(nobody)”였다. 사실, 미국을 떠날 때까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줄곧 반장을 도맡아 하며 “내 잘난 맛”에 살던, 정체성과 자존감이 형성되는 시기의 사춘기 소녀인 내게 그 상황은 참 속상하고 억울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비록,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인 한국에서 온, 말도 버벅거리는 왜소한 동양인 소녀이지만, 나는 언젠가 다시 돌아와 너희들과 제대로된 경쟁을 하겠다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종국에는 세계를 무대로 멋진 삶을 살겠다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옆자리 친구와의 경쟁은 시시하게 느껴졌다. 대신, 이후 한국을 떠날 때까지 어떻게 하면 한국을 벗어나 글로벌 시민으로 살 수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IBM 컨설팅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2007년 무렵, 베이징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IBM에서 인연이 된 예전 보스가 베이징에서 컨설팅 사업을 시작하면서 내게 제안한 것이다. 아프리카라도 상관없으니 반드시 서른 전에 한국을 벗어나겠노라고 노래를 부르던 나는 덥석 그 기회를 잡을 태세였다. 그런데 그 때, IBM 미국 본사에서 일하는 프랑스인 멘토 Jean-marc 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중국이 기회의 땅인 것은 맞지만 에이프릴은 중국에서 살고 싶은가요?”
중국에 가는 것은 단순히 직장을 옮기는 것이 아니에요.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것은 삶에 굉장한 변화를 가져오죠. 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그곳에서 보내는 24시간, 365일이 어떨지 잘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때, 내가 중국을 선택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분명 베이징에서의 삶은 다이나믹했을 것이다. 내가 한 선택에 웬만하면 후회하지 않는, 초긍정적인 나는 아마도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베이징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 둘 다 기회의 땅인 것은 분명하지만, 멘토가 말한대로 하루하루 겪게 될 삶을 생각해 보면 나는 중국보다는 미국이 좋다.
1년 뒤, 나는, LA에 위치한 회사에 오퍼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멘토가 옳았다. 베이징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할지, LA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커리어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매일을 어떤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떤 사람들과 우정을 쌓고,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질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공기를 마시고,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며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선택이기도 했던 것이다.
내 심장을 가장 뜨겁게 하는 곳을 홈으로 - 실리콘밸리
2018년에 한 번 더, 삶의 터전을 바꾸는 큰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지난 몇 년 사업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다. 회사를 닫고 새사업을 시작함에 앞서 네트워크 이점이 있는 한국에 갈까, 약간 무모하지만 창업자들의 꿈인 실리콘밸리로 갈까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 때, 나의 고민을 듣고 창업가 선배 및 친구들이 말했다. “에이프릴, 실리콘밸리가 꿈이라면, 일단 가서 고민해. 일단 두드려봐. 너 창업가잖아.”
실리콘밸리의 물가, 특히 집세는 살인적이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나는 싼 곳에 임시 거처를 정했다. 그리고 운명인듯 불과 몇 주 후, 내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지인 스타트업 대표로부터 컨설팅 제안을 받았다. 다소 무모하게 태평양을 건너 온지 며칠 만에 꿈에 그리던 실리콘밸리의 삶이 현실이 되었다.
(*각주: 엄밀히 말해 실리콘밸리는 사실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하지 않는다. 때문에 베이 에리아가 더 정확한 명칭이지만, 한국에서 “실리콘밸리”라고 할 때 상징하는 부분이 있기에 여기에서는 베이에리아, 샌프란시스코를 "실리콘밸리"로 포괄적으로 쓰겠다.)
사업을 하면서 오가던 시간을 합쳐 이제 만 3년쯤 이곳에 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곳이 참 좋다. 일단 이곳에서 나는 더이상 내가 이방인(마이노리티)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이전에는 종종 ‘나는 외국인이니까 이정도만 해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품곤 했다. 난 미국 사람도 아니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까, ‘이정도면 충분하지’라고 자위하곤했다. 그런데 이 동네는 어눌한 영어를 쓰면서도 당차게 자기 주장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수두룩한 곳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나는 이방이니까"하는 생각은 자기 연민일 뿐이란 것을 깨달았다. 비로소 나는 국적, 인종, 성별에 따르는 자기 합리화를 그만두고, 비로소 고등학교 때 다짐한대로 세계를 무대로 당당하게 살수 있게 되었다.
이곳이 좋은 두번째는 이유는 “사람들”이다. 앞서 언급한 베이징이나 LA 뿐 아니라 전세계의 큰도시들은 어느곳이나 가슴에 꿈을 품은 사람들로 가득차있다. 창업자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실리콘밸리가 조금 다른 점은 이곳이 기술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고싶어하는 괴짜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술과 과학 영역은 영어가 조금 서툰 이민자들에게도 비교적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기에 이곳에는 이민자 성공 케이스가 정말 많다.
이곳에는 또한 명문 스탠포드대와 버클리 대학이 있어 전세계의 인재를 끌어모아 기술 회사들에 공급해 주는데 이들 기술 회사들은 전세계 시민을 상대로 벌어들인 돈으로 다시 신기술에 투자한다. 또한, 성공한 창업 선배들이 후배 창업가들을 도와주는 “Pay It Forward” (내가 받은 은혜를 대가없이 베풀기)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선순환하는 창업 생태계가 만들어져있다. 그러다보니 이곳에서 창업가는 특이한 부류가 아니며, 실패한 창업가는 부끄러운 낙인이 아니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훈장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들 “성장지향형”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형성했다. 이곳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건강한 삶에 대한 열망도 높아 비만인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면 국립공원 급의 하이킹 코스가 즐비해 있고, 어디건 집밖을 나서면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흔히 발견한다. 물론 365일 햇살 내리쬐는 축복받은 캘리포니아 기후의 영향이 크다 하겠다. 식단관리 및 주기적인 운동을 하는 인구 비중을 따지면 세계 제일의 도시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 삶이 그런 성장지향형 초긍정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극받고, 동기 부여받고, 우정을 맺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어디서 살지를 결정하는 것. 어떻게,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이다. 문득 오늘은 프랑스인 멘토에게 감사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