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꿈이 마술처럼 이뤄졌다.
“그 반지 무슨 반지야?” 선배가 물었다. “제 꿈 반지에요.“
여전히 나의 손가락에 끼어있는 이 반지의 역사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IBM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시 내 꿈은, 서른이 되기 전에 한국을 벗어나 글로벌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때 우연히 읽게된,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책, “연금술사”에서 작가는 말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그 책을 읽고, 나는 꿈을 새긴 반지를 맞추기로 했다. 코엘료의 말처럼 소망을 가슴에 간절히 품으면 전 우주가 도와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리고 그 꿈이 마술처럼 이뤄졌다.
나는 2005년 IBM에 입사하던 시점부터 천일이 되면 IBM을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만 해도 선배들은 아무리 때려치우고 싶더라도 첫 회사에서 3년을 버티라고 조언했다.
때문에 나는 반지에 2008. 8. 27이라고 새겼다. 그것은 IBM에 입사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선배를 만난 날은 2008년 12월이었으니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 목표일보다 약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내가 가기로 물밑 진행 중이던 IBM 본사의 글로벌 프로젝트가 취소되었고, 프로젝트를 이끌던 내 멘토는 본국인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었다.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되자 기업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사람 뽑는 걸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했고, 환율은 어느덧 달러당 1500원까지 치솟았다.
아프리카에 가서 짐꾼이 되어도 좋으니 서른 전에 반드시 한국을 뜨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 속에 끓고 있었지만, 환율이 치솟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 선배는 한국 게임회사의 미국 진출 총괄을 맡고 있었는데 그해 10월경에 내가 소속된 학교 학회 게시판에 겨울방학 동안 일을 도와줄 인턴을 찾는다는 공지를 올렸다. 한국을 떠나겠다는 열병을 심하게 앓고 있던 나는, “LA, 항공권, 숙박제공”을 보고 무턱대고 선배에게 전화해 애원했다. “제발, 절 데려가 주세요.”
하지만, 선배는 “너, 농담이지? 회사 3년쯤 다니다 보니 엉덩이가 슬슬 근질근질한가 본데 그냥 일해"란 말로 내 애원을 일축했다.
이후 약 두 달이 흘렀다. 선배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기에 종종 주말 브런치를 했는데, 하루는 밥을 먹던 선배가 내게 물었다. “근데, 너 그 반지는 뭐냐?”
반지를 낀 지가 1년이 넘었는데 이제 반지를 본 것인가? 나는 속사포처럼 반지의 역사를 읊었다. “천일반지요! 첫 회사에서 천 일을 버틴 후엔 반드시 한국을 뜨겠다는 다짐을 담은, 스스로와의 약속이 담긴 꿈 반지죠. 참, 근데, 그때 인턴은 구하셨어요?”
선배가 내 눈을 피하며 답했다. “어, 근데 가기로 했던 애가 여자친구가 가지 말란다고 마음을 바꿨어.”
"헐!”
해외에서 일하고 싶은 소망을 반지에 새겨 끼고 인턴 포지션이라도 좋으니 날 데려가세요. 했던 나의 애원을 단칼에 거절하고 찾은 인턴이 고작 여자친구의 반대로 마음을 바꿨다고? 고것 쌤통인데? 라고 생각하던 찰라,내 눈을 뚫어지라 바라보던 선배가 입을 열었다.
“너, 나랑 미국 가자. 내가 데려가야겠다."
나는 바로 다음날 보스에게 말했고, 정확히 3주 후, 2009년 1월 17일, LA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 쓴 글이다.
2009년 1월 17일.
나는 지금 태평양을 건너 LA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다. 어떤 열정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을까.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마치 운명에 내맡기듯 한 이 자연스러움은 무엇일까. 내가 내 안에 있다는 느낌. 단순히 루틴을 벗어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운명이 변화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 될까. 자신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각설)
앞으로 삶에서 어쩌면 더 힘든 일이 닥칠 수도 있고, 더 긴박하게 뛰어야 할 상황도 생길 것이며, 살다 보면 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삶이 주는 모든 경험과 환희를 맘껏 즐기자. 이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할 순간이다.
에이프릴 파이팅!
내 삶 전체를 보았을 때 내 운명을 가장 크게 바꾼 그 결정을, 그 큰 결정을 속사포같이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꿈 반지 덕분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스물아홉 살 3년 차 직장인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아무 연고 없는 미국에 가겠다고? 너 미쳤구나! 라고도 했음 직한데, 내가 잘 다디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에 인턴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내 결정에 반기를 든 사람은 놀랍게도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부모님을 비롯해 소식을 들은 상사, 멘토, 친구, 지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에이프릴 가세요. 꿈이었잖아요.
반지 덕분에 주변에 모든 사람이 내 오랜 열망을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천일을 기다렸는지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다소 무모한 내 결정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는 커녕 진심으로 응원해 줬다.
'서른이 되기 전, 한국을 벗어나겠다는 꿈'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 때 내나이 스물 아홉이었다.
다음 글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