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서툰 이방인의 직장생활
앞 글에서 이어짐.
꿈에 부풀어 미국에 왔지만, 미국 생활은, 정확히 말하면 “영어가 서툰”, “이방인”의 “직장 생활”은 산 넘어 산이었다.
쉬울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에 끌리는 나는 상대적으로 적응을 잘하는 아이였다. 학생이라면 새로운 경험이면 충분할 터였다. 하지만 월급을 받는 만큼 성과를 내야 하는 직장인의 삶은 달랐다.
현실의 벽은 가혹했다.
새로운 회사, 새로운 산업에 적응하는 문제는 둘째치고, 언어와 문화 차이로 매일매일이 도전이고 스트레스였다. 거기에 공기와 물이 바뀌자 평생 없던 피부 알레르기까지 생겼다.
그때가 2009년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12년 전이다. 지금도 종종 긴장하면 버벅대는데 당시 내 영어 실력으로 밥벌이를 해야 했으니 어떠했겠는가. 특히 전화로 해야 하는 업무는 고역이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봤겠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생각만큼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한번은 회사 인터넷 연결을 위해 통신사에 전화했는데 기다린 시간을 합쳐 무려 3시간 45분을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를 수없이 되풀이하며, 무시당하고, 고생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나름 명문대학 컨설턴트 출신인데 아무리 못해도 현지인 학생 인턴만큼의 생산성은 커버해야 했다. 나는 내가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영어로 인해 생기는 비효율을 만회하고자 나는 정말 밤낮없이 일했다.
그런 내 모습이 창업자의 마음을 산 것일까?
다음 글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