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Norway
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눈을 좋아하고 비를 좋아한다. 고요하고 적막한 공간 속을 채워주는 작은 입자들 그리고 공허함이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가만히 보고 느끼고 있으면 일상의 번잡함을 잊게 해준다. 그래서 눈이 많이 오는 곳,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런 곳으로 여행을 자주 떠나는 듯하다.
끝도 없이 눈으로 덮인 드넓은 평원, 눈이 시리도록 온통 새하얀 풍경은 넋을 잃게 만든다.
그 속에 포인트 하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
2007년의 뉴질랜드가 그랬고 2016년의 비에이가 그랬다.
그렇게 이번에도 나는 추운 북녘의 나라. 나에게는 늘 미지의 세계였던 북유럽 그중에서도 노르웨이로 떠났다.
사실 꼭 노르웨이를 가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컨퍼런스 발표 장소가 오슬로였던 것뿐이고, 애초에는 아내와 함께 하려고 했지만 사정이 생겨 혼자 여행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20대 때는 혼자 하는 여행을 참 좋아했다.
며칠씩 같은 음악들을 반복해 들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타인의 일정에 맞추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혼자만의 여행이 좋았다.
연애를 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어느새 혼자 하는 여행이 겁이 났다.
나이를 먹으며 점점 겁쟁이가 되어 가는 것만 같다.
여행을 가려고 하니 별의별 걱정을 다 하게 된다.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내가 없는 동안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여행지에서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돌아오지 못하는건 아닐까
떠나기 하루 전까지도 밤잠을 뒤척이며 걱정이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건 신께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예전만큼 여행에 대한 설렘은 많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두려움과 걱정이 차지했다.
정말 오랜만에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
결국,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겨울 여행의 힘든 점 중의 하나는 짐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추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것저것 껴입을 것들을 많이 챙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집을 나섰다.
16시간 정도 걸릴 줄 알았던 여정은 27시간이나 걸렸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6시간을 대기했고 오슬로 공항에서 또 4시간을 기다렸다. 경유지에서의 지연은 초반 일정을 무척 고단하게 만든다는 걸 잊고 있었다.
인도에서 어렸을 적 노르웨이로 이민 온 Suhail은 내가 발표하는 컨퍼런스의 Organizer다. 노르웨이에 오는데 27시간이나 걸렸다고 첫날부터 툴툴거리는 나에게 자신이 키우는 소 농장 사진들을 보여주고 자식들 사진도 보여주면서 노르웨이에서의 나머지 일정은 즐거울 거라고 다독여줬다.
이틀째 되던 날부터 Oslo의 거리 모습과 분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북유럽답게 원목을 이용한 인테리어가 많이 보였다. 발표장으로 이용되는 곳 앞에서 한국으로 치면 보건부 장관쯤 되는 노르웨이 장관을 우연히 만났다.
캐주얼한 복장에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Suhail이 노르웨이의 장관들은 보통 저렇게 다닌다고 귀띔해줬다.
Oslo 거리에서는 영하 4~5도 되는 추운 날씨에도 자전거를 타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건강해 보였다.
나처럼 추위 많이 타는 사람은 밖에 나가는 것부터 싫은데 저 사람들은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컨퍼런스 장소는 화장실 표시까지도 정갈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이런 내부 인테리어 정도는 있을 텐데 여기에 와서 보니 뭔가 더 특별해 보이는 건 북유럽에 대한 지나친 동경일까
시차와 오랜 공항에서의 대기로 계속 정신을 못 차린다. 컨퍼런스 전 사전 미팅을 위해 모인 곳에는 발표자 총 14명 중 나 빼고 전부 미국인들이었고 굉장히 수다스럽다. 친근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피곤한 나에게 더 큰 피로함을 주는 것만 같아서 난 그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배가 고팠다.
Oslo는 물가가 굉장히 비싼 도시다.
우리나라의 3~5배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참고 기다렸다.
컨퍼런스 일정 동안 식사는 주최 측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기다려야만 했다.
기다리는 동안 컨퍼런스 행사장을 둘러보니 우리나라처럼 으리으리한 건물에서 하는 게 아니고 300석 규모의 아늑한 공간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내가 심심해 보였는지 Suhail이 조용히 곁으로 와서 일 좀 도와달란다. 그렇게 나는 발표를 하러 와서 행사에 이용될 음료수를 나르는 등의 노동을 하는 참신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무튼 긴장됐던 내 발표는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됐고 현지 반응도 꽤 좋았다. 이후부터는 자유시간
듣고 싶었던 다른 발표들을 편안하게 들었고, 잠깐 시간을 내서 Oslo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생각보다 크게 인상적인 것들은 없었다.
혼자 걷다 보니 예전 영국에 있을 때의 추억들이 많이 떠올랐다. 처음 영국에 도착해서 홈스테이를 찾아갈 때의 막막함. 객지에 혼자 떨어져서 느꼈던 외로움과 혼자됨을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었다. 그때는 겁도 없었다. 모든 건 다 경험이고 경험은 밑천이 된다는 생각으로 뭐든 부딪혀 보자는 패기 넘치는 20대였는데 어느새 세월은 흘렀고 난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문득 차를 렌트하고 싶어 졌다. 발이 너무 아팠고 등에 진 짐이 너무 무거웠다.
어릴 적 영국에서 네팔에서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혼자 여행할 때는 다음 여행은 꼭 편하게 해야지라고 다짐했건만 난 또 이 곳에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울컥 화가 났다.
이 먼 곳까지 와서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멀리 한국에 아내와 자식 (아직 뱃속에 있지만)을 두고 이곳까지 혼자 와서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될 것만 같은 강박증이 나를 괴롭혔다. 이렇게 정처 없이 걸어 다니자니 뭔가 죄짓는 느낌이었다.
문득 이게 예전 혼자 다니던 여행의 느낌이었나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건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처 없이 걸었고 또 걸었다. 4~5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다. 딱히 정해둔 목적지는 없었다. 이 골목 저 골목 생각 없이 그냥 돌아다녔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목적 없이 맹목적이지 않은 형태로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 많았던가
나는 뭔가에 쫓기듯 긴 터널 끝에 보이는 작은 빛줄기를 쫓아 뛰어왔다.
이런 목적성이 결여된 행위는 어색하다.
오랜만이다.
저녁이 되고 거리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허기진 배를 채울 겸 컨퍼런스 행사장에 들려 몇 개의 샌드위치와 탄산음료를 집었다.
멀리서 나를 초대해준 그들에게 먹을 것만 축내는 녀석으로 보일까 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노르웨이어로 발표하고 있는 세션에 굳이 참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간단하게 Suhail과 또 다른 Organizer인 Hakon에게 인사한 후 밖으로 다시 나왔다.
어제까지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야외 아이스링크장이 보인다. 스케이트가 타고 싶었다. 나는 대학교 때까지 한 번도 스케이트를 타본 적이 없다.
어릴 적 따뜻한 남쪽 도시에 살았다. 거기에는 아이스링크가 없었다. 물론 내가 도시 외곽 지역 (논, 밭만 있는)에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스무 살 전까지 내가 살던 도시에 그런 시설이 있다는 얘기는 생전 들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롤러스케이트장이 전부.
이제는 아재 소리 들을법한 그런 추억의 장소.
대학원생 시절 처음 스케이트라는 걸 접했다.
대학교 선배의 추천으로 교내 아이스하키 동아리에 가입했다. 학부 때부터 나를 하키 동아리로 꼬시려던 선배에게 나는 늘 "돈 없어서 못해요"라고 말했었다. 대학원생이 되면서 약간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번 돈으로 아이스하키 장비를 사는데 썼다. 난생처음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을 돌아다녔던 날, 나는 내가 바보 같았고 미칠듯한 통증에 내 발바닥이 쪼개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그렇게 시작한 아이스하키는 벌써 6년이 다 돼가고 내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 됐다.
다시, Oslo의 야외 링크장에서 우두커니 서서 "스케이트를 가지고 올 걸 그랬나. 다음에는 스케이트를 갖고 와서 타봐야겠다"라는 등의 쓸데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나는 말이 많은 편이다. 어쩌면 내게는 이번 여행과 같은 일종의 묵언 수행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거의 말할 상대가 없다.
누군가 "침묵하는 습관보다는 말을 적게 하는 습관이 낫다"라고 했던가. 난 이 격언과 상관없이 이곳에서 침묵하는 습관과 말을 적게하는 습관 두가지를 모두 수행 중이다. Oslo에서의 며칠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른 발표자들과 함께 현지인들이 추천해주는 식당에서 수다 떨면서 저녁도 먹고 간단하게 맥주도 한잔하고 그렇게 즐거운 날들을 보냈다. Oslo를 떠나기전날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했고 우리는 언젠가 다른곳에서 또 만나기로 기약없는 이별을 했다.
Tromsø
트롬쇠라고 읽어야 한다는 곳도 있지만 트롬소라고 해도 다 알아 듣는다.
다음날 나는 Tromso라는 노르웨이 최북단의 도시로 향했다. 원래는 Lofoten 제도를 가려고 했다.
차를 한대 빌려 Lofoten을 며칠간 다 돌아보려는 게 계획이었지만 어디선가 Lofoten에서 운전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고 했고 운전 시간이 꽤 걸리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또 나의 걱정병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비교적 단순한 여행 경로를 계획할 수 있는 Tromso로 진로를 변경했다.
처음 Tromso에 도착했을 때, 이 곳의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예전에 다녀온 삿포로보다 더한 거 같았다.
이대로는 저녁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잠깐 나가서 걸어보는 걸로 만족했다. 눈도 뜰 수 없을만큼 눈보라가 심했고 엄습하는 추위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유명하다는 Arctic Cathedral을 걸어서 갈려면 1km 남짓한 다리를 건너야 되는데 돌풍에 날아갈 것만 같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역시 난 겁쟁이다.
첫날은 그렇게 호텔에서 창문 넘어 휘몰아치는 눈을 구경하는 걸로 만족했다.
다음날 일찍 숙소를 나섰다. 전날 일기 예보에서는 아침부터 눈이 멎을 거라고 했는데 여전히 눈이 오고 있다. 일기예보의 정확도와 예측성은 한국이나 여기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차를 빌리러 항구 쪽으로 나갔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렌터카 회사가 문을 열려면 두 시간도 더 남았다. 주변을 배회했다. 바닷가 쪽으로 나가보니 해는 뜬 것 같은데 구름이 많이 껴서인지 건너편 산이 어둡게 보인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빛이 적당했다.
날이 밝아온다. 렌터카는 결국 실패했다. Automatic 차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제 면허증도 새로 발급 받아갔건만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난 면허를 8년 동안 땄다.
무슨 얘기냐면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첫 시도를 했다. 당시 이런저런 사정으로 힘겨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고 군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어느 날 밤 라디오에서 "제주도의 푸른 밤" 이 흘러나왔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바로, 정말 거의 바로 제주도로 떠났다. 노래 가사처럼 둘이서 떠난건 아니고 혼자 갔다. 제주도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며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군대 문제도 포함해서 내 인생에 대해 그만큼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찾은 답은 피하지 말자는 거였다. 이왕 갈 거면 가장 빠른 시기에 다녀오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서 여행이 끝나는 날 제주도의 한 담배 냄새에 쩌든 허름한 피시방에서 육군에 지원했다. 입대 전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있었고 그때 면허를 이어서 땄으면 됐겠지만 난 이미 면허 취득에 대한 의욕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다시 독하게 마음먹고 면허를 땄다.
뭐든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인데 대학교 3학년 때는 군대를 다녀올 필요가 있었던 거고 20대 후반에는 면허가 필요했던 거다.
"필요하면 뭐든 금방 열심히 하게 되더라"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는 건 페이크고 그냥 버티지 말고 군대는 다녀오는 게 좋고 면허는 있는 게 좋더라.
둘째 날은 숙소를 옮겼다. AirBnB 였는데 호스트의 이름이 Maja(마자)였다.
Maja(마자)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트롬소 시티 센터에서 10분 정도 걸리는 살짝 외곽 지역에 있었지만 깔끔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집에서 잠깐 나가면 바다도 보이고 전망이 무척 좋았다. 원래는 이 집에서 오로라가 보인다 그래서 옮긴 건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굳이 여기서 오로라를 볼 필요는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일단 낮잠을 잤다.
시차 적응이 아직 덜 됐는지 몸이 한없이 힘들었고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눈보라 속에서 너무 많이 걸었더니 체력이 다 된 것 같았다.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 집 주변을 걸어 다녀보니 바로 뒤에 스키장이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잘 가꿔진 스키장은 아니고 거의 자연 상태 그대로의 스키장이었다. 눈으로 덮인 길을 걷다 보니 예전에 아내와 같이 갔던 비에이 여행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길을 잘못 들어 차 문 높이 정도로 쌓인 눈 속으로 무리해서 들어가다 옴짝달싹 못하게 된 적이 있다.
겨우 차는 빼냈지만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숙소는 못 찾겠고 결국 숙소 주인에게 전화를 했는데 나는 일본어를 못하고 그녀는 영어를 못했다.
구글 번역기로 일본어 번역을 돌려서 대화를 시도했지만 원활하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한국말을 떠듬떠듬 시작했고 비에이역은 어딘지 알 테니 그곳으로 오면 자기가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일본어도 영어도 아닌 한국말로 소통이 되었으니 말이다.
반면에 노르웨이를 여행하며 흥미로웠던 건 남녀노소 직업 불문 모두 영어가 유창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현지인에게 말을 걸고 물어보고 했지만 단 한 명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오랫동안 영어를 썼던 사람들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를 했다. 택시기사, 식당 종업원,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 호텔 직원, 편의점 직원, 버거킹 직원 등등 모두 하나같이 영어를 잘 했다. 라틴 계열 알파벳을 쓰고 영어와 비슷한 단어가 그들 언어에 많이 섞여있긴 하지만 그걸 이유라고 보기에는 조금 약한 것 같다.
이 모든 게 학교에서의 기본적인 교육만으로 가능한 거라고 TV에서 봤던 거 같은데 신기할 따름이다.
다시, 집 앞을 걷다가 영상 통화를 걸어본다.
아내는 내 주변을 보더니 웬 시골에 가있냐고 한다. "그럼! 그럼! 시골도 이런 깡시골이 없지"
배 속에 아기는 잘 있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등등 시시콜콜한 것들을 서로 물어본다.
짧은 안부를 묻고 다시 걸어 다녀본다.
딱히 볼 게 없다. 예약해둔 오로라 투어는 아직 2시간 정도 남은 상태였다.
숙소로 돌아와서 간단히 저녁을 해 먹었다.
아니해 먹었다기보다 돌려 먹고 불려 먹었다는 게 정확할 것 같다. 햇반과 컵라면을.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있자니 뭔가 무척 현지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주변에 있는 Real 현지인들은 나를 무슨 동물원 원숭이처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지만 나 스스로는 내가 현지인처럼 여행을 하는 진정한 여행자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시내에 도착하니 오로라 투어에 사용할 배가 준비되고 있었다. 분명 밥을 먹었는데 또 배가 고프다. 난 사실 정말 많이 먹는 편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녀보는데 맛있어 보이는 피자집이 있다. 나도 저런 고급진 곳에서 밥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혼자 하는 여행의 단점은 좋은 식당을 못 간다는 거다. 물론 혼자서도 고급 레스토랑에 당당히 들어가는 용기 있는 여행자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런 사람이 못된다. 난 겁쟁이니까.
배에 승선하니 간단하게 Northern Lights (또는 Aurora)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Aurora는 Aurora Borealis를 줄여서 부르는 건데 "여명을 닮은 북녘의 빛"이라는 뜻이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난 부리나케 선수로 가서 카메라를 가장 좋은 자리에 세팅하였다.
Aurora Hunting을 할 생각에 설레었지만 조금 전까지도 하늘이 흐렸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옆에 사진 좀 찍을 것 같은 포스를 풍기는 키 큰 외국인도 세팅을 하기 시작한다.
5분쯤 지났을까 또 다른 키 큰 외국인이 내 바로 옆에서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세팅을 손보며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희뿌연 무언가가 보였다. 처음에는 구름인가 했는데 조금 달랐다. 짧은 노출로 찍어서 확인하니 선연한 초록색이 보였다. 오로라였다. 한창 세팅하고 있는 미국인에게 오로라라고 빨리 찍으라고 하니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회색 빛으로 구름 같았던 오로라가 점점 완연한 초록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붉은빛도 살짝 돌기 시작했다. 추위도 잊은 채 연신 구도를 맞추고 수평을 맞추고 장노출을 위해 카메라 리모컨을 눌러댔다.
점점 선명해지는 오로라를 보며 너도 나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트롬소의 일기예보 한 달치를 볼 때만 해도 오로라를 볼 것이라는 기대치는 거의 0이었다.
그만큼 일기예보는 부정적이었다.
일기예보 웹사이트에는 한 달간 온통 구름뿐이었다. 그런데 하늘이 갑자기 거짓말처럼 깨끗해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단 몇 분 만에 하늘에 있던 구름들이 사라졌다.
너무 추워서 핫팩을 두 개 터뜨렸다. 배의 선수에 있다 보니 온몸으로 겨울 바다의 추운 바람을 맞이해야 했다. 그럼에도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추위가 그나마 덜 느껴지는 듯했다.
하늘에서 열리던 마법 같은 광경은 10분 정도 지속됐다.
이후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맨눈으로 보이던 완연한 초록빛 오로라는 사라지고 다시 초반의 희뿌연 구름 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매직쇼는 끝이 났다.
4시간 동안 바다 위에서 추위와 사투를 벌였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10분이었다. 이런 날씨에 10분도 굉장히 운이 좋은 거였다.
선수에 있던 오로라 헌터들은 이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두 시간 정도를 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로라로 보이는 것들만 있으면 계속해서 찍어댔다.
결국 마지막 불꽃은 사라졌고 구경꾼들도 모두 배안으로 돌아갔다.
2017년 가장 마법 같았던 순간이 끝난 것이다.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한 건 못내 아쉬웠지만 이런 무지개 고생하는 여행은 그녀에게는 힘들었을 것이다. 북유럽 여행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다음에 오로라를 보러 간다면 조금 덜 고생하는 여행지를 골라 보고 싶다.
그런데가 있다면 말이다. 없으면 다시 트롬소에 와도 괜찮겠다. 그땐 꼭 렌트를 해야겠다.
다음날부터는 또 열심히 눈이 온다. 이 동네는 정말 신기하다. 날씨가 시시각각 변해서 예측이 안된다. 일기예보도 정확하지 않다. 그래도 트롬소 여행 3일 중 하루는 맑아서 다행이다.
마지막 날 역시 눈 구경 실컷 하고 돌아간다.
잘 있거라 고요한 듯 고요하지 않았던 트롬소!
언젠간 다시 올게. 그때는 혼자가 아닐 거야!
왠지 이 다짐이 낯설지 않은 건 2007년 뉴질랜드 배낭여행 때도 했던 다짐이기 때문일 것이다.
딱 9년 후 다짐했던 대로 아내와 함께 뉴질랜드를 다시 여행 했었다.
트롬소도 다시 한번 와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하기 위해 언젠가 다시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