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runTrave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unt Jul 31. 2017

하늘호수와 은하수가 만나는 곳

First Story in New Zealand 2017

2007년 무더웠던 여름, 무작정 배낭 하나 메고 떠났다.

태어나서 처음 가는 배낭여행이었다. 객기로 숙소는 예약하지 않고 직접 가서 부딪혀보기로 했다.

아벨타즈만 트래킹을 하면서 밤이면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이는 Lodge에서 홀로 칠흑 같은 밤을 보냈다.

밤하늘에 빛나던 무수한 별들, 해변가를 찰싹이는 파도,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의 사각거리는 소리

낭만적인 밤이었다.

하지만 외딴곳, 주위에는 까만 밤 같은 바다뿐인 곳에서 홀로 밤을 보내는 건 너무 큰 고통이었고 고문이었다.

아름다운 뉴질랜드였지만 그때 다짐했다.

다음에는 혼자 오지 않겠다고


Winter in Lake Tekapo, New Zealand, 2007

2016년, 9년 만에 뉴질랜드를 다시 찾았다.

예전에는 한겨울이었지만 이번엔 햇살 가득한 가을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왔다.


보고 싶었다
뉴질랜드


Auckland Airport, New Zealand

오랜만에 다시 찾은 오클랜드 공항은 부속 건물들이 조금 더 늘었고 단체 관광객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국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한 셔틀을 기다리는 동안 비치된 여행안내 잡지도 보고 상쾌한 공기로 청량감도 느낀다. 오클랜드는 여행 마지막에 하루 이틀 정도 보면 될 것 같다.

바로 남섬으로 이동한다.



Queenstown (퀸스타운) 공항에 내리자마자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를 맞이해준다. 예전에는 Nelson(넬슨)을 통해서 남섬으로 들어왔고 이후 Christchurch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북섬으로 넘어갔었기 때문에 퀸스타운 공항을 본건 처음이다. 공항 풍경부터가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무엇보다 햇살이 너무 좋다.

Queenstown Airport

차를 빌리기 위해 렌터카 사무실로 가는 동안에도 나와 그녀의 감탄사는 끊이지 않는다. 돌아보는 모든 곳이 그림이다.

뉴질랜드가 처음인 아내는 나보다 더 신기한가 보다.



"그래 그런 반응을 원했어"


아내가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차를 빌려서 바로 퀸스타운으로 간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나와서 여기저기 둘러본다. 오랜 비행으로 지칠 법도 한데 퀸스타운의 풍경은 우리를 쉴 수 없게 만든다. 이런 풍경을 앞에 두고 휴식을 취한다는 건 매너가 아니니까.

Lake Wakatipu, Queenstown

이 곳의 가을 풍경은 다채로웠다. 겨울로 가는 문턱이지만 아직 푸른 목초지가 군데군데 남아있다.

호숫가에서 망중한을 즐겨본다. 남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Central Otago 지역으로 온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예전에는 Magic Bus라는 걸 타고 한달간 남섬 전체를 다 돌았다. 남섬의 거의 모든 곳을 다 돌아다녔었다. 그중에서도 Queenstown, Lake Wanaka, Lake Tekapo, Lake Pukaki, Mt.Cook 이 가장 인상 깊었고 모든 장소의 공통점은 Central Otago 지역에 있다는 거였다.

뉴질랜드에 오니 잊은 줄 알았던 옛날 추억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땐 참 겁도 없었다. 지금보다 더 영어를 못하던 때였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 혼자 이 먼 곳까지 와서 외국애들이랑 잘도 놀고 다녔다.

Magic Bus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 Armin, Benny, Nick 등등 잊은 줄 알았는데 다시 기억이 난다. 독일인이었던 Armin에게 맥주 많이 마시기 내기를 하던 노르웨이 소녀 Benny의 당돌함. 결국 그녀가 졌지만..

9년 전 뉴질랜드에서 처음 배운 포켓볼.

밤새 신나게 놀고 KFC에서 마무리했던 이상한 아이들. 우리는 무슨 얘기들을 했을까.

난 분명히 지금보다 영어를 더 못했을 텐데.

도대체 난 무슨 생각으로 그리고 무슨 용기로 저들 틈에 껴서 그리 신나게 놀았을까 어느새 30대가 되어 그때를 돌아보니 무척 그립다.

다들 잘 살고 있겠지?


Wanaka (와나카)로 가는 날, 날씨가 무척 좋다. 뉴질랜드는 핸들이 우측에 있다. 이틀 정도 운전하니 많이 익숙해졌지만 Roundabout은 아직도 정신 사납다. 와나카로 가다 보면 구불구불 산길을 넘어가야 되는데 천 길 낭떠러지에 가드레일이 제대로 없는 곳도 있어 조금 무섭다. 무서운만큼 높이 올라가면 있는 Lookout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경치가 좋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반지의 제왕의 호빗족이 뛰어다닐 것만 같은 풍경.

On my way to Wanaka, New Zealand
YHA Wanaka

이번 여행은 아내와 같이 왔지만 YHA를 이용하면서 배낭여행자처럼 지내보기로 했다. Dormitory에서도 자보고 Private room에서도 자보기로 했다. YHA는 프라이빗도 잘 고르면 꽤 괜찮다. 개인적으로 YHA를 좋아하는 이유는 저렴한 것도 있지만 특유의 분위기다. 여행자들끼리 정보 교환을 하거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좋다.

YHA Wanaka

공용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거나 공용 거실 또는 테라스에서 사진을 정리하고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옆에 있는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런 개방적이고 소셜한 분위기를 잊지 못해 2007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YHA를 이용하고 싶었다. 특히, 뉴질랜드는 YHA가 많고 또 시설들도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On the street, Lake Wanaka

방에 짐을 풀고 몇 시간 운전하여 방전된 체력을 짧은 낮잠으로 보충한다. 그리고서 아직 맑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는 밖으로 나가본다.

대충 찍어도 그림이다. 차가 없는 틈을 타서 아내 사진을 잽싸게 찍어본다. 그녀는 신이 났는지 도로 위를 춤추듯 걸어간다.


햇살이 너무 따뜻하다. 


공기가 너무 깨끗해서 그런지 자외선이 무척 세다. 선글라스를 안 쓰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사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도 눈이 부신 느낌이다. 겨울에 왔을 때는 하늘이 흐렸던 날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가을에 오니 하늘과 바람과 구름이 예술이다.

이 동네 학생들은 이런 풍경 속에서 수업받고 축구도 하고 그러는건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저 앞을 보니 정말로 어린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Football, Lake Wanaka

아내랑 여행을 다니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그녀는 내 사진의 좋은 모델이 되어준다. 풍경 사진을 찍을 때 작게라도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던가 어쩔 수 없이 그냥 풍경만 찍던가 하는데 아내가 있으면 가서 서있으라고 시키기도 한다.

알아서 포즈도 잡아주니 얼마나 좋은가

Lake Wanaka, New Zealand
Lake Wanaka, New Zealand

와나카 호수에 오니 2007년에 만났던 영국 세 소년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9년 전에 난 영어를 무척 못 했을 거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서 거기서 만난 애들 중에 Native 들에게는 거의 말을 안 걸었다.  

Nelson Abeltasman Tracking, 2007

이 아이들은 아벨타즈만 트랙킹 후 버스정류장에서 처음 만났다. 영국식 억양을 쓰면서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주변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고 떠들어대는데 참 시끄러웠다. 조금 후 버스가 왔고 내가 탄 버스에 이 아이들도 탔다. 숙소도 같은 곳이었다.

버스 타고 오는 내내 떠들더니 YHA 식당에서도 열심히 떠든다. 다음날, Greymouth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는데 얘들이 또 같은 버스에 탄다.

시끄러워 죽겠다.

Greymouth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아예 같은 방까지 쓰게 됐다. 미칠 노릇이다.

짐을 풀고 발코니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조용히 다가오는 아이들 (왜... 그러지마..)

영국애 : “너 한국인이지? 혹시 신라뭰 있어?”

 : “어?? 신라면? 있는데..?”

영국애 : "하나만..."


이게 우리의 역사적인 첫 대화였고 호구조사를 위한 대화를 시도한다. 나이들은 19, 사는 곳은 Oxford.

대부분 우리나라하면 서울 밖에 모르는 것에 비해  울산, 경주까지 알고 있었고 한국 여행을 오래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라면의 맛을 아는 거였다. 이후 이 친구들과 친해져서 며칠 동안 같은 일정으로 다녔다.


이 중에 ‘소아마비’가 있는 아이가 있었는데 ‘Franz Josef(프란츠요셉)’ 빙하투어에서 같은 조였었다.

몸이 불편해서 중간에 풀어진 ‘아이젠’을 다시 착용하는데 힘들어하고 있었고 앞사람들과의 간격이 이미 너무 많이 벌어져있었다.

그래서 착한 내가 도와주고 무사히 사람들이랑 다시 합류할 수 있었는데 이 아이는 그때 무척이나 고마웠었나 보다. 뉴질랜드 여행하면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린 Wanaka에서 서로 다른 곳으로 여행하게 됐고 우리는 그렇게 아쉽게 헤어지게 되었다.

Friends from England, Lake Wanake, 2007

이후로 다시는 못 볼 것 같았는데 몇 주후 Auckland 시내 한복판에서 우리는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됐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길거리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안부도 물어보고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이 친구들도 자주 생각난다. 돌아보면 뉴질랜드에서의 아련한 추억들이 참 많다.

와나카 사람들은 진정 여유로워 보인다. 우리도 이 곳에서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여유를 즐겼다.





와나카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은 Mt.Cook을 향한다. 가는 길도 너무 아름답다.

특히, Lindis Valley를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과 Lookout에 올라서 바라본 골짜기의 모습은 무척 이색적이다. 이런 풍경 속을 달리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Lindis Valley, New Zealand

이 길 끝에는 푸카키 호수(Lake Pukaki)가 있다.

빙하 물이 녹아 하늘빛을 띠는 아름다운 호수이며 드라마틱하게 등장한다.

푸카키 호수의 물빛은 하늘보다 아름답기도 하다.

비현실적이기까지한 푸카키 호수 너머로 목적지인 Mt.Cook 봉우리가 보인다.

Mt.Cook에 다다를 때쯤엔 쭉 뻗은 길이 나온다.

긴 여정의 끝을 앞두고 잠시 차에 내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를 한껏 들이켜본다.

둘이서 장풍놀이도 해보고 마운트 쿡을 찍으려는 찰나, 와이프가 사과를 번쩍 들어 촬영을 방해하기도 한다. 적당한 구름과 햇살이 참 기분 좋다.






숙소에 간단하게 짐을 풀고 나와서 Hooker Valley 트랙킹 코스를 향한다.

가는 내내 Mt.Cook이 보이는 트랙킹 코스다.

오르막도 거의 없고 대부분 평지라서 크게 힘들지는 않으나 생각보다 꽤 긴 코스기도 하다.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

<The Shelter, Mt.Cook>

트렉킹 코스가 끝나갈 무렵 나오는 쉘터에서 가져온 간식거리를 먹으면서 잠시 쉬기로 한다.

쉘터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운트쿡이 멋지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으니 중국계로 보이는 여자도 내 옆에서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는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몇 마디 말도 건네본다.

쉘터에서 나와 조금 더 걷다 보면 Mueller Lake가 나오는데 예전에 왔을 때는 분명 반영이 아름다운 호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완전 흙탕물이라 조금 실망스러웠다.

숙소로 돌아와서 간단하게...는 아니고 파스타를 족히 5인분은 만들어서 싹싹 비웠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계속 돌아다녔더니 배가 무척 고팠다.

시원하게 맥주도 한잔하고 Canterbury 초콜릿도 먹는다. 그런 나를 옆에서 보던 와이프는 "맥주에 초콜릿이라니.. 근본 없는 조합"이라고 핀잔을 준다.

나는 어떤 조합이든 잘 먹는 편이다.

저녁을 챙겨먹고서는 삼각대와 플래시를 챙겨 밖으로 나와본다.

이 곳은 광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맨눈으로 봐도 은하수가 보이는 곳이다.

카메라 설정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별이 잘 찍힌다. 별 사진을 찍다 보면 우주를 탐험하는듯한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다음에 가게 될 Lake Tekapo에서는 더 많은 별을 보게 될 것이다.




Mt.Cook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느지막이 일어나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Lake Tekapo를 향해 가는 중에 내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알려줬는데... 분명 잘못 알려준건데..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풍경이 우리 앞으로 펼쳐졌다. 연어 양식장 (Salmon Farm)이라고 돼있었는데 하류 쪽에서 캠핑하면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양식장에서 탈출한 연어를 잡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거울 같은 반영이 하늘과 호수를 분간하기 어렵게 만드는 그런 곳이었다. 말 그대로 하늘 호수였다.

구름이 퍼져나가고 그런 구름이 호수에 비쳐 데칼코마니를 이루며 마치 날개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테카포에 도착했다. 수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묵었던 YHA에서 지내고 싶었다. 운 좋게도 테카포에 오기 전날 도미토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수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테카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밤에는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와서 꼭 다시 보고 싶었던 은하수와 별들로 가득한 테카포의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이 너무 많아 테카포부터는 다음 편에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명을 닮은 북녘의 빛을 찾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