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12 국방일보 조명탄 기고
요즘 음악 외에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기후 변화다. 최근 인도에선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 중부에 121년 만의 폭염이 닥친 가운데, 일부 지역에선 최고 기온이 무려 50도에 육박하고 있단다. 2018년 무시무시했던 우리나라의 더위를 기억하는가. 30년 가까이 에어컨 없이 버틴 우리 집도 결국 그 더위에 무릎 꿇고 이듬해 에어컨을 장만했다.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꼽히는 그해 여름, 국내에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한 지역의 온도가 41도였다. 수도권은 40도를 밑도는 정도였다. 그런데 50도라니. 감히 상상도 안 되는 지경이다.
생각해보면 이상 기후는 최근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 관측됐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렸다는 소식은 이제 그리 놀랍지도 않다. 작년 여름, 서유럽에선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급격히 불어난 강물에 여러 마을이 속수무책으로 부서지고 잠겼다.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 미국과 캐나다는 최악의 폭염을 겪었다. 50도 가까운 맹렬한 더위에 하루에도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고, 캐나다에선 산불까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현지에선 지구 종말의 현장 같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기상 이변은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올봄 꽃구경을 다녀온 이라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원래 봄에 피는 꽃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시기에 피진 않는다. 대표적인 봄꽃인 벚꽃, 목련, 개나리, 튤립은 각기 다른 시기에 피었다가 진다. 올해는 달랐다. 평소라면 4월 하순에 하나둘 피어나 5월에 절정을 맞아야 할 튤립이 이미 4월 초 곳곳에서 목격됐다. 과거에는 최대 한 달 간격으로 꽃을 피우던 개나리와 벚꽃은 올해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화했다. 올해뿐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내내 그랬다. 때 이른 봄날의 고온 때문이다.
꽃이 한 번에 다 피면 예쁘고 좋지 않으냐고? 인간의 눈엔 그럴지 몰라도, 자연의 입장은 다르다. 기온의 변화로 생태가 불규칙해지면 그와 연관된 모든 자연 현상에도 차질이 생긴다. 가령 꿀벌이 겨울 지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려고 할 때 봄꽃이 이미 다 피고 지고 있다면? 꿀벌은 뜻밖에 실직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자연히 산과 들의 식물에도 큰 타격이 따른다. 행동생태학자 최재천은 이를 두고 ‘생태 엇박자 현상’이라고 했다. 톱니바퀴 물린 듯 박자 맞춰 돌아가야 할 생태계가 엇박자를 내면서 어긋난다는 말이다.
생태계의 불협화음은 결국 인간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인도를 덮친 최악의 폭염은 그들만의 고통이 아니다. 인도는 세계에서 밀을 두 번째로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인도의 이상 고온으로 올해 밀 생산량이 최대 50%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예측이 현실이 된다면 세계적인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의 삼면을 둘러싼 바다의 온도는 날로 상승해 제주 일대를 넘어 남해, 서해, 동해에서까지 아열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어민의 생계는 물론, 어시장의 풍경에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어릴 땐 환경 보호를 맹목적으로 외쳤다. 우리 강산 푸르게 잘 보존하자. 다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우리 사는 동안에는 별일 없을 거라 여겼다. 후손을 위해 환경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현실은 다르다. 이제 다음 세대는 고사하고 당장 우리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마이클 잭슨의 1995년 노래 ‘Earth Song’을 들을 때면 유독 마음이 무겁다. 노래 속 그의 통렬한 외침이 여느 때보다 간절하게 들려서다. “우리가 이 세상에 무슨 짓을 한 거죠? 꽃이 피던 들판이 어떻게 된 거예요? 바다는 어떤가요? 숲속 오솔길은? 우리는 어때요? 우리가 신경이나 쓰고 있나요?”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220512/1/BBSMSTR_000000100134/vie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