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기분으로 공존의 가치를 생각한다.
최근 가수 싸이에 관한 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의 작품 때문이 아니다. 설왕설래의 원인은 오는 7월부터 8월 하순까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는 그의 콘서트 투어 <싸이 흠뻑쇼 – Summer Swag 2022>(이하 ‘흠뻑쇼’). 공연 중 관객에게 물대포를 쏘는 것으로 유명한 흠뻑쇼는 지난 2011년 처음 열린 이래 여름이면 전국에서 수만 관객을 모으는 싸이의 대표적인 공연 브랜드다. 2019년까지만 해도 마치 여름철 관광 명소처럼 여겨졌다.
올여름 흠뻑쇼는 팬데믹 이후 3년 만이다. 이달 초 개최 소식이 전해지자 공연에 목말라 있던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는 동안 이와 같은 대형 공연이 전무했던 탓에 반가움은 더 컸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의문을 제기했다. ‘지금 우리나라 가뭄이 심각하지 않아?’ 그랬다. 6월 1일 기준, 전국 거의 모든 지역의 최근 6개월 누적 강수량은 평년 대비 약 55% 이하인 가뭄 ‘주의’ 수준이었다. 그중 45%를 밑도는 ‘경계’ 지역도 절반에 달했다.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봄 가뭄이란 이야기까지 나왔다. 일부 지방에서는 3월부터 ‘2일 급수, 4일 단수’ 등의 제한 급수를 시행하기도 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콸콸 나오는 도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필 여느 때보다 국토가 메마른 시점에 흠뻑쇼가 돌아왔다. 싸이는 지난 5월 한 토크쇼에 출연해 공연 한 회당 식수 300톤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많은 물을 조달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관객들에게 물을 발사할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지 자랑스럽게 말했다. 몇 년 전이었다면 박수가 나왔을 수도 있겠다. 일반적인 야외 공연에 다량의 물을 동원한 기획의 참신성, 공연의 완성도를 위해 가수와 제작진이 들이는 정성에 그저 감탄했을 테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이번 흠뻑쇼는 총 10회에 걸쳐 진행되고, 식수는 총 3,000톤이 쓰인다. 참고로 논 3,305㎡(1,000평)에 필요한 물이 대략 300톤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비교하면 공연의 규모가 비로소 실감 난다.
물론 흠뻑쇼를 안 한다고 가뭄이 당장 해소되진 않는다. ‘메마른 소양강에 물 300톤을 뿌려줬으면 좋겠다’는 배우 이엘의 말에 300톤으로는 마른강을 되살리지도 못한다며 조롱하고 윽박지르던 이들의 말처럼, 공연에 사용되는 물 3,000톤을 모두 동원해도 구석구석 가문 땅을 흠뻑 적시진 못한다. 싸이가 공연을 위해 부족한 농업용수를 끌어다 쓰는 것도 아닌데 그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돈 주고 산 식수를 마시든 여러 사람과 재미를 위해 공중에 흩뿌리든 그건 구매자의 자유다. 어차피 장마가 시작되면 자연스레 가뭄에서 벗어날 텐데, 누군가에겐 오랜만에 열리는 야외 공연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문화적 경험이 절실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지 않겠나.
갑론을박을 지켜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당장 어느 마을에선 물이 없어 제한된 급수로 생활한다는데, 다른 한쪽에선 공연 때마다 식수 300톤을 쓴다며 뿌듯해하는 건 좀 아이러니한 광경 아닌가. 아무리 그의 공연이 가뭄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다고 해도, 물 없이 얼마든 공연할 수 있는 그가 상생을 위한 방법을 모색할 수는 없었을까. 지난 2년 동안 콘서트 투어를 환경친화적으로 진행할 방법을 고안했다는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만큼은 아니더라도, 공연마다 관객에게 일회용 우비와 마스크 넉 장을 제공하며 쓰레기 배출을 늘리는 환경 파괴적 방식은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흠뻑쇼는 문제없이 진행될 것이다. 이미 모든 티켓이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사람들은 흠뻑 젖어 즐길 것이고, 유난한 일부의 문제 제기로 벌어진 해프닝처럼 지나갈 것이다. 씁쓸한 기분으로 공존의 가치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