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재 Jun 30. 2022

오래 한다는 건

220630 국방일보 조명탄 기고

자우림이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결성 초기 이들은 홍대 앞 한 클럽에서 목요일에 공연하는 밴드였다.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인기 팀이 무대에 올랐고, 유명하지 않은 팀은 평일 무대에 섰다.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에 공연하던 밴드 ‘유앤미블루’가 사정상 출연을 못 하자 대신 이들이 무대에 올라갔다. 하필 그날 관객 중엔 영화 ‘꽃을 든 남자’의 제작진이 있었다. 유앤미블루에게 영화 음악 작업을 의뢰하러 클럽을 찾은 것이었다. 제작진은 유앤미블루 대신 무명이었던 자우림을 만났고, 사운드트랙 작업의 기회도 이들에게 주어졌다. 그렇게 나온 노래가 데뷔곡 ‘Hey, Hey, Hey’였다.


데뷔 25주년을 맞은 밴드 자우림


밴드의 성공 신화는 운명처럼 작업한 첫 곡부터 시작됐다. 록 밴드의 인기 돌풍은 댄스 음악 위주의 가요 시장에서 이례적이었다. ‘Hey, Hey, Hey’를 시작으로 ‘일탈’, ‘밀랍천사’, ‘미안해 널 미워해’, ‘매직카펫라이드’, ‘팬이야’, ‘하하하쏭’, ‘샤이닝’,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25년 활동 내내 히트곡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뛰어난 연주력과 압도적인 가창력,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와 공감 가는 노랫말로 당대의 청춘과 호흡하며 ‘자우림 세대’를 탄생시켰다. 그룹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들을 벤치마킹한 팀들이 나타났고, 한동안 여성 보컬을 앞세운 밴드가 유행처럼 번졌다. 가요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곡을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히트시킨 밴드는 드물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데뷔 25주년을 맞은 소감을 묻자 멤버들은 이렇게 답했다. “그냥 우리 이름으로 된 앨범 1장이 갖고 싶었다. 나머지 24년은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감사하고 있다.” 그저 제대로 된 앨범 한 장을 남기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여정이 지금까지 이어졌고,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지나갔다는 의미였을 테다. 이들의 대답에서 보너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보너스는 생각지 못한 덤, 즐거움을 뜻하는 말 아닌가. 25년이란 시간 동안 시대와 동행하며 작품을 만들고 활동해온 나날들이 결코 편하고 즐겁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 긴 시간을 보너스로 생각해왔다니. 뜻밖의 겸손한 표현에 감탄했다.


일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누구나 한번 일을 시작하면 10년, 20년씩 하고 베테랑이 되는 줄 알았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분야든 변함없이 자신의 몫을 해내며 오래도록 일을 하는 이들은 소수였다. 내가 속한 음악 세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화려한 전성기를 누린 가수라고 해도 10년, 20년을 꾸준히 활동하며 자신의 작품을 이어나가는 아티스트는 소수에 불과하다. 잘 알려진 히트 레퍼토리를 반복하며 추억의 인물로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다. 일을 할수록 오래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더욱 깨닫는다. 어느 순간부터 오래 한 선배들과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존경심이 든다.


언젠가 버티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견뎌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이 글은 지난 6개월간 쏘아 올린 내 마지막 ‘조명탄’이다. 쉽게 쓴 날도 있었지만, 겨우 써낸 날도 있었다. 글감이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싸맨 밤도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끝내 후련하고 기쁘다. 이곳에 쓴 글 덕분에 다른 매체로부터 원고 의뢰를 받고, 그와 연관된 글을 쓰기도 했던 일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연재에 도움을 주신 분들, 즐겁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버텨내겠다. 글쓰기를 진작 포기하지 않은 걸 후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날도 있겠지만, 먼 훗날 그마저 보너스처럼 느껴지면 좋겠다. 또 다른 지면에서 만나 뵙기를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전쟁의 흉터도 언젠가 아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