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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ma Ward Jul 31. 2017

알쓸신잡 '전주' 편을 보고.

지극히 개인적인 느낀 점

여러가지 느끼는 점이 있어서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두고자 한다. 

알쓸신잡을 보면서 뭔가 채워지지 않았던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상해에서 중국어, 영어로 생활하고, 중국어, 영어 컨텐츠만 접하고, 그러다보니 보다 깊이 있는 컨텐츠에 목말라 있었다. 특히, '언어'라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중국에 나와 살면서 내가 왜 중국어, 영어 네이티브가 아닌지, 한국인으로서 다른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음을 탓하고, 억울해하기만 했다. 

알쓸신잡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한국인이고, 알쓸신잡이 한국의 각 도시들을 다니면서 이야기하는 화두들을 들으며, 나는 과연 내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싶었다. 예전 프랑스 친구가 그랬다. '너가 생각하는 것처럼 흑/백은 없어. 모든지 이면이 있는 거야.' 내가 한국과 한국회사를 박차고 나올 때 나는 한국에서 내가 느낀 부정적인 면만을 생각했다. 보수적인 문화(특히 내 주변 혹은 내 과거), 틀에 박힌 삶의 방식, '다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조금 다르게 살아보면 어떨까. 다른 직업을 가지고, 다른 일을 하면서, 다른 취미 생활과 사람들을 만나고, 조금은 느리게 살아보면 어떨까. 내가 경험한 한국은 그것도 정말 일부이기 때문에. 

전주의 청년몰에 적혀있었던 '적당히 벌어서 아주 잘 살자'. 그게 요새 청년들의 화두라는데,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제도 홍콩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 자신이 나에게 가하는 압박 - '싱가폴에서 좋은 잡을 몇 개월 안에 꼭 찾아야지'하는 그 압박을 조금은 내려 놓으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타지에서 사는 것은 아무리 expat package로 와도 쉽지 않고, insecure하고, 외로워. 그 도시와 너가 fit이 맞는지도 먼저 경험해본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아. 그리고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후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마. 서울에서 천천히 생각해보면서 너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찬찬히 생각해본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아. 내가 봤을 때 너가 원하는 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중요한 건 너가 좋아하는 일, 가족, 친구들, 그런 소중한 것들이야.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이 이야기했다. 조선 왕의 어진(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이야기다. 자신이 정치를 그만두게 된 계기 중의 하나는, 자신의 얼굴이 나온 사진 10년 치를 검색해서 찾아보았을 때라고 한다. 자신이 참 힘들어보였다고 한다. 살면서 자신을 바라보기는 참 어렵다. 그래서 사진을 통해 자신을 봐야한다고. 황교익도 공감했다. 자신은 이전에 일할 때 웃은 적이 없다고, 그러나 지금은 변했다고. 아주 많이 웃는다고.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년 전까지 회사에 다닐 때, 처음 상해에 여행을 왔을 때 만난 친한 한국인 동생이 있다. 이 친구는 나의 퇴사, 미국/남미 여행, 상해 석사 입학까지 모든 여정을 알고 나름 함께 영향을 주고받은 친구다. 최근 그 동생이 상해를 다시 방문해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랬다.
"누나 회사 다닐 때 상해 방문했을 때는 화장도 하고 차려입고 뭔가 스트레스가 많아보였어. 지금은 되게 스트레스가 없어보여."
"지금은 그때만큼 돈도 없고 가진 게 많지 않지만 마음이 편해."
내 최근 사진을 본 친구들은 젊어졌다고 하기도 했다. 그 때처럼 비싼 옷을 입고 있지도 않고 정돈된 머리와 화장을 하고 있지도 않지만, 화장 안한 얼굴에 마음대로 빨갛게 염색한 머리를 하고 있는, 편안한 내 모습이 좋다. 

삶의 스트레스와 여정은 계속되지만 적어도 나는 그 때 내 삶을 짓누르고 있었던 각종 스트레스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중국 생활에서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지만, 그 때 내 영혼을 짓누르고 있었던 어두운 무게는 사라졌다. 유시민이 그랬듯이 내 스스로가 웃고 있지 않다면, 직업을 바꾸고 환경을 바꿔야할 때다. 그래서 바꾸었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이외, 조선왕조실록, 조선의 천주교 박해(모두가 평등하다는 메세지에 많은 여성 신자들이 생겨났다고) 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요즘 읽고 있는 '여자의 독서'(김진애 저)에서는 갖가지 삶의 고난 혹은 무게를 견디며, 나름의 방식으로 이겨낸, 혹은 자신답게 즐기고, 살아간 여성 작가들과 여성 캐릭터들을 조명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간접 경험하면서 나는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너무 압박하지 않기로 한다. 나의 다음 싱가폴 여정이 예상 외로 잘 풀려가고 있듯이, 모든 일은 잘 될 것이고, 나는 나의 뿌리와 자존감을 잃지 않은 채 계속 나아가면 된다. 천천히, 한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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