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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Mar 11. 2021

불법체류자와 Isabella

어제 마지막 환자로 온 사람이 Brian W.라는 나랑 오랫동안 환자와 의사로 관계를 맺은 동년배의 남자였다. 한동안 큰 Construction 회사를 운영하며 나랑은 친구처럼 지내왔었는데, 오랜만에 본 그는 많이 변해있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그나마 일하던 직장은 이번 코로나 사태로 문을 닫게 되고 힘든 생활을 보내는 것 같았다.  체중도 몰라보게 줄어 좀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도 늘 유쾌한 이 친구를 보면 꼭 물어보는 것이 하나 있다.  


How’s Isbella doing these days?


10년도 지난 일이다.  어느 날 오피스로 Brian 한테 전화가 왔다.  와이프랑 일요일 아침이면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동네 식당이 있는데, 거기에 서빙 일을 하는 멕시코 소녀가 하나 있다고 했다.  너무 착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데 자기가 보기엔 치아에 문제가 많아 보인다고 한다. 언어소통에도 문제가 있지만 치통을 달고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당시 Brian 이 친구도 우리 치과에서 큰 공사를 하는 중이라 뭐 눈에는 뭐만 보였던 것 같다. 큰 비용이 들지만 않는다면 자기가 부담을 할터이니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냐는 전화였다.  치과에 자주 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식당 주인에게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지만 자기가 어떻게 해보겠다고 했다.


흔쾌히 동의를 하고 Isbabella 가 왔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앳된 멕시코 소녀였다.  첫눈에 딱 봐도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되었다.  분명 이 소녀는 불법체류자였다.  미국엔 정말로 많은 남미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많은데 그중엔 아마 절반은 불법체류자 신분일 것이다.  미국 내에 허드렛일은 흔히 ‘멕시칸’이라고 부르는 남미 사람들이 도맡아서 하고 있다. Isabella처럼 식당일, 잔디 깎는 일,  흔히 막일은 도 맡아서 한다. 불법체류의 신분이니 당연히 인건비는 너무나 저렴하고 일도 성실히 하니, 모두가 동의하듯 미국은 이 남미 출신의 이민자들이 없으면 정말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를 아는 정부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한때 한인들 가운데에도 신분이 불안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부푼 꿈을 가지고 미국에 입성을 했지만, 불안한 신분 문제로 인해 고통의 나날을 보낸 분들이 많았었다.  KoreaTown이라고 불리던 한인타운 안에는 합법 신분을 가지지 못하는 분들이 모여 살았고 그런 분들이 주위에 늘 있었다. 때론 숨겨주고 은행 계자를 빌려주고, 사기를 당하고 하는 경우가 일상이었다.  추방당하는 분들도 있었고, 어떻게든 힘들게 이민 절차를 밟아 그야말로 10년 15년이 걸려 합법적인 신분을 가질 수가 있는 분들도 많았다.  이렇듯 누구든 이민을 오는 분들은 저마다의 만리장성 같은 사연을 가지고 있고, 지금은 ‘라떄이야기”로 전락되고 말았다. 


Isbella를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내 누이가 될 수도 있고, 조카가 될 수도 있는 아이였다. 상황은 그랬고, 입을 벌려 상태를 보니.. 충격적이었다.  앞의 치아 몇 개만 남겨놓고 음식을 씹을 수 있는 치아들은 모두 망가져 있었다.  그 상태가 그냥 충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부서져 잇몸이 남은 부분들을 다 덮고 있으며 고름이 여기저기 간헐천처럼 퍼져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 많은 시간들을 고통 속에서 보냈을 이 아이를 앞에 두고 보니 내 마음이 무너진다. 


나한테 온 첫날 상한 치아들을 모두 제거해버렸다. 치료 후 바로 다시 식당으로 가야 하는지라 한 방울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봉합을 얼마나 많이 한지 모르겠다.  오피스에 비상시 남겨둔 항생제, 진통제 모두 쥐어 주었다. 나머지 앞 치아들은 더 이상 상하지 않기 위해 모두 최고의 재료들로 Crown으로 씌워 버렸고, 부분 틀리로 씹을 수 있는 기능을 회복시켰다.  먼저 말을 꺼낸 Brian에게 틀리 제작비를 넘겨주었고, 비용을 지불하게 만들었다.  나만 뿌듯할 수는 없는 일…  


Isabella를 보지 못한 지 한참이 되었다.  들리는 말은 그 식당을 떠났다고 한다.  어디에 있던 행복하기만 바랄 뿐.  틀리는 계속 조정을 해 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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