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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Nov 29. 2022

물이 빠진 내 보물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제일 소중한 것은 내 카메라다.  5-6년 정도 된 Leica Q1. 출시되고 침만 질질 흘리고 있다가 눈 질끈 감고 사고 치고.. 그 뒤로 내가 가는 곳 어디나 동행했다. 색감이나 Clarity에 대해선 끝판왕이라 다른 어떤 카메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약점이라면 물에 약했다. 조금이라도 비를 맞으면 엄청난 noise 가 센서를 지배했다. 몇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긴 했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치명적 약점이었다.  3-4년이 지나 Leica에서 방수 가능을 upgrade 해서 Q2 가 나왔다.  탐이 나지만 내 첫사랑 같은 Q1을 버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 


이번 여행에서 지옥을 경험했다.  Plitvice National Park 폭포 물이 흘러내리는 호숫가 위로 난 deck 이 만들어져 있는 산책길 위에 Gorilla tripod를 세우고 폭포 물길 잡으려 speed를 1/25초로 맞추고 친구들

세워놓고 타이머 눌려서 돌아서는 순간.. “악~~~”  소리를 지르는 친구 얼굴이 보인다.  돌아보는 순간 

내 카메라가 물속으로 풍덩 ~~.    난간 밑으로 수심 1.5 미터 정도의 바닥에 내 카메라가 누워있다..   머리가 하얘졌다.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카메라를 건졌지만 올라올  수가 없었다.  난간에 매달려 허둥거리고 있는데 주위에서 등치 좋은 친구들이 날 끌어올렸다..   그런 와중에도 내 손엔 죽어라 시원하게 입수한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본능적으로 배터리를 빼고 물기를 털었다. 그리곤 한동안 난 정신이 나가 있었다..  내 첫사랑이 내 눈앞에서

물에 빠져 사망해 버렸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허탈감이란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 카메라에

대한 마음을 아는 와이프가 안쓰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원 안 화장실에 손을 말리는 blower 가 있어 한참을 말렸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환기가 잘 되는 곳에 고이 모셔놓고..  가능성은 없지만 제발 제발 부활하기를 빌고 또 빌고..  메모리카드는 다행히 무사했다.  “카메라는 사망했지만 추억은 살았다..”라고 위로는 했지만 나도 그 카메라랑 같이 죽었다.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언제든지 믿을 수 있는 스냅샷 보조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그래서

늘 같이 가지고 다니던 Ricoh III (이 카메라도 사실 장난이 아닌 물건이긴 한데…). 가 있어..  여행이 끝나기 전, 혹시나 하고 배터리를 넣고 스위치를 켰다. ON을 알리는 작은 led light 이 들어온다.. 만.. 세?

그런데 이상한 잡음이 계속 들리고 렌즈가 포커스를 맞추지 못하고, 셔트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  

그럼 그렇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나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물에 빠진 이 카메라를 고치는

가격이 삼천불을 넘어간다는 글이 있다..  다시 한번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 상태로 거의 일주일을 이어간 여행이 끝나는 동안 내 카메라는 luggage 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가방 챙길 힘도 없어 며칠을 방치하고  있다가 빨래를 꺼내고 내 카메라와 다시 마주했다.

이 친구를 보내줄 마음은 없고, 완전하게 복원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하는 생각으로 배터리를 넣고 스위치를 켰다.  초록색 불이 들어왔는데 소음이 들이지 않는다.  렌즈가 움직이며 Auto focus 가 잡힌다. 셔터가 눌려지고 저장이 된다.. 뭐야.. 부활….. 한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며칠을 더 통풍 잘 되는 곳에 모셔놓고 기다렸다..   찍힌다..  정상처럼.. 약간 색감이 달라졌다.. 약간..  매캐닉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센서에 약간의 노이즈가 보인다..  아… 그래도 이게 어디야..  


조금 불구가 있다고 해도.. 난 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했지..

그래 나랑 같이 늙어가자 내 첫사랑이여..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되었던 Plitvice Nation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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