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자의 썰 Jun 24. 2024

말의 무게

치과에서 


와이프가 둘째를 가지고 정기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었다.  이것저것 검사를 한 후 의사가 하는 말이 아무래도 머리에 작지 않은 Cyst가 보인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하기 위해 4주 뒤에 다시 와서 의논해 보자는 것이다.  혼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온 와이프가 밤새 펑펑 운 기억이 있다. 다음 날 내가 그 의사랑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와이프가 들은 말을 반복해서 들은 것은, 우리에게 더 어려운 시간만을 약속할 뿐이었다. 다음 검사를 위해 기다리는 4주는 아마도 우리 기억에 최고로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벌써 상상이 되는 그대로, 와이프는 밤마다 울며 잠이 들었었다.  그렇게 힘든 4주가 지나가고 다시 같은 병원을 찾았다. 지난번 의사분은 아주 젊은 여자분이었고, 새로운 검사 결과를 가지고 상담을 하는 분은 좀 나이가 있으신 여자분이었다.  너무나 긴장을 하고 있는 와이프와 나를  보면서 좀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임신 초기라 image만 가지고 확정은 할 수 없는데 Cyst처럼 보이는 것이 있긴 한데, 초기엔 종종 보이는 것들이고 그것만 가지고 Cyst를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런 것들이 실제로 Cyst로 발전하는 경우는 자기는 보지 못했고, 논문에서도 거의 없다고.  자기가 보기엔 극히 정상이니 걱정을 할 컨디션은 전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다행히도 둘째는 아주 정상적으로 출생을 했고, 이 아픈 기억은 아주 오래오래 지속이 되어서, 우리 마음속에 커다란 상처로 남았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내가 갓 치대학원 졸업하고, 신출내기 의사 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어쩌다 보니 나도 환자분들을 접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보단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자리에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혀의 가장자리에 자라고 있는 종기가 암처럼 보인다, 오른쪽 어금니 두 개가 오래갈 것 같지 않다, 앞니 6개 모두 발치하셔야 할 것 같다, 왼쪽 사랑니 옆으로 자라고 있는 피부조직이 암 같아 Biopsy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전체 발치를 해야 할 것 같다, 새로 하신 것 같은 임플란트 4개는 문제가 있어 빼셔야 할 것 같다…  이런 것들은 치과에서 너무나 흔한 이야기 들이다.


치과에 종사하는 우리 동료들은 매일 하는 일반적인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듣는 환자분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것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또 전달을 해야 하는지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런 가운데 경험이 많지 않은 의사들이랑 같이 있으면서 그들이 환자분들에게 증상을 설명하고, 치료에 대해서 상담을 하는 것을 어쩌다 어깨 넘어도 들으면 좀 적지 않게 놀란 적도 있었다. 증상에 대해서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문자 그대로 설명하고, 또 교과서에 제시된 것처럼 치료방법을 줄줄이 설명하는 것을 잘못이라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솔직한 심정은 그렇게 교과서 같이 대응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고 싶다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고, 가능한 치료방법들을 잘 설명해서 환자분들이 결정을 내리면 거기서 우리의 상담 역할을 다 했다고 말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우리가 환자 개개인의 처지를 다 알진 못해도 좀 더 따뜻하게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  한 번은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환자분이 전화가 왔다. 새로 같이 일을 시작한 의사가 정기 첵업중에 잇몸 피부에 조직이 좀 이상해 보여서 암 같아 보이니  Biopsy를 하라고 추천을 받았는데 자기는 걱정이 되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청해왔다. 찍어 놓은 intraoral image가 있어 찾아보니 biopsy 없이도 충분히 진단은 가능했으나, 이렇게 상담을 해주었다, “실제 암조직으로 보이는 경우와 비교를 해보면 이런저런 점이 비슷해 보여 의심을 할 수 있으나, 많은 경우에 정상적인 범위에 있는 조직도 같은 모양을 할 수 있으니, 비슷한 조직이 발견되었고, 힘든 고민을 오래 가지고 있지 말고, 번거롭겠지만, biopsy를 한번 해서 필요 없는 고민을 해결해 버리자.. “  그분은 실제로 생검을 했고, 암에 대한 막연한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같은 주제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이슈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감정이 있는 우리가 그 감정을 잘 이해만 할 수 있다면 일상의 치료현장에서 많은 것들이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반대의 경우도 반듯이 있겠지만.


교과서적인 접근은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  내가 나의 의무를 충실히 했다기보단, 이후에 따르는 어떠한 책임도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 할 일을 다 했다는 조직적 의무감에서 머무르지 말고, 우리 사이에 충분한 communication이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뱃속에 있는 아기 머리에 Cyst가 보인다는 그 말 한마디가 가지는 무게가 어떤지는 교과서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환자분들을 만나면서 시작해야 하는 진정한 공부는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경제적 이유로 도저히 임플란트를 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환자분에게 ‘어쩔 수 없지만 부분 틀리라도 치료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과  ‘임플란트의 효과를 보시지 못해 아쉽지만, 제가 최선을 다해서 임플란트 버금가는 부분 틀니를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  그 말을 듣고 치료를 시작하는 환자분의 마음을 어떨까? 

매거진의 이전글 칫솔가게, de Witte TandenWinfl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