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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자의 썰 Oct 28. 2024

은퇴? 일탈!

이제 뭘 하실 거예요? 오늘은 뭐 하세요? 다음엔 어디로 여행을 가세요? 부럽네요,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요즘 내가 많이 받는 질문들이다. 어쩌다 내가 이런 황홀한 질문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당분간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것 같고, 앞으로도 적응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올 초여름에 오피스를 정리했다. 그리곤 백수가 되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오피스를 새 주인에게 넘기면 6개월에서 12개월 정도는 남아서 뒷정리를 해주어야 한다. 나도 그런 contract에 서명을 하고 서류를 마무리했지만, 같이 일하던 페이닥들이 남아 주면서, 그 기간을 채우지 않고, 부담 없이 나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오피스를 마무리하는 과정은 예상대로 참 힘든 시간이었다. 받아 놓은 날짜가 다가오면서, 스태프들이랑 눈을 마주칠 때마다, 오래된 환자분들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올라오는 미안한 마음, 아마도 그것들이 개인적으로는 오피스를 정리하는 가장 challenge 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서로 다 알지만 내가 더 이상 오피스로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고 스테프들도 그렇고 그 사실을 쉽사리 입에서 꺼낼 수가 없었다. 예상하기에 나는 미안한 마음에, 스태프들은 화까지 났을 것 같은 당황감에 서로에게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새로 온 원장선생님이 인사를 하러 왔을 때의 분위기란 참 어색하기 이를 때 없었다.   마지막 날이 되어 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평소와 똑같이 내일 기쁜 마음으로 보자는 말로 마무리했다.  그 내일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오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스태프들이랑 연락은 했지만 서로들 아직 만날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바쁜 연말 지나고 다 같이 만나자 라는 기약을 했다. 


이별은 짧을수록 좋은 건 맞는 말인 것 같다. 얼핏 보기에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2-3년 안에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데 좋은 기회가 있었고, 와이프와 아이들의 전적 동의가 있어 큰 마음의 부담을 들어내고, 이 Transition의 과정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리되지 않을 것 같은 감정은 그냥 그대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정리가 될 것 같지도 않아서. 그리곤 꾹 눌러왔던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까? 


누가 보더라도 내가 은퇴를 생각하기에는 이른 나이가 맞다 (Mid 50). 그리고 나의 전부였던 오피스를 정리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은퇴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혼자 짊어지고 온 책임감이 너무 무거워졌던 것 같다. 영어식 표현에 Monkey on the shoulder이라는 말이 있다. 어깨에 매달린 원숭이가 점점 커져서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된 모양이다. 치과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나의 천직이나, 혼자서 많은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세팅을 벗어나고픈 것이 오랫동안 쌓인 바람이었다.  일선에서 환자분들을 보는 것도 좋으나, 그에 관련된 의미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리스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나 당장은 휴식도 필요했다. 그래서 와이프의 허락을 얻어, 딱 일 년만 쉬자! 


첫 번째로 친 사고는 괴나리봇짐 싸서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 엑상프로방스로 날아갔다. 거기서 거의 2주를 혼자 돌아다녔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유를 누렸다. 어릴 적부터 내 관심은 미술이었다. 그중에서도 회화였다. 그림을 커리어로 하지 못하는 이상, 미술사에 올인하고, 그중에서도 현대미술과 그 아티스트의 흔적을 틈만 나면 쫓아다녔다. 시간에 쫓기는 신세에서 벗어난 후, 내 최애 아티스트 폴 세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엑상프로방스가 내 첫 번째 일탈장소가 되었다.  세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모든 곳을 따라가고 세잔이 무척이나 많이 그렸던 산, St. Victoire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호사를 누렸다. 허락이 된다면 거기서 발견한 세잔에 대한 글도 써보고자 한다..  이렇게 25년간 쉼 없던 커리어를 일단 접고, 받아 놓은 일 년의 일탈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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