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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기업 문화, 왜 이 지경이 됐을까?

by DataSo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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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기업 얘기만 나오면, 사람들 표정이 미묘해집니다.

“들어가긴 하늘의 별 따기인데, 막상 들어가면 또 다른 지옥이다.”

공무원·공기업 준비하던 친구들에게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죠.


도대체 대한민국 공기업 문화는 왜 이렇게 어정쩡해졌을까요?

바깥에서는 여전히 “철밥통 + 워라밸 직장”으로 신화처럼 소비되고 안에서는 MZ·X·베이비붐 세대가 서로를 향해 한숨을 쉬는 구조.


오늘은 이 질문을 데이터와 인문학의 언어로 같이 뜯어보려 합니다.




1. 데이터로 먼저 보는 공기업의 현재


먼저 공기업의 “겉모습”부터 볼까요?


기획재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를 보면, 대국민 서비스 만족도는 대체로 높은 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객만족도 결과는 기관 경영평가에도 반영되는 만큼, 많은 공기업이 서비스 품질 지표를 관리하고 있죠. ([지표누리][1])


흥미로운 건 “조직 내부”의 표정입니다. 공공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을 보면,


최근 몇 년간 조직 몰입도는 하락 추세. 반대로 이직 의향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KIPF][2])


또 직장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성과평가 만족도 조사에선, 전체적으로 만족한다는 응답이 33.8%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직장 유형 중에서는 공기업이 45.2%로 가장 높지만, 이 수치 역시 절반이 안 되는 “간신히 상대적으로 낫다”에 가깝습니다. ([20slab.org][3])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밖에서 보면 “좋은 직장” 지표는 꽤 준수하지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 괴리가, 우리가 말하는 “이상한 공기업 문화”의 출발점입니다.




2. 공기업 문화, 왜 이렇게 굳어졌을까?



2-1. ‘안정성’이 모든 가치를 압도해 버린 구조


한국에서 공기업은 오랫동안 “안정된 삶의 티켓”이었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위해 좋은 직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세대별로 54~75% 수준인데, 그중에서도 공공부문은 안정성과 복지가 강력한 매력으로 작동해 왔습니다. ([인재개발원][4])


문제는 이 안정성이 조직의 목적보다 개인의 생존전략을 더 강하게 자극했다는 점입니다.


‘미션을 위해 모인 집단’이 아니라 ‘좋은 조건을 지키기 위해 서로 눈치 보는 집단’이 되기 쉽습니다.


안정을 잃지 않기 위한 가장 안전한 행동은 뭘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움직입니다.


“위에서 시키는 것만 정확히 하고, 사고를 내지 않는다.”


이 순간부터 창의성보다 규정 준수, 문제 해결보다 책임 회피가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2-2. 연공서열 + 관료 문화의 결합


공기업은 태생적으로 관료조직과 가까운 구조입니다.

정해진 예산, 엄격한 감사, 여러 단계의 결재 라인.


이 환경에 오래된 한국식 연공서열 문화가 더해지면 이런 장면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보고는 윗사람이 좋아할 방식으로.”

“일의 실질보다 형식·절차를 더 중시하는 결재라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보다,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


혁신적인 아이디어보다, 기존 룰을 잘 아는 사람이 권력을 쥐게 되는 구조입니다.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게 분리되기보다, “연차와 직급”이 곧 힘이 되는 세계.


그렇다 보니, 젊은 직원들은 어느 지점에서 이렇게 체념하게 됩니다.


“여긴 시스템을 바꾸는 곳이 아니라, 시스템에 적응하는 곳이구나.”



2-3. ‘공정성’에 대한 세대별 인식 충돌


공공기관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이들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키워드는 단연 공정성입니다. ([Keli][5])


채용·승진·평가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룰이 작동한다고 느끼고 “연차·학연·관계”가 기회를 좌우한다고 의심합니다.


반면 기성세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우리도 다 그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조직이라는 건 어차피 완벽할 수 없고, 적당히 맞춰가야 한다.”


이 공정성 인식 차이는 조직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습니다.

한쪽은 “이 게임은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다”고 느끼고, 다른 쪽은 “요즘 애들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하죠.


이때 공기업의 폐쇄적인 정보 구조가 문제를 더 키웁니다.


평가 기준은 있지만, 체감되는 설명은 부족하고 인사·보직 결정의 데이터는 있지만, 외부와 내부 구성원에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공정성 ‘실제 수준’보다 공정성 ‘체감도’가 더 빠르게 무너지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3.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비판”이 아니라 “리디자인”입니다.

공기업 문화가 이렇게 된 건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 설계된 구조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구조를 바꾸면 행동도 달라집니다.



3-1. 공정성을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로 보여주기


공기업은 이미 많은 지표를 갖고 있습니다.

고객만족도 조사, 경영평가, 내부 만족도 조사, 인사 데이터 등. ([환경부][6])


하지만 대다수 직원과 시민에게는 이렇게 보입니다.


“어디선가 평가한다는데, 나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필요한 건 데이터를 공개하고, 해석까지 함께 제공하는 것입니다.


채용·승진·평가의 기준과 결과를 “숫자 + 스토리”로 설명

조직 내 성별·연령·직군별 기회 접근성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공개

불합리한 결과가 나오면, 숨기지 말고 “개선 액션 플랜”까지 같이 제시


‘우리가 공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선의의 선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 세대는 “보여주는 데이터”를 통해 신뢰를 형성합니다.



3-2. 연공서열이 아닌 ‘공공 미션 기반’ 리더십


공기업 리더 선발에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몇 년 차냐?”가 아니라,


“이 사람이 이 조직의 공공적 목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미션을 위해 어떤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 입니다.


실패를 무조건 징계로만 연결하지 않고, 학습 자산으로 남기는 리더

‘감사 피하기 조직’이 아니라 ‘문제 빨리 드러내는 조직’을 설계하는 리더

자기 권한을 지키는 데서 나아가,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시스템을 물려주려는 리더


이 기준이 실제 인사·임명 과정에서 적용되기 시작할 때 공기업 문화는 서서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3-3. 작은 스타트업처럼 실험하는 공기업 안의 ‘작은 팀’


모든 공기업이 한 번에 애자일 조직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작게·빨리 실험하는 팀이 곳곳에 생겨야 합니다.


디지털 전환 TF, 시민 경험 개선 랩,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태스크포스 등

짧은 주기로 목표를 설정하고, 결과를 공유하며, 실패도 기록하는 팀


이 팀들이 “공기업 안의 스타트업”처럼 움직이고,

여기서 검증된 방식을 점차 본 조직으로 확산시키는 구조를 만들면,

“공기업은 원래 안 변해”라는 말이 조금씩 약해질 수 있습니다.




4. 결국, 공기업 문화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공기업 문화가 이 모양이 된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사회 전체에서 용인해 온 관행과 욕망이 공기업이라는 느리지만 큰 그릇에 가장 선명하게 침전된 결과.”


안정성에 집착하고, 연줄과 관행을 당연하게 여기고 공정성을 말하면서도 투명한 데이터를 요구하지 않았던 사회.


그 사회가 만든 공기업이니, 당연히 그 문화도 닮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기업 문화를 바꾼다는 건 결국 우리 사회의 질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5. 독자에게 드리고 싶은 질문


공기업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면,

혹은 공기업을 이용하는 시민이자, 언젠가 지원을 고민했던 준비생이라면 이 질문을 한 번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공기업에 무엇을 기대했고, 지금 그 기대는 어디에서 깨지고 있는가?”

“내가 몸담은(혹은 이용하는) 공기업이, 앞으로 10년 뒤 어떤 조직이 되길 원하는가?”


댓글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공기업 문화에 대한 진짜 변화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는 집단적 토론에서 태어나니까요.






마지막으로, 긴 호흡의 투자처럼 조직도 한 번에 바뀌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데이터로 직시하고, 말로 나누고, 제도로 조금씩 고치는 과정을 포기하지 않을 때,

공기업 문화도 충분히 리레이팅(re-rating) 될 수 있다고, 저는 장기투자자의 마음으로 믿고 있습니다.


[1]: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103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결과"

[2]: https://www.kipf.re.kr/cmm/fms/FileDown.do%3Bjsessionid%3DF89A4AF5974FFEA7E81898A3992CA7D0?atchFileId=FILE_000000026752Do4&fileSn=0 "공공기관 종사자의 조직만족도 영향요인 연구"

[3]: https://www.20slab.org/Archives/38755?utm_source=chatgpt.com "직장별 성과평가 만족도 조사 결과 발표"

[4]: https://www.nhi.go.kr/upload/basicBook/2023_02.pdf?utm_source=chatgpt.com "2. 데이터로 알아보는 MZ세대 공무원( ..."

[5]: https://www.keli.kr/info/pltfm/proj/45/datamng/info/detail.do?dataSn=179&pageIndex=1&pageItm=12&searchClArr=2&searchClArr=6&searchGbn=0&searchOrderSort=0 "[연구보고서 2024-09] 공공기관 MZ세대의 공정성 인식과 ..."

[6]: https://www.moef.go.kr/nw/nes/detailNesDtaView.do%3Bjsessionid%3DTmjk1jq-2DV3Ocdj_2xvzylUZRSnk1-iTajLU40L.node30?menuNo=4010100&searchBbsId1=MOSFBBS_000000000028&searchNttId1=MOSF_000000000073536 "2024년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결과 | 보도·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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