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생충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 가족들과 함께 기생충을 봤다. 불편하단 감상을 넘어 힘들었다. 장르조차 모른 채 영화관에 들어선 나에겐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잡다한 생각을 거둔 채 감정에만 집중한 나는, 처참함과 갑갑함이 마음속에 쌓여감을 느꼈다. 그리고 기우가 돌에 맞아 쓰러졌을 때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그건 기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이 아니었다. 당신들을 영화 밖으로 구해내고 싶었고 구할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꼈다. 그들은 결국 그 길의 끝으로 가고야 말았다.
영화의 처참함을 외면할 수 없던 이유는 그들이 단지 영화 속 인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영화 밖으로 구출해내고 싶었지만 그들은 사실 영화 밖 우리의 현실이었다. 미치도록 구하고 싶지만 어찌할 수 없는 그 막막함에, 우리의 처참함에 눈물이 쌓였고 기우의 피와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기생충에 눈물 흘릴 장면이 있냐며 묻는 사람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러한 감정은 나 역시 뚜렷한 정체를 알기 어려웠다. 그리고 스스로의 눈물의 근원을 찾은 건, 영화를 곱씹으면서가 아니라 이 감정을 느꼈던 때를 생각해보면서 였다. 영화를 보며 이렇게 터져나오는 눈물을 흘린 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볼 때였다. 참고 참다가, 아이들을 구해내고 싶지만 무력한 나와 어른들에게 갑갑함을 느끼며 또 참고 참다가, 무니가 눈물을 터트렸을 그 때. 낯선 감정이지만 난 기생충에서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느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베트남에 돌아가면 그곳에서 기생충을 한 번 더 봐야겠단 다짐을 했다. 영화 자체를 한 번 더 봐야겠단 생각도 있었고, 그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지가 궁금했다.
베트남 CGV의 메인 화면을 기생충 포스터가 장식하고 있었고(CGV는 베트남에서도 잘 나가는 영화관이다), 실제로 영화관이 거의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사람이 기생충을 보러 왔다. 외국인이 가득한 외국 영화관에서 우리 배우들이 우리말을 하며 스크린에 등장하니 가슴이 살짝 떨렸다. 벅차다는 단어는 과한 것 같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벅찬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나는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가 본 기생충은 영화의 전반에 긴장감이 깔려있었고, 그 와중에 유머가, 두려움이, 처참함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봉준호 감독의 웃음 코드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잘 맞는구나 싶었다. 근데 웃음이 영화관을 지배하여 기생충을 삼켜버렸다. 난 베트남에서 한 번의 기생충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걸 ‘기생충 베트남 반응’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경험한 이 영화관, 내 자리에서만큼은 뭔가 잘못 소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들은 계속 웃었다. 영화의 분위기가 서서히 반전될 때에도, 소파 신에서 박사장이 지하철 냄새에 대해 말할 때에도, 기택(송강호 배우)의 냄새에 코를 막는 연교(조여정 배우)와 그런 연교를 보곤 자신의 옷깃 냄새를 맡는 기택이 나올 때에도 그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물난리에 잠긴 반지하 변기에서 물이 역류하자 그들이 또 웃었다.
나에게 너무나 비참하게 다가왔던 그 장면들이 웃음 코드가 되었다. 그들의 반응만 살피자면, 그들은 잔인한 장면이 갑자기 튀어나오며 끝나는 코믹 영화를 보고 있었다. 블랙 코미디가 아닌 그냥 코미디. 누가 봐도 잔인한 그 장면, 오직 그 장면을 제외하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국 브랜드를 내 건 외국 영화관에서 본 한국 영화. 그리고 그보다 더 특이한 관객의 반응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 줬다.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느끼는 바가 다르단 걸 몸으로 알 수 있었고, 사실 그건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여기까지가 내 단편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관객의 반응에 당황하며 영화관에 앉아있었듯, 영화관에 있는 모두가 계속 웃고만 있진 않았을 거다. 또한 다른 상영관은 달랐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 내 주변에만 이상하게 웃음 바이러스가 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이 지난 후에도 위와 같은 생각을 저버릴 수 없어, 베트남에서 기생충을 본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경험을 묻고 다녔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들의 경험은 나와 전혀 달랐다. 다른 이들에게 묻지 않았다면 ‘베트남에선 기생충을 단순한 코믹 영화로 보나. 이상하다.’하고 글을 마무리 지었을지도 모른다. 난 유달리 웃음 많은 커플의 옆에 앉았을 것이다. 또 그들은 영화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어둠 속에서 서로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앉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퍼트린 웃음이 유독 내 주변으로 번졌을 거다.
베트남 영화 문화는 한국에 비해 수선스럽지만, 그 수선함 덕에 관객이 어떤 감정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다른 관객의 리액션에 정신이 팔려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진 못했지만 많은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알아줬음 싶은 건, 앞서 말했듯 내 경험이 ‘기생충 베트남 반응’이 아니라는 것. 보다 일반적인 기생충 베트남 반응은, 현재 베트남에서 기생충 패러디가 유행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베트남에 거주하는 누군가가 해준 이야기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상영관에서 기생충을 한 번 더 보고 후기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