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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두세술 Jan 07. 2019

욕망과 죄의식의 영화

<박쥐>의 미쟝센

<박쥐>는 가톨릭 신부가 뱀파이어가 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신부 상현은 해외 백신 개발 실험에 참여했다가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피를 토하며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이내 어떤 피를 수혈 받은 그는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난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신부로서, 사람으로서 억눌러왔던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는 친구의 아내 태주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끼며 성관계를 맺고, 친구를 살해하기까지 한다.


걷잡을 수 없는 욕망과 그로 인한 죄의식을 그린 <박쥐>는 색채의 영화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파란빛이 비치는 병실을 보여주며 음울하고 기괴한 영화의 분위기를 그린다. 파랑은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색채인데, 특히 태주의 의상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에서 태주는 누렇고 칙칙한 옷을 입기도 하며, 강렬한 파란색의 옷을 입기도 한다. 어우러지지 않는 이 두 색채는 그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데, 파랑은 그녀의 강렬한 욕망과 광기를, 바랜 듯 누런색은 가족에 복종하는 그녀의 모습을 나타낸다.


태주의 첫 등장 장면

태주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강렬한 파란 상의 위에 칙칙한 녹색 조끼를 걸친 것은 그녀가 내재된 욕망과 광기를 숨긴 채, 사회적으로는 순종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상현에게 다시 연락하는 태주

위 장면은, 뱀파이어 상현의 모습에 도망갔던 태주가 그에게 다시 연락을 취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그녀는 칙칙한 누런색 의상이 아닌 화사한 노랑과 초록의 한복을 입고 있다. 상현으로부터 도망갔던 그녀는 강렬한 파랑의 의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앞의 두 마네킹이 그녀 대신 파랑의 의상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상현과 함께하게 될 그녀가 가족에게 순종하고 욕망을 숨기는 삶에서 벗어나, 파랑의 욕망과 광기를 향해 나아갈 것임을 나타낸다.


그녀는 남편 강우의 옆에서 순종적인 아내의 모습을 할 때에는 낮은 채도의 누런색 의상을, 상현의 옆에서 욕망을 표출할 때에는 높은 채도의 파란색 의상을 입는다. 특히 태주와 상현이 성관계를 맺을 때 그녀는 새파란 원피스를 입고 등장하며, 그녀의 욕망과 광기가 심화될수록 그녀의 파란색 의상은 원피스를 넘어 신발로, 속옷으로까지 확장된다. 또한 광기의 파랑은 그녀의 의상을 넘어 집 안의 소파로까지 확장되는데, 태주가 뱀파이어가 된 후 온 집 안이 하얗게 칠해지며 그 광기는 더욱 극대화된다. 특히 집안 식구들이 태주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은 무섭도록 하얀 복도와 새파란 옷의 태주, 새빨간 살해의 피가 대조되며 살해 현장의 잔인성을 극대화한다. 이와 같은 하양과 빨간 피의 대조는 영화의 초반에도 등장한다. 뱀파이어가 되기 전 피리를 불던 상현이 하얀 피리에 빨간 피를 토하는 장면이다. 결국 하양과 빨강의 광기는 상현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신자의 고해성사를 듣는 상현

<박쥐>는 인물을 이미지로 표현한다. 위 장면은 상현이 자살을 원하는 신자의 고해성사를 듣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상현은 신자의 자살을 만류하지만, 후에 그는 이 신자의 자살을 도와서 그녀의 피를 얻는다. 이 장면에서 화면은 흑과 백의 색채 대비로 인해 둘로 나뉘는데, 하양에는 가톨릭을 뜻하는 십자가가 존재하며 검정에는 가톨릭을 등지고 있는 상현이 존재한다. 이 이미지는 상현이 신부로서의 삶을 저버리고 새로운 욕망을 향해 나아갈 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박쥐>의 거울

영화는 소품 역시 하나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영화 속 거울과 조명은 특별한 역할을 한다. <박쥐>에서 거울은 상현의 욕망이 발현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상현은 태주에 대한 성욕을 느낀 후, 얼굴조차 다 담아내지 못하는 작은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스스로의 욕망과 싸운다. 상현은 내면에 억제되어왔던 욕망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후에 상현이 태주와 성관계를 맺고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이면서부터 거울은 본격적으로 상현과 태주를 비추기 시작한다. 상현과 태주가 거울을 직접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중적인 욕망을 거울이 비추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상현이 어떠한 죄의식 없이 태주를 강제로 데려가려 할 때, 그리고 상현과 태주가 강우 살해 사건에 대해 서로에게 죄를 떠넘길 때 거울은 그들의 모습을 비춘다. 거울은 그들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그들의 이중적 욕망을 폭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명 혹은 가로등 역시 특별한 역할을 한다. 상현이 장님 신부에게 “난 이제 수사도 아니고 신부도 아니에요.”라고 고백했을 때, 복도의 조명은 상현과 십자가 사이를 갈라놓는다. 상현이 장님 신부를 살해할 때에도, 높은 가로등은 상현과 신부를 갈라놓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바라봤을 때, 가족 살해가 이루어진 2층 복도의 얽히고설킨 형광등은 그곳에서 무자비한 살해가 일어날 것임을 예견하는 이미지로 읽을 수 있다.


<박쥐>는 하이앵글과 로우앵글, 카메라의 움직임을 비교적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태주가 치마가 뒤집힌 채 바닥에 넘어졌을 때, 그녀를 바라보는 온 가족의 시선은 로우앵글로 촬영된다. 이때 그녀에게 유일하게 손을 뻗는 사람이 상현인데, 집안에서 약한 위치에 처해있는 그녀와 그녀를 돕는 유일한 사람이 상현이 될 것임을 이 단 하나의 앵글을 통해 알 수 있다. 상현이 처음 피 맛을 봤을 때의 카메라 움직임 역시 의미 있다. 이 장면은 상현이 과다출혈로 쓰러져있는 신자를 찾아간 장면인데, 기도를 하던 상현을 중심으로 카메라가 360도 회전하자 그는 엄지에 묻은 신자의 피를 날름 핥는다. 신부와 뱀파이어라는 그의 이중성을 카메라 움직임만으로 담아낸 것이다.


영화에는 추락과 수직의 이미지가 자주 사용된다. 특히 상현이 태주를 품에 안고 건물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그렇다. 카메라는 뛰어내리는 상현의 머리 위에서 그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인다. 이때 카메라는 안겨있는 태주의 얼굴을 중심적으로 담는데, 그녀의 얼굴이 즐거움으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자살하는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카메라의 움직임은 추락의 이미지를 그린다. 그녀가 뱀파이어가 되는 것은 그녀에게 자유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만, 그것이 결국 추락을 향하는 길임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는 욕망에 이끌려 폭주하던 태주가 상현과 함께 숨을 거두게 되는 결말과도 연관이 있다. 강우의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햇빛에 타서 재가 되는 둘의 모습은 그들의 욕망이 죄의식에 부딪혔으며, 결국은 추락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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