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너가 원망스러운 날이다
친구랑 아이스크림하나를 두 개로 쪼개 나눠먹으면서 걷다가 문득 행복하다고 느꼈다. 너가 떠난 이후로 나는 행복할 때마다 화이트보드에 써놓듯이 내가 언제 무엇 때문에 행복했는지를 체크한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행복하구나. 유치하고 별 것 없어보이지만 사실 지금까지의 리스트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그러하다. 내가 유치한 사람이라서 그런가. 나는 아직도 너가 어떤 상황이였는지, 어떤 기분이였을지를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물론 달달한 아이스크림 하나로는 위로가 부족한 날들이 훨씬 많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왠지 너가 아주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하나만 먹었어도 그렇게 쉽게 떠나진 않았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너무 허무해서 그렇겠지. 너무 쉽게 떠난 것이 믿기지 않아서, 너무 쉽게 널 붙잡을 수 있었다고 착각하는 거겠지. 그런데도 나는 오늘도 너에겐 아이스크림이 없어서, 좋은 드라마를 못 찾아서, 따뜻한 전기장판과 귤이 없어서, 보들보들한 이불이 없어서 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너에게 쉽게 포기되는 것들이였다면, 그건 너무 슬플 것 같다.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견디는 것은 인간의 몫이지만 결국 삶과 죽음은 신의 것이라고 한다. 너가 삶이 허무하다고 느꼈다면, 그런 것 때문 아닐까. 이렇게 지지리도 못 견딜 것들을 견디고 견디더라도 결국 죽음 앞에서는 허무해져버리는 것이, 내 삶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사실 맞다. 중2병 같이 들리겠지만 인생은 진짜 허무한게 맞는거 같다. 특히 너의 장례식장에 가서 그렇게 느꼈다. 그렇게 눈부시게 빛나던 너가 한 줌 재가 되고, 사람들 모두 울고 슬퍼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바래진다. 누구보다 빛났던 너가 누구보다도 허무하게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나니, 삶에 엄청난 의미라는게 없는 것 같다.
근데 굳이 삶에 의미가 있어야 살아야 되니. 자신의 삶에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 살아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특히나 20대인 우리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갓 사회에 입성한 병아리 같은 우리가 어떤 사람은 죽어서도 못 찾을 "삶의 의미" 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없다해서 인생이 허무하다고 죽는 것이 참 억울하다. 우리에겐 정말 유치하게 아직도 아이스크림 하나 더 먹고 싶다는 이유로도 하루 더 살 수 있는 충분한 변명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난 너 몫만큼 유치해져서, 그런 유치한 이유들을 붙들고 계속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