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뮹뮹 Feb 04. 2017

ABC가 어려워요

영어 때문에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

누구나 여행을 다니다보면 그럴 수 있겠지만 우리 가족은 영어 때문에 쪽팔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언제나 여행을 다니다가도 간절하게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먹을 것이 정말 너무 없을 때, 또는 말이 안 통할 때였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잠시 여행상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 날은 디즈니 랜드로 가기로 했던 날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오빠랑 내가 방방 뛰어다녔던 것은 물론이다. 그 때문에 아빠 정신이 산만해졌건,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지만 결론은 아빠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불 위에 올려놨던 주전자가 바로 전기주전자였던 것이다.

부엌에서 펄펄 나오는 연기에 모두가 놀라 가보니 주전자 밑바닥이 녹아 타들어가고 있었고, 불은 주전자 손잡이까지 치솟고 있었다. 엄마가 황급히 불을 끄고 주전자를 싱크대에 던졌다. 주전자 밑바닥은 지옥에서 올라온 것과 같은 끔찍한 형상이었고 냄새도 독해서 머리가 핑 돌았다. 곧 화재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알아야 될 것이, 미국의 화재 알람은 정말 크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삐빅 삐빅 집 안에서만 작게 나던 소리가 급기야 웽웽 거리면서 엄청난 사이렌 소리로 온 동네를 울리기 시작했다. 그 때가 7시 정도밖에 안 되는 새벽이었는데,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에 우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집 밖으로 대피해야 했고 온 동네 사람들 조차 일어나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다. 화재 알람을 어떻게 끄냐고 손짓발짓 다 써서 물어봤지만 모두가 모르겠다고 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언젠가는 알아서 알람이 꺼지겠지 하면서 우두커니 집 밖에 서서 기다리는데 불길하게 멀리서부터 '삐요삐요'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하며 숨을 죽였지만 설마 하면 역시나인가. 영화에서나 보았던 커다란 소방 트럭에 소방관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우리 집 앞으로 도착했다.

나는 그 순간 정말 온 가족이 감옥에 들어갈 줄 알았다.

소방관은 녹아내린 전기주전자를 훑어보고는 환기를 시켰고, 그냥 아빠한테 몇 가지 조사 상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아빠는 영어를 잘 못한다. 그 동안, 엄마, 나, 오빠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소방관이 우리들을 모두 훑어보며 물었다.

"Who started the fire? (누가 불을 냈습니까?)"

아빠는 소방관의 제스쳐를 보고는, 아 저기 앉아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본 줄 알고, 일단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

"My daughter. (제 딸이요.)"

소방관은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따로 불러냈고, 몇 분 동안 전기주전자를 불에 달구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소방관 얼굴은 심각하고, 왜 아빠가 내 이름을 말했는지는 모르겠고, 억울하고 혼란스러워서 눈물이 저절로 펑펑 나왔다. 대략 30분후, 소방차는 또 굉음을 내며 동네를 탈출했다. 우리 가족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래도 그 날 디즈니 랜드는 갔다.......


두 번째 가장 기억이 많이 남는 에피소드는 필리핀에 갔던 때였다. 바닷가에서  이모부, 이모가 '낭만'을 즐기고자 카누를 신청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모부는 파도 위에서 노 젓기만 하는 것이 심심했는지, 이모를 곯려주기로 했는지 갑자기 카누에서 노를 젓다 말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영을 잘하는 이모부이기에 멀리서 보는 우리도 아무 걱정을 안했지만 겁이 많은 이모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고 카누에 벌떡 일어나서 구조대원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저 멀리서 구조 대원 한 명이 카누를 타고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모는 그 사람에게 

"Help!!!" 라고 외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때 하필이면 help 라는 단어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더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모는 온 바닷가가 떠나가라 이렇게 소리질렀다.

"Hello----!!!"

순찰 대원은 환하게 웃으며 이모에게 손을 흔들었고, 이모는 울며불며 계속 "Hello!!"를 외칠 뿐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온 가족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곧, 이모부가 수면으로 올라와서 얼굴이 벌겋게 될 정도로 소리를 지르시는 이모를 보며 혼란에 휩싸이셨지만 자초지종을 듣고는 카누가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아직도 영어를 못하는 우리 가족은... 사람은 마음으로 통한다는 것을 굳게 믿고 새로운 여행지로 떠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