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냄새가 베인 이야기들
아이들에게 병원은 공포의 장소이지만 오빠랑 나는 병원으로 놀러갈 때가 많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병원 1층에서 동글동글하고 계란맛이 나고, 설탕이 묻혀져 있는 금방울빵 과자를 파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별미였기 때문이다. 소독약 냄새, 낯선 기계의 잡음도 빵과자의 달콤함 속에 녹아들어갔다. 엘레베이터로 아무 층이나 올라가서 가장 푹신한의자를 골라 앉아 빵과자를 먹고 있다보면 가끔씩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것저것 엿듣곤 했다. 병원에서는 실로 황당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는데, 그 중에서 생각나는 몇 가지를 말해보고자 한다.
새벽에 응급환자가 왔다. 말 그대로 "왔다." 실려온 것이 아니라..... 주로 응급환자는 어디가 눈에 띄게 아픈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환자는 뚜벅뚜벅 걸어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간호사들이 여기로 오라고 하던데요."
의사 선생님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기는 응급실인데..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나요?"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알고 보니 이 환자는 자살하기 위해 한강 다리에서 뛰어 내렸는데, 전생에 다이빙 선수였는지 돌고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로 구조대원에 의해 보트로 올려졌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도 찍고 별의 별 검사를 다했지만 심지어 멍든 곳까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신의 기적이라고 했고 선생님에게는 그저 황당함의 극치였다.
의사들 중에서는 자신이 의사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예전에 정형외과의 어떤 의사가 수술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더라. 그 의사는 당황하며 수술실에서 소리쳤다고 한다.
"야, 의사 불러!!"
이 일은 두고두고 병원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다.
언젠가 또 계란빵을 사러 병원 편의점에 갔더니 응급실 쪽 의사 아저씨도 계란빵을 사서 먹고 있었다. 그 때는 아저씨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새내기 젊은 레지던트 쯤이었을텐데. 아마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계란빵으로 떼우는 거였겠지. 편의점 라면 먹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계란빵을 먹다가 내가 응급실에서 제일 보기 싫은 환자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저씨는 자살에 실패해서 온 환자라고 답했다.
"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시간이 없어서 못 살리는데....... 죽고 싶어서 온 사람이 와서 시간을 잡아먹으니 그런 사람이 오면 참 밉지."
면도도 제대로 못한 아저씨의 수염에 설탕가루가 묻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