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miLuna Apr 25. 2022

드디어 봄이 왔나 봄

나무마다 잃어버린 물건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드디어 이곳 핀란드에도 봄이 오긴 온 모양이다.


아직 아침엔 2-4도 정도로 쌀쌀하긴 하지만 낮에는 무려 10도가 넘어간다. 날이 길어져서 밤 아홉 시가 되어도 환하고 암막 커튼이 없으면 새벽에 자동으로 일어나게 된다 (일출 새벽 5시 30분, 일몰 밤 9시 10분).

대문 사진처럼 겨울에 잘 사용했던 장갑이나 목도리, 모자 등을 더워서 잠깐 빼놓거나 손에 들고 다니다 분실하게 되는 계절이다. 핀란드에서는 길을 걷다 떨어져 있는 물건을 보게 되면 가까운 나무나 선반, 담장 등 사람의 눈높이 정도에 올려둔다. 땅에 그대로 두면 사람들이나 차에 밟혀서 못쓰게 되기도 하고, 또 눈높이에 있으면 더 쉽게 발견하고 찾아갈 수 있을 테니 이렇게 하는 것 같다. 봄에는 특히나 나뭇가지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걸려있는 분실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주택들이 모여있는 우리 동네에서 봄을 알리는 소리는 따로 있다. 바로 주말,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아저씨들이다. (왜 항상 40대 이상의 아저씨들일까...) 마당이 있는 1-2층 주택들이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쭉 늘어서 있는 우리 동네에는 원룸이나 아파트들이 있는 헬싱키 시내 지역과는 달리 직접 주택을 손보고 정원을 가꾸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집집마다 웬만한 장비들은 다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아저씨들의 취미 생활인지 아니면 기본 인건비가 비싸니 DIY가 발달해서 그런지 솜씨 좋게 뚝딱뚝딱 데크도 만들어 내고, 사우나도 짓고, 마당도 정비한다. 뭔가 신박한 기계들이 등장하면 동네 아저씨들이 서로에게 추천해 주기도 하고 부러움의 눈빛을 보내기도 하는데, 지난겨울 앞집에서는 깜찍한 만능 사륜바이크로 제설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부러워했던 경험이 있다. 엊그제에는 낙엽들을 싹 빨아들여서 주머니에 착 담아주는 낙엽청소기(?)를 메고 열심히 정리하시던데, 아무래도 앞집 아저씨의 장비 빨은 최고인 것 같다. 도대체 분주한 아저씨들이 봄맞이로 무엇을 하고 계신 걸까.   


(1) 겨울 타이어에서 일반 타이어로 갈아 끼우기


일단 부활절이 지나고 나면 핀란드의 남쪽인 에스뽀나 헬싱키 지역에는 눈이 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므로 겨울 타이어에서 일반 타이어로 교체해도 안전하다. 이때쯤 되면 빙판길에 엄청 깔아 두었던 작은 자갈들을 시에서 수거해 가기 전이라 아직은 길에 여전히 많이 깔려있다. 눈은 이미 거의 다 녹았고 길은 다 말라있어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이 자갈들 때문에 먼지바람이 일어나는데 이는 핀란드의 봄 풍경 중 하나다. 이럴 때 징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겨울 타이어들이 장착된 자동차는 시끄러운 소음까지 더하므로 살짝 부끄러워지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핀란드에 이사 오고 중고차 시장에 가서 자동차들을 구경하는데 항상 뒷좌석에 엄청 큰 짐들이 실어져 있어 당최 무엇인지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다. 자세히 보니 타이어 네 개가 각각의 주머니에 넣어져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한국은 겨울 타이어로 딱히 교체하거나 할 만큼 눈이 심하게 오지도 않고, 폭설이라도 오는 날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해서 딱히 겨울 타이어로 바꿔 본 적은 없었던 지라 그런 모습이 생경했다. (덧붙여... 이곳의 중고차 시장은 한국과 다르게 꾸며 놓는 법이 없는 것 같았다. 한국은 세차는 기본이고 도색작업이나 수리작업까지 완전하게 마쳐 정말 중고이지만 새것 같은 느낌의 차들이 많은 반면에 이곳의 중고차는 참 정직한 있는 그대로의 민낯 중고차들이 많은 것 같다. 가격은 세금 탓에 욕 나오게 비싸던데 꾸미는 것은 참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안 해 놓는다.)  


남편도 뼛속까지 헬싱키 도시 남이었고 (헬싱키에서는 주차비가 어마 무시하므로 시내에 살면서 차를 갖고 있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일이다. 트램이나 버스도 잘 되어 있어 굳이 차가 필요하지도 않다.), 한국에서야 편하게 돈 내고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워낙 잘 되어 있었다 보니 직접 우리가 뭔가를 해 볼 일은 없었기에, 우리는 이런 주택의 삶에 완전 어리바리 한 편이다.


이사를 오고 첫 해에는 자동차 정비소에 맡겨 타이어 교체를 했었다. 타이어 교체하는 즈음이 되면 원하는 날짜에 시간을 예약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교체만 해 주는데 비용이 70 유로다. 십마넌....네?

그래서 남편은 시어머님의 파트너 (두 분은 결혼을 하지 않아서 step father는 아니다.)로부터 특훈을 받았고 DIY 샵에서 웬만한 공구들을 다 사오더니 이제는 아주 쉽게 타이어 교체를 할 수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올인원 작업복 마저 구입했다. 크헐)

올봄에는 남편에게 타이어 교체 법을 배웠다. 잘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으니깐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타이어 정도는 쉽게 갈 수 있는 아줌마로 거듭났다.


(2) 낙엽 치우기


겨울에 눈이 오기 전에 낙엽을 다 한 번씩 치워 두었건만 겨우내 눈의 무게를 못 이기고 부러진 나무 가지 하며, 떨어져 있는 나뭇잎들이 상당하다. 핀란드의 벌판을 봄에 걷다 보면 지하실의 큼큼한 곰팡이 냄새가 자연에서 나는데 눈에 덮여 있던 땅에 곰팡이도 피고, 축축한 것들이 썩으면서 나는 냄새다. 잔디가 봄기운에 제대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낙엽들을 잘 정리해 주어야 한다. 갈퀴질을 몇 번 하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작은 마당이지만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에 고개가 절래 절래 흔들어진다.

우리 집 마당은 방치된 지 오래라 온갖 잡초들이 무성한데 특히나 악명 높은 부오헨뿌뜨끼는 한 번 잡아당기면 끊어진 곳에서 두 갈래가 되어 나와 증식이 엄청나게 빠르고 땅 속 깊이 뿌리들이 얽히고설켜 없애기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 식물이 한국의 참나물과 맛이 비슷해서 작년엔 몇 번인가 따다가 나물을 무쳐 먹었었더랬다. 주말에 마당을 둘러 보니 봄이 되자마자 이 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애증의 부오헨뿌뜨키! 올해에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이 먹어줘야겠다. 한국의 봄나물들 너무나 그립다.


(3) 트램펄린 세우기 


자녀들이 다 자라고 독립한 집은 이제는 세울 필요가 없지만 우리에겐 아직 초 2 막둥이가 있으니 올해에도 남편은 낑낑대며 트램펄린을 설치해 주었다. 겨울에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면 눈 때문에 녹슬거나 망가질 수 있어서 적어도 기본 토대를 제외한 나머지 들은 접어두는데, 기둥을 하나씩 꽂고 스프링을 연결하고 마지막 걸레질까지 다시 설치하는 것은 한참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이곳은 기본 스케일이 다들 커서 집집마다 있는 트램펄린의 사이즈가 예전 나 어렸을 때 동네에 백 원씩 받고 태워 주었던 아저씨의 방방이 크기다.   

나도 올해에는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좀 뛰어봐야겠다.  


(4) 데크 오일 칠하고 야외 테이블/의자도 손보기


나무 데크나 나무로 만들어진 집이라면 먼지를 치우고 오일칠을 해 주는 것도 중요한 봄의 일과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곳에도 낙엽으로 가득 차고 이끼가 끼게 되는 경우가 많아 일단 고압 물청소기로 싹 걷어낸 다음 볕에 말리고 칠해 줘야 한다. 우리 집도 담대신 오래된 키 큰 소나무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보니 뾰족뾰족 바늘잎들이 사방에 쌓여 있다. 지붕이나 하수구 입구, 빗물받이 등에 쌓여 있는 이 잎들을 치우고 (이런 용도의 대형 물통 세척솔 같은 게 끝에 달려 있는 막대기도 있다.) 볕에 말리는 시간이 될 즈음에는 허리가 정말이지 끊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게다. 우리 집은 일단 고압 물청소기로 낙엽을 날리는 것까지만 해 두었는데, 아마도 다음 주에는 또 다른 낙엽들이 떨어져 있겠지. 끝도 없는 노동의 계절.


남편에게 처마 아래 해먹을 설치해 달라고 졸라 해먹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한동안 멍 때리기를 했다. 행복한 기분으로 벅차오른다.  


(5) 모기 살충기 설치


이름이 좀 너무 살벌한가 싶지만 이제 얼마 안 있어 본격적으로 모기들이 알을 까는 시기가 오므로 그러기 전에 빨리 손을 써야 한다. 데크에서 바비큐라도 할라치면 적어도 데크 주위에 모기는 좀 덜해야 하니깐.

핀란드의 모기. 상상하기 어려웠다. 여름에는 한국에서는 산에서나 봄직한 엄청난 크기의 모기들이 수두룩하다. 특히나 핀란드의 북쪽에 가면 시커먼 구름 같은 모기떼가 날아다닌다(고 한다.).

작년에 거금을 들여 가스로 암컷 모기를 유인해서 없애는 모기 살충기를 구입했다. 봄에 미리 켜 두어야 일명 씨를 말릴 수 있다. 딱 데크 구역 근처라도 모기 안전 지역으로 만들고 싶다.  

이제 웬만한 준비는 다 된 것 같다. 물론 빨리 시작한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이런 기본 준비가 완료되고 날씨가 좋다면 이제부터는 슬슬 친구들도 초대하고 가족들도 초대해서 바비큐를 개시할 차례다.


다음 주말은 Vappu(바뿌)라 불리는 핀란드 대목인데 노동절을 기념해서 4월의 마지막 날 엄청 마셔대고 5월 1일에 공원에서 가벼운 해장술과 함께 소풍을 하는 전통이 있다. 대학생들 (알토 대학교)이 처음 주도해서 70년대엔가 만들어낸 행사라고 하니 술 마시기 좋아하는 핀란드인들에게 공식적으로 마셔도 되는 날을 준 것이다. 이곳의 봄날은 너무도 화창하기에 노동절은 그냥 거들었을 뿐.


여름이면 주말마다 피어오르는 바비큐 연기로 온 동네가 펜션촌 같이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차는데, 얼른 백야의 여름이 오길 손꼽아 기다려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