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에세이
을지로에서 1980년 최초로 노가리와 생맥주를 팔기 시작했고, 서울미래유산과 백년가게로 선정된 42년 노포 을지OB베어.
얼마 전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일대를 대부분 독식한 건물주 만선호프가 요청한 용역을 동원한 심야 강제집행으로 나름의 역사를 머금고 있던 을지OB베어는 철거되어 사라졌다. 이후로 수많은 청년, 예술인, 시민들은 [건물주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와 상생하라] 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며 연대하고 있다.
가끔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각자의 삶과 그 현장에서는 좀처럼 피켓을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청년과 예술인들이 오히려 타인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연대하는 것은 왜일까. 타인의 삶에 연대하는 것은 물론 소중하고 멋진 일이지만, 그렇게 밖에 나가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하며 연대하는 동안 우리들의 안쓰러운 삶은 오히려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합리화하고 외면해왔던 나와는 다르게 우리 주위의 여러 현장을 찾아다니며 연대하고 공감하기로 선택한 이들이 있다. 문득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고립되어만 가는 것 같은 내 삶과는 달리, 실상 처참한 현장이지만 그곳에는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과 열과 정이 모여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친구의 제안으로 며칠 전 21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활동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선 대표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강의 말미에 인용하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해 싸웠던 멕시코 치아파스 원주민 여성의 말을 함께 나누고 싶다.
“당신이 만약 나를 도우러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나의 해방과 당신의 해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에 마음이 쿵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백날 음양 음양 거리고 나와 너는 연결되어 있다며 공염불만 외워대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