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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피터 Feb 16. 2023

도덕경 37장 불안함이 몰려오면 고요함에 머무른다.

도덕경 다시읽기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억지로 무얼 하려 하지 말고

그저 고요하게 바라보자.

세계는 스스로 평안에 이를 것이니.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를 마주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사태 앞에서, 나는 바람 앞에 위태로이 춤을 추는 촛불처럼 흔들렸습니다. 자주 가는 인왕산 산신각 앞에서 두 손을 모았고, 기독교의 기도문을 외워보기도 했고, 관세음보살의 큰 자비를 구했습니다. 문득, 종교의 존재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바람도 물도 하늘도 주위의 모든 자연이 두렵기만 했을 옛-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신을 찾았을지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해봐도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고, 이제 남아있는 카드마저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두운 숲 속에 홀로 남겨져 방향 감각마저 사라져 버린 것 같던 그 밤. 길을 찾다가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뚱이 마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고, 차가운 땅 위에 머리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셀 수 없이 많은 풀벌레 소리와 서슬 퍼런 짐승의 소리마저 점점 더 거대해졌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극에 달해 기절해 버릴 것만 같던 순간, 신기루처럼 푸른빛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저 멀리서 푸르고 붉은 온기가 점점 확장되는 것을 봅니다. 햇님입니다. 주위가 점점 밝아지며 늪과 같던 어둠은 저 너머로 물러갑니다. 그리고 영혼마저 부셔질 것 같던 두려움도 함께 흩어집니다. 오 신이시여! 우리의 무지함을 불쌍히 여기소서! 밝은 빛에 드러난 숲은 그저 온화하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던 공포와 두려움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요. 지나고 나면 그저 한 숨 몇 번 쉬며 ‘하, 그랬었지’ 하고 웃어넘겨버릴 일이 돼버리는 것을요. 가만히 서면 가슴 언저리까지 밖에 잠기지 않는 호수에 들어갔다가 바닥이 보이지 않아 지레 겁먹고 허우적거리듯… 우스꽝스럽기만 합니다. 어쩌면 우리를 억누르며 괴롭게 하는 많은 문제들이 사실 그렇게 별 것 아닌 일들이었을지 모릅니다. 두려움은 외부의 요소가 아닌, 우리 내면에서 스스로가 만들어냈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삶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배우자나 가족이 나를 괴롭게 하지 않기를, 문밖에서도 어려운 일을 만나지 않기를, 하는 일들이 잘 풀리기를, 다치지 않고 건강하기를…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수많은 불확실성을 마주해야 하는 일인 것을. 아무리 대운이 좋아도, 기도를 많이 해도, 돈이 많아도, 친구가 많아도 늘 평안할 수만은 없습니다. 평안하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는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곧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직전의 찰나와 같은 순간이라는 의미일지 모릅니다. 주역의 64괘 중 이상적인 완성을 의미하는 기제旣濟괘에도 ‘현명한 사람은 이후에 다가올 환란을 미리 예방한다’는 점괘가 들어가 있듯이 말입니다.


수재화토 기제 군자이 사환이예방지

水在火上 旣濟 君子以 思患而豫防之


물이 불위에 놓여있으니 이는 이미 건너간 것

현명한 자는 다가올 환란을 미리 생각해서 방비한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찾아왔나요? 어둡기만 한 이 터널에 끝이 있기는 한지 막막하기만 하나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춰 서서, 크게 심호흡하고서는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 이야기 한 고요함에 머무를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정(靜 고요함)하면 정(定 편안함)할 수 있다는 자연의 이치를 떠올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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