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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원 Feb 20. 2023

‘필요하면 다 하게 되어있어 ‘

그래서 기간제 교사가 어떻게 되었냐고요?

어렸을 때 나는 시키면 하는 어린이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이 다르듯이, 어른들 앞에서는 열심히 하는 척했지만 뒤에서는 교과서 옆에 펼쳐둔 연습장에 낙서하는 게 더 즐거웠었다. 이런 나를 보며 늘 걱정을 달고 살았던 엄마와 달리 ‘필요하면 다 하게 되어있어 ‘라는 말 한마디만 하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난다. 어렸을 때 나는 이런 어른들의 추상적인 말의 속뜻이 궁금하면서도 싫었다. ’ 필요하면 다 하게 되어있어?‘ 아니, 지금 우유부단할 때가 아니라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아빠는 너무 속 편한 소리를 하는 거 아냐? 저건 딸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야? 라며 나의 삶에 대해 애가 타는 마음을 아빠에 대한 미움으로 돌린 적도 있었다.


학생시절 때에도 취했던 ‘때를 기다리는 나의 우유부단함’은 취업준비라는 중요한 인생의 포인트도 결코 빗겨나갈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약 2년 동안 방구석 위 침대라는 가장 안전한 곳에서 나의 시간을 보냈다. 세상을 경험하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인터넷이라는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경험일 뿐, 나의 경험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큰 용기를 내서 시작한 곳은 사회생활은 학원이었다. 하지만, 반년 정도 근무를 하고 깨닫는 게 있었다. 2년 동안 내가 침대에 누워 정보의 바다를 헤매면서 어깨너머 알아온 학원 강사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구직의 의지를 잃어버린 나는 다시 방구석 내 가장 안전한 내 침대로 갇히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꼭 전공을 따라가야 될까?‘ ’ 나는 안전한 삶에 맞는 사람일까?‘라는 등등 생각의 파도와 함께. 그 후, 나는 엄마의 성미에 못 이겨 침대를 벗어나 몇 번의 학교 시간강사 및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하긴 했지만.


에이 뭐야, 시시해! 그래서 침대에 누워서 고민만 한 세월만 하다가 시작한 일이 결국 전공 관련될 일이야? 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이는 나의 성격을 반증하여 내가 선택한 이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근래에 들어 조금씩 느껴지는 변화가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이야기했던 ‘필요하면 다 하게 되어있어 ‘ 의 뜻이 조금씩 나의 마음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어른들이 말했던 모호했던 그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일단 해봐 라는 엄마의 결정력과 아빠의 우유부단한 ‘필요하면 다 하게 되어있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중이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비정규직 교사로 학교에서 근무를 할 예정이다. 정규직 교사들 사이에서 비정규직인 내가 너무 느리게 느껴질지도 혹은 그들을 의식하여 급한 마음에 임용 고시를 선택 할 수도 있다. 하지만,그럴 때 마다 나는 아빠가 말한 ‘때가 되면 다 하게 되어있어’를 떠올릴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단력을 내려할 때에 나의 생각은 늘 나의 마음을 앞서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나의 속도를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면 다 하게 되어있어’의 속뜻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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