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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진 Nov 09. 2017

결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내는 오늘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집에 도착할 때를 맞추어 따뜻한 밥상을 준비하느라 아내의 얼굴에는 땀이 송글 맺혀있다. 그런 아내를 뒤로 한 채 소파에 퍼질러 앉아 긴 한 숨을 내쉰다.
   
   - 오늘 반찬은 뭐야?
   - 된장찌개, 호박전, 소시지구이...
   - 맛있겠다. 얼른 같이 밥 먹자.
   - 응, 조금만 기다려요. 다 되어갑니다. 
   
응당 누리는 보상처럼 밥을 기다린다.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하듯 10-20분이 지나도 준비되지 않으면 조금 다그치기도 한다. 그때마다 아내는 준비된 반찬으로 먼저 한 술 뜨라고 배려해준다. 나는 귀찮다는 듯이 함께 먹자며 손사래 친다. 배가 덜 고픈 모양인지 쓸데없는 지조를 부리며 소파와 한 몸이 된 나는, 밥 준비를 기다리는 명목으로 스마트폰을 한껏 만지작거린다. 배가 점점 불러오는 아내 옆에서 반찬통이라도 까는 시늉을 하면 좋으련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 여보, 이제 준비 다됐어요. 부엌으로 오세요.
   - 그래, 지금 갈게. 이제 정말 배고프네.



한상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늘 하루가 괜히 보람차다고 느낀다. 나는 초스피드로 음식을 입안에 구겨 넣는다.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고, 계속 먹어도 자꾸 손이 간다. 아내는 먹는 둥 마는 둥 내가 먹는 모습을 목 빠져라 쳐다보고 있다.
   
   - 오늘 별일 없었어요?
   - 응, 오늘 그냥 그랬어. 겨우 하루 또 버텼지 뭐.
   - 오늘은 동동이가 기분 좋은지 자꾸 움직였어요.
   - 아, 그랬구나. 이제 동동이가 정말 열심히 태동하네.
   
밥을 다 먹고 곧장 서재로 가서 노트북을 펼친다. 해야 할 공부가 있고, 써야할 글이 있기에 오늘도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노라며 스스로 자부하며 회심의 미소를 머금는다. 5년 후, 10년 후면 하늘의 별을 따오듯이 목표를 성취해 나가고 있겠지.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 (슥삭슥삭 슥삭슥삭)
   - 오늘도 캘리그라피(calligraphy)해?
   - 응, 하루에 하나씩 보면서 쓰고 있어요.
   - 그래, 그거하면 여러모로 좋겠네. 재밌어?
   
아내는 결혼 전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결혼하고 얼마 후 임신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지키고 있다. 배는 불러왔고 그녀의 꿈은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아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나의 저녁밥상 메뉴이며, 하루 중 가장 말을 많이 할 때는 퇴근 후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전부였다. 5년 후, 10년 후를 상상해도 똑같은 일상이었다. 이 얼마나 가혹한 생활의 연속인가. 
   
   - 여보, 뭐 필요한 거 없어?
   - 없어요.
   - 대학원이라도 다니지
   - 애기 곧 태어나는데 안되지요
  
뒤늦게 생각하는 척 애써 챙겨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녀는 여전히 창창한 20대이며 꿈 많은 소녀인데 어찌 이렇게 방구석에만 있단 말인가. 직장에서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했던 아내의 상황을 묵상해본다. 
   
   ‘아침식사 설거지를 하고’
   ‘동동이를 위해 태교를 하고’
   ‘스마트폰을 만지며 재밌는 영상을 찾아보고’
   ‘저녁식사 메뉴를 고민하다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친구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다가’
   ‘청소기로 이리저리 바닥 청소를 하고’
   ‘어두워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이것이 반복되는 아내의 일상이었다. 나는 답답해서 단 하루도 못 버틸 일정이었고, 어디에서도 보람을 찾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아내가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으며, 내가 벌어들이는 월급은 내가 한 일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만들어낸 성과였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닫고 나지막이 읊조려 본다.
   
   - (여보, 이렇게 내가 철이 드나봐. 우리 같이 꿈꾸고 함께 세상을 누리자)
   
혹여나 아내가 들었을까봐 부끄러운 마음에 후다닥 침대로 향한다. 아내는 영문도 모르고 또 다시 환한 미소를 보내온다. 나도 함께 웃는다. 
   
그렇다. 모름지기 부부란 서로가 서로를 위할 때 아름다운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도구가 아니며 남편 또한 돈 버는 기계가 아니다. 어느 한쪽도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어나가기 위해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내가 웃을 때 나도 웃고 내가 웃을 때 아내가 웃는 그런 가정을 꿈꾼다. 그게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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