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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진 Nov 12. 2017

청춘마리오네트 #epilogue

마리오네트의 고백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빨리 취업하고 싶었다. 지갑을 펼치면 오랫동안 묵혀둔 만원권이 찬란하게 빛나며, 반짝이는 신용카드로 어머니의 선물을 망설임 없이 사고 싶었다. 그저 그 뿐이었다. 살육경쟁(殺戮競爭)의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가가 되어 자기소개서를 썼고, 배우가 되어 면접에 임했다. 최종 합격통지를 받고는 부리나케 상경하여 지하 단칸방에서 삶을 꾸려갔다. 그렇게 6년이 지나버렸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논리에도 기계적으로 공감의 고개를 끄덕이며, 쓴 웃음으로 맥주잔을 비워냈다. 매달 입금되는 숫자를 보며 안도의 한숨도 잠시, 막막한 미래가 엄습했다. 벌어들이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방구석에서 명상만 해야 주머니에 돈이 차오를 것 같았다. 그래도 지하 단칸방 신세는 벗어났다. 이삿날, 빛이 들지 않는 공허한 공간을 쳐다보고 있자니 다음 사람에게 괜스레 미안해졌다. 이곳은 또 누군가를 위한 터전이 될 테지. 그 또한 나와 비슷한 처지일 테고, 나와 비슷한 꿈을 꾸겠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방바닥이 광나도록 힘껏 문질렀다. 문을 열어젖혔을 때, 비록 ‘하늘의 빛’은 없지만 ‘바닥의 광’이라도 만끽하길.    


자동차. 두 발로 뚜벅뚜벅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지만, 그래도 바퀴달린 그 녀석이 필요했다. 자동차는 약속장소로 나를 거뜬히 운반해주는 것은 물론 성공 계단의 첫 단추를 인증해주기도 했다. 할부 최대치로 그 녀석을 모시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녔다. 바퀴의 문명에 편의를 기대했던 내 착각은 일순간 무너지고, 숨 가쁘게 움직여 새는 돈을 메꾸는데 일념을 다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표준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일방적’으로 정해진 오솔길을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었다. 뿌듯했고, 허무했다.      


거울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청년이라는 말을 듣지만, 어느새 삶의 노고가 묻어버린 얼굴. 눈가에 순수함이 번지기보단 다음 달 월세 걱정이 고여 있다. 집을 사는 것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서만 가능하기에 나는 그저 도시의 보헤미안(Bohemian)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 돈도 들지 않았고, 내 마음을 담은 문자를 휘갈기고 나면 그렇게 속이 후련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치유가 일어났다. 마치 상처 난 곳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 회복을 기다리듯 글을 쓴 뒤에는 그냥 기다렸다. 내 삶이 내 글을 이해해줄 때까지. 요즘은 자꾸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쓰게 된다. 빈 문서를 멍하니 바라보며, 키보드에 손을 갖다 대면 꿈을 꾸듯 어머니가 떠오른다. 나의 따뜻한 기억이 어머니에겐 헌신의 일상이었던 것이 가슴을 아련하게 펌프질 한다. 이 펌프질이 곧 글이 되어버린다.       


내일 다시 출근이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점심시간도 있다. 모든 것이 나의 것이지만 내가 주인은 아니다. 누군가 나를 소작농 신세라고 놀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밭을 갈면서 희망의 씨앗을 몰래 뿌리고 있다. 싹이 자라지 않아 마음에 생채기 나는 날이면 글을 써서 나의 마음 달랠 수 있으니 우선 계속 가보려고 한다. 내가 가는 길이 마라톤일지라도 멈추지 않겠다. 어차피 뒤 돌아 갈 곳도 없고, 저 먼발치에서 뛰어오는 또 다른 동료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한다. 정말이지 힘껏 달려야한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께 선물을 사드릴 것이다. 나에게는 가상현실이었던 무색빛깔에 색을 바르고, 오롯이 문질러 오색빛깔의 ‘현실 선물’을 준비해야지.     


휴대폰 알람기능을 뒤적거린다. 마음은 6시, 몸은 7시를 가리킨다. 몸과 마음을 담아 넉넉히 다섯 개의 기상시간을 설정하고, 손이 닿는 언저리에 휴대폰을 살짝 내려놓았다. 내 마음의 부담감도 잠시 내려놓았다. 눈을 감으면 끝이다. 그리고 곧 다시 시작이다. 끝과 시작 사이, 나는 취침준비를 마쳤다. 이불을 끌어올려 몸이 아닌 마음을 덮었다. 이 순간만큼,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하리.     


마리오네트(marionette)가 되어버린 나,

관절마다 매여진 끈을 뿌리치고 꿈 속 여행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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