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제한을 만들지 않는 법
퇴사를 했다!
그래서 무제한 휴가는 더 이상 없다.
회사의 거의 유일한 복지였던 '무제한 휴가'를 톡톡히 누린 나는, 마지막 HR 과의 면담 때 '내게 제공된 법정 휴가보다도 30일가량 넘게 사용했다'라는 조금은 민망하면서도 약간은 뿌듯한 말을 들었다. 그래, 이 정도 휴가는 써야 내가 이 회사 다닌 보람이 있지! 하는 약간의 으쓱함이랄까.
덕분에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스위스 10일, 베트남 6일, 호주 10일, 그리고 일본의 삿포로에서 4일을 보내었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며칠'로 셀 수 없는 나날들을 보냈고, 지금은 '며칠' 남은 나날들을 제주에서 보내고 있다. 무제한, 휴가, 무제한, 여행, 무제한, 낭만, 무제한, 사랑 - 좋아하는 단어들과 함께한 일상이었다.
그리고 퇴사 후 첫 월요일이었던 지난주, 나는 새롭게 주어진 '휴가'의 삶에서 루틴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다시 지금의 월요일이 되었다. 월 화 수 목 금.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전 10시 요가 수업을 들었다. 금요일은 오후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해서 슬쩍 빠지는 선택을 하는 대신 무려 오전 7시 30분 수업을 들었다.
요가를 하면서 제일 힘든 점은 한 호흡의 시작인 '기본자세' 조차도 내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작년 한 해의 목표가 가장 기본이자 표준인 '0'에 수렴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몸은 여전히 기본을 힘들어하고 있다. 가끔씩(아니, 매일)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일단 하자"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다녀와서는 점심을 먹고, 여러 집안일을 마친 후 샤워를 한다. 요즘 일상 루틴에 집안일이 꽤 많은 시간을 차지하면서 주부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이놈의 집안일은 매일 그렇게 해도 끝이 없다. 그래도 깨끗해진 집에서 상쾌한 몸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언제나 좋다. 행복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러고는 영어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블로그에 글도 쓴다. 그리고 출근해 있는 남자친구에게 말한다. “오늘도 나는 너무 바빠!”
무제한 휴가는 이제 끝났지만, 그래도 뭐든 무제한인 것처럼 생각하며 지내보면 어떨까 싶다. 제한이 있으면 늘 선택이 오래 걸리고 어렵다. 반대로 제한이 없으면 큰 생각 없이 그냥 하게 된다. 요즘에는 뭐든 '일단 그냥 하는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다. 이게 맞는지, 뭐가 더 좋은지, 이게 진짜 필요한지 등 제한된 시간과 금전을 잊고 그냥 해보는 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계속하는 것. 지속성.
난 뭐든 이게 맞는 건지 중간중간 방향성을 계속 체크하려 하는데, 그러다 보니 삶 속에서 계속 일시정지가 생겼다. 그러면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계속 정지된 것들도 많았다. 그냥 하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진짜 내 몸으로 요가를 할 수는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일단 매일 가보는 거고, 영어도 매달 나가는 돈이 꽤나 신경 쓰이지만 계속 또 해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뭐라도 된다.
unlimited
스스로 제한을 만들지 않기.
살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지난 3월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