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가 Buying MD가 되었나?
현재 1년 간의 휴직 중이긴 하나, 나는 입사 후 8년째 Buying MD 업무를 했다. 업계 외의 주변 지인들과 내 직업에 대해 얘기를 하다보면, “1년에 파리에 몇번이나 가는거야 부럽다”, “명품 브랜드 옷 싸게 살 수 있는 거잖아 좋겠다” 와 같은 반응이 주로 많다. 지인 외에도 신입사원 공채 리크루팅이나 이런 인사 관련 이벤트에 파견나갈 때면, 바잉MD나 MD 커리어를 꿈꾸는 취준생, 대학생 친구들을 만날 때가 많았는데, 그 친구들도 이 직업에 대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보단, 화려한 겉모습의 환상만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겉으로는 화려해보이는 패션업계의 직업이다 보니 내가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실제의 경험과는 너무 다른 그들의 편견(?)이 이제는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이 업무의 단면만을 보고 입사한 친구들이 생각과는 다른 현실에 빠르고 쉽게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걸 많이 봐서, 리크루팅을 나가거나 진로상담을 종종 할때면 실제로 Buying MD 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많은 시간을 쓰곤 했다.
일을 잠시 쉬며 나를 돌아보고 있는 지금,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 나의 8년 간의 커리어를 돌아보고자 한다. 나에게는 추억 겸 기록이, 누군가에는 도움이 되길 바라며 -
1. 나는 어쩌다 패션을 시작했을까?
중고등학교때 딱히 엄청난 진로고민과 관련된 사춘기를 겪지 않았던 나는, 왠걸 20살 예고없이 찾아온 폭풍을 맞는다. 그저 대학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수험시절이 끝나고, 약간의 "허세(난 순수학문을 할꺼야와 같은..)"와 함께 선택한 "인문학/어문학" 전공은 내 예상과는 너무 달랐고, 아무도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 것 같아 길을 잃어버린 느낌으로 내면이 힘든 20살을 보냈다.
그러다 무턱대고 어학연수를 핑계로 평소 가고싶었던 캐나다로 도망나왔고, 4개월쯤 캐나다에서 지내다, 혼자서 미국여행을 시작했다. 21살인 나는 철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지만, 멀리 나가서 이것저것 많이 보고오라는 부모님의 말만 믿고서.
약 3달? 에 걸쳐 여행을 하는 동안, 아무래도 운전없이 혼자다니다보니, 시내 위주로 다녔었는데 뉴욕, 샌프란에서 그때만 해도('2009~'2010) 센세이션했던 바니스, 삭스, 온갖 멀티샵들 보며 눈이 휘둥그레 졌다. 소호만 가도 아직까지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브랜드들 매장 실컷 구경하고, 그 곳의 분위기들 즐기며 몇달동안 지루할 틈이 없어서 '아 나는 옷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듯 싶다. 예쁜 옷들 보다도, 브랜드 마다 아이덴티티 뿜뿜하는 매장들, 디피, 삭스나 바니스의 멀티 형태의 매장운영, 이런게 너무 새롭게 다가와서 정신을 못차렸다.
그렇게 약 10개월간의 북미생활 후, 첫 전공인 불문과 전공수업들은 여전히 듣고 있었지만 의류과 머천다이징/브랜딩쪽 수업을 들으며 마음을 잡아갔고, 결국 전과까지 했다. 전과를 하고나니 자연스레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압박도 있었는지 성적도 괜찮게 나왔고 중간에 뜬금 장학금도 받고, 쭉 이어져서 취업도 패션대기업, 백화점 쪽으로 올인했고 결과도 원하던 회사에 한방에 잘 들어갔다.
20대 초반의 나는 뒤늦은 진로고민&방황 제 1차 버전의 결과로 패션 쪽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땐 몰랐다. 내가 지금까지 이 커리어를 지속하고, 또 다른 진로고민도 계속하게 될 줄은)
2. 나는 어쩌다 Buying MD가 되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패션회사보단 유통쪽, 특히 백화점 쪽이 가장 희망하는 업종이였다. 그 이유는 "내가 패셔너블한 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해서 였다. 취업준비하면서 나는 보통 사람보다 옷은 좋아하지만 트렌드를 앞서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할 듯 하고, 해외의 화려한 브랜드들의 컬렉션을 놓치지않고 챙겨보지도 않고, 럭셔리 브랜드들의 신상들을 갈구하는 소위 "패션피플"이 될 싹은 없었기에, "옷을 만들고 트렌드에 맞게 파는" 사람보단 유통 쪽에 좀 더 맞고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래서 더더욱 패션회사에 입사했을 때, 솔직히 Buying 쪽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직무였다. 기획MD 보다도 훨씬, 해외 명품, 브랜드, 컬렉션에 면밀하게 관심을 갖고 나조차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런 브랜드로 치장해야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는 직무였을 뿐더러, 바잉, 바이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도 화려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 느낌이라 거부감이 들었다.
입사동기들 중, Buying 쪽을 하고 싶어하던 동기들의 특징은 2가지 였던 듯
1) 해외브랜드에 대한 높은 관심
2) 해외 경험이 비교적 많음
(유학파, 어렸을 때 살았었거나 등등)
난 그런 동기들에 비해서는, 해외브랜드를 좋아하긴 했지만 바잉MD를 우선순위 직무로 두진 않았다. 바잉쪽은 나의 우선순위의 3번째 였었는데.. (첫번째, 캐주얼기획 MD, 두번째 여성복인가 남성복 MD 였던 듯?) 내가 왜 바잉MD쪽으로 업무배치가 되었나 돌아보면, 영어도 동기들 중에는 나쁘지 않게 했던 것 같고, 심지어는 입사 전 외국계브랜드에서 인턴했던 경험 때문인지, 생각지 못하게 바잉 쪽으로 배치받게 되었던 것 같다. 처음엔 좀 어벙벙하고 어이없는 느낌이였는데, 일해보니 나한테 그 중 가장 잘 맞았던 것 같다.
“해외브랜드만 엄청 좋아하고 매번 컬렉션을 꿰고 있을만큼 트렌디 해야된다” 라는 편견(?) 에 비해서는 뭐 그렇진 않았고(저만 그냥 무시했던 걸 수도 있음ㅋㅋㅋㅋㅋ 그래도 브랜드별 컬렉션 챙겨보고 하는거 엄청 중요해요) , 특히 업무에 있어서 오히려 트렌드를 따라가기 보다는 숫자나 데이터 축적 및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업무가 많은 점이 나의 성향과 맞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외 출장 및 파트너 미팅 등으로 계속해서 외국어를 쓸 수 있고, 해외 쪽과의 접촉이 중요했다는 장점도 컸던 것도 사실.
오늘부터, 그렇게 #BuyingMD 라는 직무를 시작하게 된 후 만 7년간(8년째) 일해왔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도대체 그럼 #패션바이어 라고 알려진 이 업무는 실제로는 어떤 일을 하는 지에, 어떤 사람들이 하고 있는지에 대해 순전히 나의 경험위주로 남겨보고자 한다. 아무래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 원론적인 글보다는 100% 실무 업무일지에 가까운 글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