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친척집 아파트 안 놀이터 다녀왔다가 시골쥐가 된 기분이였어, 완전 아가들용 테마파크가 따로 없더라” 휴가로 잠시 한국에 다녀온 친구가 한국 놀이터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며 했던 말이다. 눈이 휘둥그레지게 디자인된 놀이기구들과 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던 아가용 짚라인, 돈을 내고 이용해야할 것 같은 문 바운스 등, 듣기만해도 별천지가 상상되었다. “얼른 한국에 가서 우리 애기도 그런 놀이터에서 놀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기랑 같이 놀 생각만해도 나부터 엉덩이가 들썩들썩 거리는 기분. 신나신나
미국의 놀이터에는 어딜가듯 비슷비슷한 미끄럼틀과 그네 정도가 기본 구성이고(?), 조금이라도 더 화려한 미끄럼틀, 모래놀이터가 있으면 한 순간에 ‘it-plac..e.. 아니 it-playground’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새로운 곳을 찾아다녀도 뭔가 허한 느낌이랄까. 조금이라도 새롭고 대단한 놀이터를 찾아내는 것이 엄마로서의 숙명(?)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봤자 결국 별반 다를 것 없는 놀이터이지만. ‘얼른 한국가서 재밌는 놀이터 골라다녀야지’ 라는 생각만 다시 또 한번.
근데 요즘 이 지루한 미국의 놀이터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지만 중요하고도 또 중요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많다. 정말 많다. 도서관도 많았지만 놀이터는 도서관 수의 10배는 더 많다.
얼마전, 휴가를 맞아 포루투갈의 리스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모두가 18개월 토들러와 유럽을 가는 건 고생길이라 말렸지만, 싸고 맛있는 요리와 와인, 유럽 특유의 아름다운 분위기에 끌려 그 고생길을 나름 행복하게 다녀왔다. 어른들에게는 만족 그 이상의 만족을 주는 여행지였고, 새로운 곳에서 아가도 많이 즐거워한 것 같았다. 그러나 20% 정도 아쉬웠던 건 ‘놀이터’ 였다. 일정 사이사이에 짬을 내어 아가도 본인이 만족할만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터에 들르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종종 공원은 있었지만, 미국처럼 놀이터가 많지 않았다. 겨우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놀이터를 구글맵의 폭풍검색을 통해 찾아서가면, 다소 겸손했던(?) 미국의 놀이터에 비해서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매우 오래되고 삐그덕 거리는 미끄럼틀 하나, 끊어질 듯한 그네 정도가 있었다. 놀이터 주변은 휑하기 그지 없어 오래 시간을 보낼만 한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리스본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놀이터를 찾아갔을 때, 제일 실망스러웠다. 그 흔한 그네도 없고, 미끄럼틀 두개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곳이라 아이들은 바글바글했다. 우리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 기준, 미국에서 꽤나 ‘난다긴다하는’ 놀이터는 보통 5살 이하의 아가들이 노는 공간과, 5살 이상의 형아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나뉘어져있어서 제이슨 같은 아가들이 형아들에게 치이지 않고 안전하게 놀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해서 카오스 그 자체였다. 2주가 안되는 짧은 여행 중에 유일하게 미국이 그리웠던 이유였다. “아기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의 부재” 물론 우리가 현지인이 아니었기에, 완전 관광지 한복판에서 아기가 놀만한 놀이터를 찾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관광지일수록 큰 공원과 놀이터가 더 많았던 미국과 비교하면 아쉬울 수 밖에 없던 부분이었다.
둘째, 미국의 놀이터는 ‘for everyone’ 이다.
앞서 말한듯, 한국엔 더! 재미있고, 더! 화려하고, 더! 휘황찬란한 별천지 놀이터가 많다. 시설도 더 깨끗하고 완벽하게 관리될 것이다. 어떤 놀이터는 유료 워터파크 버금가는 물놀이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놀이터가 모든 어린이들이 이용할 수 있나? 답은 ‘Absolutely not’.
한국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놀이터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그리고 그 놀이터는 ‘당연히’ 아파트 주민의 아이들의 공간이다. 해당 아파트 단지 주민이 아닌 아이들은 마음 편히 출입할 수 없다고 들었다. 물론 가족, 친구네 집에 놀러와서 갈 수도 있고, 사실 그냥 걸어오면 뭐 못 놀기야 하겠냐만 어쨌든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는 원칙적으로 ‘아파트 주민’들의 관리비로 관리되는 ‘아파트 주민들의 공간’이다.
미국인들의 주 거주형태는 아파트가 아니다. 싱글하우스나, 타운하우스가 주로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다. 물론 타운하우스의 경우 단지로 구성되어 있기에, 한국의 아파트 단지처럼 그 안에 주민들을 위한 어메니티에 커뮤니티풀이나, 놀이터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국의 놀이터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차이로 public 즉 원하는 모두를 위한 놀이터가 대부분이다. 특정 커뮤니티만을 위한 놀이터를 오히려 더 찾기 어렵다. 놀이터가 없는 아파트나 커뮤니티에 살고 있어도 놀이터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다. 동네 어느 공원에만 가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존재한다.
‘모두를 위한’ & ‘매우 많은’ 놀이터. 이 두가지 조건이 가능한 이유는 맞다. ‘미국은 땅이 커서’ 이다.
한국은, 좁은 땅에 하늘위로 솟구친 아파트 단지만 따닥따닥 붙어있으니 그 사이사이에 대부분의 주민들을 위한 공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을 공간이 충분할리 만무하다. 좁디 좁은 땅 안에서 ‘자신만의’ & ‘우리만의’ 공간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본인과 본인이 속해 있는 커뮤니티’ 를 위한 공간과 시설이 중요하기에 이를 운영하기 위한 관리비도 ‘당연히’ 아깝지 않다. 내가 그런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나도 같은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겠지. 내가 내는 관리비로 운영되는 공간과 시설을, 아무 권리가 없는 제 3자가 사용하는 건 실로 배가 아플 일일테니 말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생각만해도 치사하기 그지 없는 좁쌀만한 마인드로 살아가게 될까? 넓디 넓은 땅이 오랜 시간 만들어준 미국인들의 관대하고 넓은 마인드. 어디에 살더라도 나도 이 마인드로 살아가고 싶다. 미국살이 3년동안 체득이 되었을까?
한국에 돌아가는 즉시, 이 곳엔 가뭄에 콩나듯 있던 키즈카페도, 프라이빗 워터룸도, 놀이공원도 많이많이 갈테지만 가끔씩은 매일매일 핸드폰 지도를 보며 ‘오늘은 이 동네 공원 놀이터에 가서 놀다 올까?’ 하며 요일마다 놀이터를 바꿔가며 다니는 이곳의 일상을 좀 더 그리워할 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