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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tine Jun 19. 2023

무통천국 만세

미국 산부인과 분만일기 3

새벽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제대로 된 진통이 시작되었다. 전날 하루종일 줄어들지 않았던 진통 주기는 마침내 4분까지 줄어들었다. 배를 움켜쥐는 걸로는 통증이 나아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평소보다 긴장한 채로 새벽운전 중인 남편의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저 진통이 올 때마다 입을 꽉 깨문 채로, 네비를 보며 언제 도착할 지만 볼 수 밖에.


주차를 해두고, 병원 직원이 가져다 준 휠체어를 타고 접수를 했다. 급박한 상황이라고 인지해서 인지 더듬거리지도 않고 영어가 술술 잘도 나왔다. 분만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서 진통 체크를 하며 나의 병실이 준비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미국의 경우, 보통 내가 진료를 보는 산부인과와 출산을 위한 병원이 따로 있다.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의 담당의가 내 출산을 위해 출산병원으로 오거나, 해당 날짜에 출산병원에서 당직을 하던 당직의가 출산을 담당해준다. 또한 미국 산부인과의 경우, 보통 그룹 프랙티스로 운영된다. (나중에 알고보니, 소아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원한다면 한명의 의사선생님께만 진료를 볼 수도 있지만, 보통 출산당일 당직 근무하는 의사가 분만을 담당해주는 경우가 많기에 일부러, 임신기간 내내 해당 산부인과의 다양한 의사선생님들을 만나보았다. 5-6명 정도의 의사선생님과 진료를 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출산 당일에는 처음 뵙는 선생님께서 당직근무를 하고 계셨다. 푸근하고 친절하지만 무언가 단호한 인상의 백인 여자 선생님이셨다.


내 병실이 준비되기 까지, 내진과 진통상황을 체크했다. 이미 5cm 가 열려있던 자궁문과 함께 나의 진통은, 내가 하도 꽉 잡아서 남편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Can I get epidural?" 말로만 듣던 무통 천국을 얼른 영접하고 싶었다.


화면 속 그래프에 보이는 진통 강도는 내려올 생각을 안하는데, 내 병실은 아직도 청소가 끝나지 않았고, 무통이라도 먼저 놔달라 했지만, 무통주사를 담당하는 의사가 준비가 안됐다고 한다. 그렇게 쌩으로 2시간 동안 진통을 겪었다. 남편의 머리채를 붙잡고 분만을 하는 산모들의 마음을 백분 이해할 수 있었다.


거의 정신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때쯤, 엉금엉금 기어가는 수준으로 드디어 준비된 나의 병실로 향했고,  병실에 도착하자 메시아처럼 느껴진 무통주사 의사선생님은, "안아프게 주사한다"는 소문대로 매우 스무스하게 나의 고통을 경감시켜주셨다. 무통주사 전에 소변줄을 꽂았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야무지게 소변줄도 꽂았다. 아프다고 했는데 진통이 워낙 아팠어서 인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병실 안은 꽤 넓었다. 분만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산모의자겸 베드(?)에서 무통천국을 느끼며.. 내 옆에서 세상 가장 불편한 의자에서 앉아있다가 누워있다가 하는 남편과 함께 아기를 만날 무한 대기를 했다.


야심한 새벽이라 아무리 병원이라 한들 고요함이 감도는 느낌이었다. 이따금씩 새로 들어온 산모부부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잠깐씩이었다. 주기적으로 내 담당 간호사가 들어와서 내 상황을 체크했다. “무통은 얼마나 맞을 수 있어? limit이 얼만큼이야?” 나의 질문에도 쿨한 대답을 해준 간호사 “as much as you need”


마약성 진통제에 관대한 미국 병원이라곤 들었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니 좋은듯 괜히 불안한듯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어쨌거나 2시간 동안 강렬한 생진통을 느꼈던 후라 그런지, 무통주사의 힘은 매우 감사하기만 했다.


자궁문이 9cm 열렸다고 했을 때, 내 담당의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분만을 마친 후 준비를 시작한다고 했다. 당장일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엄청난 무통빨로 쪽잠도 잤다. 대단한 무통…


아침 10시 반쯤, 의사와 간호사 두분, 총 세분이 들어오셔서 나의 분만(push) 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 분만에는 엄청난 어시스턴트가 있었는데.. 바로 우리 “남편” 이었다. 내 왼쪽 허벅지는 흑인 간호사선생님이 잡아주시는 동안, 내 오른쪽 허벅지를 잡아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oh m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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