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나는 아미가 아니다. BTS 멤버들의 이름을 안 지가 1년이 안 됐다. BTS의 실력이나 음악적 성취 같은 거 솔직히 잘 모른다. 그럼에도 최근 BTS의 빌보드 수상이 반가운 건 BTS가 한국어와 한국 문화 전파에 실로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서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러 태국에 갔을 때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는 "선생님, BTS 알아요?"였다. 물론 예/아니오가 필요한 질문이 아니다. '함께 BTS에 대해 이야기하자'라는 모종의 신호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오빠들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운다. 말과 문화는 분리할 수 없다. 오빠들의 고향, 생활, 음식이 전부 한국 문화다.
BTS는 모국의 컨텐츠를 세계 무대에 알려왔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고 영리하게. 대표적으로, 2018년 발표한 곡 <아이돌(IDOL)>에 국악 장단과 '얼쑤' '덩기덕 쿵더러러' 같은 추임새를 얹었다. 한글, 한복, 한옥에다 보름달 토끼, 호랑이, 소나무, 북청사자놀음까지 <아이돌>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는 한국적 요소는 수도 없이 많다.
BTS 멤버 슈가는 솔로곡 <대취타>에서 원곡을 과감하게 응용하며 아이돌로서는 낯선 시도를 보여줬다. 대취타는 국악을 전공하지 않은 한국인이라면 생소한 곡인데, 거기에 요즘 감성과 어우러지니 한국인조차 '와, 이거 뭐지?'싶다.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새롭다.
이쯤 되면 BTS의 행보가 '국위선양' 아이돌의 의무감인가 싶다가도, 2013년 일찍이 <팔도강산>에서 사투리 랩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뿌리를 드러내고, 해외에서 인기가 상승하던 무렵에도 계속해서 한국어 가사로 노래를 낸 것을 보면 그저 '자신들의 음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빌보드 핫 100에서 1위 한 <다이너마이트>의 가사가 영어인 것을 두고 아쉽다고 하는 글을 봤는데, BTS는 이미 from Korea로 자리 잡은 엔터테이너다. BTS가 하는 음악, 할 음악이 곧 한국적인 것이다. 꼭 그들에게 전통을 강요할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다방면으로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으니 한국어 선생 입장에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꼭 BTS가 한복을 입고 탈춤을 추지 않아도 BTS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은 늘어난다. 얼마 전에는 <Learn Korean with BTS>가 출시됐다. 한국외대 허용 교수님 연구팀이 참여했다고 한다.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한류 컨텐츠의 니즈는 높지만 그야말로 '날것'이기 때문에 교육적 측면에서는 활용하기가 어려운데, <Learn Korean with BTS>는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는 멤버들의 손글씨 편지도 있는데, RM은 이렇게 썼다.
세상의 많고 많은 언어들 중 '한글'이라는 소리를 만나 새로운 기쁨을 얻을 아미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많은 발판들 중 소중한 일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글의 위대함이나 한국어 교육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대신, 그저 아티스트와 팬이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 삼자는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한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세계에 흩뿌려진 언어 중 한국어라는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한국어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을 위해 한국어를 가르친다. 한국어가 세계 언어의 주류가 되지 못해도, 소위 말하는 '돈 안 되는 언어'일지라도. 그러니 BTS가 세계 무대에서 더 흥해서 한국어가 매력적인 언어로 더 많은 외국인에게 '발견'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