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립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이들 Jan 20. 2022

[독립생활] 가출도, 자취도, 출가도, 결혼도 아닌.

왜 독립생활이냐면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집을 나오는 시기에 따라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다르고 부르는 말도 다른 것 같다. 이를테면 10대에 집을 나온 경우 가출로 불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20대에 집을 나온 경우 자취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반면 나는 앞 자릿수가 3으로 바뀐 시점에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나왔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그냥 ‘집을 나왔어요.’라고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에게는 나의 ‘집 나옴’을 설명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다.


가출도, 자취도, 출가도, 결혼도 아닌, 나의 독립생활


그냥 ‘혼자 산다’고 말하거나, ‘자취한다’고 말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혼자 살 수도 있지만, 둘이 살 거나 셋, 혹은 그 이상이 함께 살 가능성도 있기에 어떤 삶의 형태를 미리 딱 규정해두고 경계를 설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근데 또 그렇다고 해서 그냥 자취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까탈스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자취’라는 표현이 싫었는데, 그 단어의 임시적인 느낌이 참을 수 없이 싫었기 때문이다. ‘자취’라는 단어에선 어쩐지 임시적 주거형태 속에서 삶의 임시적 시기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의 친구들은 대개 '결혼'이라는 단계를 통해 '독립'을 했고, 하고자 했다. 그리고 (가상의) 온전한 삶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대개는 결혼이 그 분기점이 되곤 한다) 원 공동체를 떠나 혼자서 임시로 꾸려나가는 시기로서 '자취'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2년 이상 숙고하며 준비했고, 앞자리가 3으로 올라가는 시점에 나왔다. 지금 내가 사는 삶의 형태 그 자체로도 온전한 삶이 되고 싶었다. '자취한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쩐지 임시적 주거형태에서 잠깐만 살다 갈 거라는 느낌이 강했고, 그렇게 명명하는 일이 지금 이 자체로도 괜찮은 내 삶의 온전함을 존중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생활을 '자취'라고 부르기 싫었다. 


물론 ‘자취’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손수 밥을 지어먹으며 생활함’이니 만큼, 사실 현재 나의 삶은 ‘자취’의 본래적 의미에 누구보다도 잘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발화되는 용례를 찾아보면 이미 자취의 의미는 약간 변화된 것 같다. 구글에 ‘자취’를 검색해 보면 자취 필수품, 자취방 인테리어, 자취생 요리 등이 연관되어 검색되는데, 다시 자취생 요리를 찾아보면 간장 계란밥처럼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간단 요리’류의 음식이 나오고, 자취 필수품을 검색하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들이 압축되어 나오고, 자취방 인테리어에는 적당히 싸고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가성비 넘치는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반면, 혼수용품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브랜드 제품이거나, 백화점 수준의 주방 가전, 스타일러나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와 같이 삶에서 반드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지만 삶을 보다 편리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제품들이 나오는데 이게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자취나 결혼 모두 살아오던 기존에 구성하던 삶의 방식이 달라지게 되는 경험인데, 삶을 구성하는 시작부터 자세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는 포인트는 침대와 매트리스를 고를 때였는데, 잠을 잘 자고 싶은 나는 갖가지 침대 매트리스를 찾아보며 한동안 매장도 직접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백화점에 가면 기본이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대 이상의 브랜드 매트리스를 보여주곤 하는데, 계속해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대를 듣다 보면 500만 원짜리 침대를 보아도 오, 이 정도면 저렴하네.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가 브랜드 침대 공장 직판 제품류를 보면 제일 비싼 제품이 100만 원대라서 오, 정말 합리적이잖아!라고 생각하게 되며, 그러다가 10-30만 원대의 인터넷 제품들을 보면 ‘이 가격에 매트리스 생산이 가능해? 싼 게 비지떡이라고 금방 버리게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얼마 전 결혼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분명 스몰웨딩으로 가족과 친지만 부르는 작고 소박한 웨딩을 해야지 생각했는데, 뭐 추가하고 뭐 추가하면서,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옵션을 계속 높이다가 보니 어느새 눈이 천장에 달리게 되었다는. 조화 말고 기왕이면 생화가 좋고, 인조잔디 말고 진짜 풀을 알아보다가, 칙칙하지 않은 차분하고 여린 연둣빛 풀의 종류까지 알게 되면서 괜찮은 스몰웨딩은 스드메보다 더 비싸고, 스드메도 알아보다 보니 어느새 호텔 예약을 알아보고 있더라는 그런 무섭고 재밌는 이야기였다.)


자취에는 이처럼 가성비 넘치는 것들이 나오고, 혼수에는 최고로 좋은 것들이 나온다. 이 간극 속에서 나는 내 생활의 노선을 결정해야 했다. 가성비 넘치는 프로 자취러를 원하지도 않고, 왠지 최고로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완벽한 혼수목록을 다 갖춰놓고 살기 시작할 것도 아니었다. 살아가면서 필요해지는 물건을 차근차근 들이되, (임시적이지 않은-) 하나를 사더라도 좋은 것을 골라 오래 쓰고 싶다는 삶의 철학이 닮긴 집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나에게는 이 독립이 임시적인 ‘자취’도 아니고, 반려인과 새로운 평생을 약속하는 ‘결혼’도 아니면서, 그러면서도 평생- 이러나저러나- 떼놓고 싶은 날에도 어떻게든- 데리고 살아야만 하는 ‘나’와 잘 지내기 위한 '우리 집 문화'를 규정하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나와 나의 삶의 형태를 명명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독립생활’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로 했다. 언어에 민감한 편이라 ‘이름짓기’에 쓸데없이 열을 올리긴 했지만, 말에는 힘이 있다. 어떤 이름으로 불러주는지에 따라서 이 삶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드러나고, 또 점점 원하는 삶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의 삶이 지금 이대로도 온전하길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