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팍틸 박경화 Jan 07. 2018

[4화] 나는 회사원입니다.

돈 벌기 쉽지 않구나



여기 진짜 맛있어. 미쓰리도 맘에 들걸?”

김대리님은 걸어가다 말고 대뜸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회식 장소는 사무실에서 5분쯤 걸어간 어느 빌딩 지하에 있었다. 빌딩을 들어서자마자 금빛 찬란했다. 입구부터 럭셔리한 대리석 바닥과 고풍스러운 그림, 그리고 가운데 알 수 없는 조각상까지..

공주라도 된 것일까? 눈이 휘둥그레져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영업팀 팀장님이 한마디 하신다.

“하하하. 자꾸 그렇게 둘러보면, 사람들이 이런데 처음 와본 줄 알아.”

‘아... 흠...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처음 와본 거 맞는데…’


계속된 사업 실패는 잦은 이사와 부모님의 부재로 이어졌다. 부모님은 늘 일을 나가셨고, 동생과 노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한 달에 한번 동네 목욕탕 다녀올 때 들리는 중국집 짜장면이 최고의 외식이었고, 그나마도 한 그릇을 두 그릇으로 동생과 나눠 먹었다. 자연스럽게 어린이날과 생일도 넘어가기 일쑤였다. 선물도 받고 싶고, 맛있는 사탕과 과자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부모님 몰래 교회로 절로 다니는 것이 유일한 일탈이었다.

그런 유년시절을 보낸 나에게 이런 럭셔리한 곳은 만화영화 속에서나 존재한 공간이었다.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화려한 곳이 지금 내 눈앞에 소환된 것이다.


식사를 위해 들어선 곳은 놀라움을 넘어 환희의 경지에 이르렀다. 작은 탁구대 같이 넓게 펼쳐진 철판 테이블에 사람들은 삥 둘러앉았다. 김대리님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메뉴를 시키자 요리사로 보이는 분이 많은 음식들을 들고 왔다. 아니 자세히 보니 음식이 아니라 음식이 될 재료들이었다.

‘치이~~~~~~’ 

달궈진 철판 위로 익숙한 듯 재료를 올리자 재료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선홍빛 아름다운 소고기와 각종 해산물들이 요리사의 지휘에 맞춰 현란한 춤사위를 뽐내었다. 여기에 불까지 더해지니 한편의 공연을 보는 듯 넋을 잃고 말았다. 넋도 잃고 말도 잃은 채 쳐다보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철판에서 시선을 떼고 둘러보니 멀리서 빙그레 웃는 영업팀 팀장님의 표정을 발견하고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미쓰리, 이런데 처음 와봤구나? 이게 바로 철판요리라는 거야.”

김대리님이 어깨를 툭 치며 설명해줬다.

‘이게 철판요리라는 거구나. 내가 처음 온 티를 너무 냈나?’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이런 공간과 식사자리가 익숙한 듯 편안하게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리사가 직접 건네 준 잘 익은 고기 한 점과 윤기 자르르 흐르는 야채를 입안에 넣자 그 황홀함이란….

감동과 황홀함 사이에서 정신없이 입에 음식을 가져가 문득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맛있어서 그런가?’

평생 먹어보지 못한 억울함은 아니었다. 억울함은 아니지만 신기함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갑작스러운 눈물의 정체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문득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난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우리 가족들은 먹어보지 못했을 텐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눈물샘이 요동을 쳤다. 억지로 꾹 참고는 “저어.. 화장실 좀….” 김대리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입안에 음식이 가득해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고급스러운 철판요리 집은 실내가 어두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사람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화장실로 달려가면서 다짐했다.

그래 이수경… 이제 진짜 시작인 거야. 여기! 내가 돈 벌어서 꼭 데려오자.’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한 번은 “미쓰리, 이 문서 하나만 쳐줘” 시원하게 벗어진 이마만큼이나 반짝거리는 금테 안경을 낀 홍 차장님이었다. 아래한글은 몇 번 써본 적이 있지만, 회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아무도 아래한글은 쓰지 않았고 워드, 엑셀 등 처음 보는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그가 내민 것은 연필로 휘갈겨 쓴 A4용지 1장이었다. 중간에 표도 있었다.

‘그래 고작 한 장쯤이야 금방 할 수 있을 거야. 아래한글이랑 크게 다르겠어?’


하지만 결국 내 예상과 달리 회사에서 완성하지 못했다. 자판 치는 것도 엉성했지만 무엇보다 프로그램이 생소해 기능적인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중간중간 다른 잡무도 주어 졌다. 집에 가져와 아버지 PC를 빌려 완성해 보려 했지만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봐도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피스 프로그램 책이라도 한 권 사는 건데…’

이윽고 마무리한 시간을 보니 새벽 5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고작 문서 한 장 작성하는데 밤을 새우다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한심했다.

어디 가서 밤샜다고 말도 못 하고, 다음날 출근하신 홍 차장님께 조용히 디스켓을 내밀었다.

“다 작성했어요.”

, 고생했어”

듣는 둥 마는 둥 본인일에 열중하고 있는 홍 차장님을 뒤로 한채 조용히 자리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보름이 흘렀다.

모두 각자 맡은 일로 정신없었고, 처음엔 뭘 해야 할지 몰라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무엇보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편하게 있던 공간이 아닌 어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공간이 주눅 들어 긴장이 몸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커피 한잔 마시려는데, 오늘따라 정수기 물이 떨어졌다. 사람들을 쓱 쳐다봤다. 다들 너무 바빠 보였다. 이제 막 입사한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민하다 문득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정수기에 그 큰 생수병을 얹는 일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늘 부모님의 부재로 맏딸인 내가 무거운 짐을 들거나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다.


조심스럽게 생수병 뚜껑의 비닐을 벗겼다. 그리고 휴지로 입구를 깨끗이 닦아냈다.

삐끗이라도 하는 날엔 사무실 바닥이 경을 칠 일이었다. 갑자기 걱정이 되어 부탁할 사람이 있을까 다시 둘러보았다. 뭔 일이 났는지, 김 과장님 주변으로 모여 수습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어 보였다.

~~~”

심호흡을 크게 하고 생수병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정수기에 생수병을 엎었다.

아니 엎어졌다.

갑자기 사무실은 시간이 멈춘 듯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모두 얼음이 되었다. 그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당혹스러움과 민망함이란…. 울고 싶었다. 아니 사라지고 싶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남자들은 대걸레와 손걸레, 휴지 등 각자 대동할 수 있는 무기들을 가지고 달려와 수습하기 시작했다. 나도 당황스러워 어찌할지 모르다가 뒤늦게 수습대에 합류했다. 김대리님이 멋쩍어하며 한마디 했다. “생수는 그냥 남자들에게 부탁해. 혼자 하다가 또 사고 치지 말고…”

돈 버는 건 참 힘들구나. 돈 버는 만큼이나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더욱이 업무 구분을 알 수 없는 일일수록 더 힘들었다. 나에게 생수병은 챙겨야 할 일이지만, 동시에 부탁해야 할 일이었다.


오후 4시 즈음되었을까?

영업팀 팀장님이 갑자기 부르신다.

“미쓰리 많이 바쁜가? 안 바쁘면 나랑 차 한잔 하지.”

차 한잔? 무슨 말씀을 하려는 거지.

갑자기 불안이 밀려든다.



<5화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3화] 두근두근 첫 출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