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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팍틸 박경화 Jan 03. 2018

[3화] 두근두근 첫 출근

수경이, 세상 중심에 서다


 

두근... 두근... 두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레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면접을 다니기는 했지만, 막상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설렘과 동시에 걱정이 밀려든 것이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실수라도 하면 어쩌지?

살포시 잠들었다 화들짝 깨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지금 시각 6시. 

이왕 잠 설친 거, 괜히 늦잠 자서 지각할까 싶어 일찍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었다. 면접 때 그 옷이다. ‘옷을 좀 사야 되나?’

회사를 출근하기로 했지만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고,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수습하느라 나에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거뭇거뭇한 새벽같은 아침,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골목길 사이로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한 겨울 아침 공기는 차갑다 못해 따가웠지만, 어찌 된 일인지 차가운 바람조차 상쾌하게 느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편하던 까슬까슬한 구두의 촉감마저 보드랍게 느껴졌다.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일까? 갑자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울려 퍼지는 구두 소리에 취해 있다 문득 포기했던 대학이 떠올랐다. ‘가만 생각해보니.. 대학은 내가 돈을 줘야 되지만, 직장은 나에게 월급도 주잖아. 월급 받으면 뭐부터 하지?’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삽시간에 한 달 뒤 1년 뒤가 펼쳐지는데...

“이번 정류장은 여의도 KBS 별관, KBS 별관입니다. 내리실 분은…”

앗! 벌써 다 왔단 말인가.


서둘러 버스에서 내려 회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번이나 왔던 장소였지만 오늘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인파 속에 섞여 함께 걷는 기분이란….

어제는 아이였는데, 오늘은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슬쩍 옆에 가는 사람들을 보니 하나같이 다 세련된 옷차림에 구두는 반짝거렸다.  나도 덩달아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 힘주어 걸었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았다.


이윽고 사무실 도착.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무실뿐만 아니라 복도까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왔다. 며칠 전 뉴스에서 봤던 부도난 텅 빈 사무실에 망연자실한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나는 어떡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급하게 뛰어 오는 한 남자.

? 거기 누구세요? 이수경 씨? 이수경 씨 맞네…"

자세히 보니 서류 접수해주던 젊은 남자였다.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8시 30분까지 출근하면 된다니까…”


사실 아침에 몇 시에 나왔는지도 몰랐다. 아침 뉴스 소리에 아침이 되었나 보다 했다. 겨울이라 깜깜하구나 했다. 더욱이 일찍이라 차도 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많이 춥죠? 오래 기다렸어요? 내가 일찍 나오길 잘했네…”

사무실 불을 밝히자, 어제 보았던 그 장소들이 일제히 되살아났다. 벽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었다. 너무 일찍 왔다. 사무실 책상 위로 가득 찬 물건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맞아. 작지만 알찬 회사라고 했지.’


좀 전까지 불안은 어디 가고 안도와 평화가 찾아왔다. 하긴, 부도난 회사에서 사람 뽑을 이유가 없지.

따뜻한 차를 한잔 건네받아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를 제일 반가워하는 분은 영업팀 팀장님이었다.

“출근 잘했어요?”

엉거주춤 일어나 “아.. 안녕하세요.” 마음으로는 무척 반가웠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 주눅들 성격은 아닌데.. 왜 이러지.

내 서류를 받아주던, 그리고 부도난 회사일까 불안해하던 나를 일순간 천국으로 이끌어 주었던 젊은 남자를 사람들은 ‘김대리’라고 불렀다. 김대리님은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멋진 양복에 조끼까지 갖춰 입고 꽤나 젠틀하게 보였다. 그렇게 회사 사람들과 하나씩 인사를 하며 얼굴들을 보니, 다들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나도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편안해질 수 있을까?


전임자가 그만둔 지 한 달이 넘어 인수인계는 김대리님께 받았다. 회사를 다니면 문서를 정리하거나 사무 보는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제일 먼저 알려준 일은, 사장님 오시기 전에 출근해 사장님 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처음 들어간 사장님 실은 담뱃재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뿌려져 있는 재떨이와 눌러 붙어있는 커피잔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우선 시키는 대로 치우고 깨끗이 닦아냈다. 그다음은 매일 아침 배달되는 여러 종류의 신문을 순서대로 가지런히 놓는 법을 배웠다. 신문 배치도 우선순위가 있었고, 그 안의 광고지는 모두 제거해야 했다. 사무실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까지 시키면 사장님실 기본 정리는 끝난다고 했다.


열심히 메모하고 나서려는데  “아! 그리고 이 난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물 주면 돼요. 난 기르는 것도 업무 중에 하나니까 잊으면 안 돼요” 김대리님이 가리킨 자리에는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난 화분 8개가 일렬로 서있었다.

‘업무 : 1주일에 한번 난 물 주기’

사실 우리 집에도 난이 많은 편이다. 화초와 난 좋아하는 어머니 덕분에 집안 곳곳이 화분 천국이었고, 딸인 나는 물 한번 준 적이 없다. 정확히는 싫어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만큼 난 질렸다고 해야 하나.

결국 화분을 키울 운명이구나. 혼자 빙긋이 웃는 나를 보고 김대리가 한마디 한다.

“난 기르는 걸 좋아하나 보네. 난 질색이야”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리저리 불려 다니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미쓰리’, ‘미쓰리’라고 불리면서…

면접 때는 이수경 씨라고 불렀는데, 입사하고 나니 왜 ‘미쓰리’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직장 다니는 미혼 여성은 다 미쓰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직장에서는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모두가 김대리, 허주임, 차장, 팀장 등으로 불리었다.


직장에서 얻은 또 하나의 내 이름 ‘미쓰리’.

좋지도 싫지도 않은 생경한 이름이었다. 이런 것이 직장생활이구나 싶었다.

퇴근하려고 준비하는데 영업팀 팀장님이 한마디 건네신다. “오늘 하루 힘들었지? 내일 저녁에는 미쓰리 환영회 겸해서 회식하려고 하는데, 김대리가 맛있는데 예약해 놨다고 하니까... 내일 저녁 약속 없지?”

환영회? 회식?

나를 위해서 회사 사람들이 환영회를 해주다니..

가족들과 외식한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니 외식을 다 하게 되는구나.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그래,, 난 환영받는 사람이었어.



<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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