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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Oct 17. 2024

바람도 유전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부모님의 이혼에 대하여 (4)


사람의 혀는 얇디얇은 칼날보다 얇고,

강철보다 강하고, 대못보다 길어서

가끔은 상대의 마음을 죽일 때 사용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떠난 시점에서 어머니는 정상일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따스하고 좋은 딸이 아니었고

우울해하는 엄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노래방에서 이별 노래만 부르면서 엄마의 눈에서 모든 눈물이 흘러나오게 했다.


스무 살의 나는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법도 몰랐고,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도 몰랐다.

그냥 깊게 슬퍼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현재가 얼마나 행복한지 말해주고, 놓아준 아버지를 그리고 아버지를 데려가주신 그 고마운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라고 했다. 엄마는 이제 자유라고.



모두 같이 살던 시절. 식사시간만 되면 엄마는 항상 긴장모드였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국이 기본으로 있어야 하지만 같은 국이 중복으로 나올 수 없다_가 아버지의 식사원칙.

그렇게 어머니는 매 식사마다 답을 모르는 학생처럼 안절부절못하셨다.


나는 모든 집이 이런 줄 알았다.

아빠는 갑 엄마는 을.


엄마는 대학교를 나오지 못하신 후회 때문에 혼자서 독학을 하시면서 대학을 입학하셨다.

집도 있고,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화가 별로 없지만 한번 화가 나면 아버지보다 엄하셨다.

그래도 평소에는 항상 장난이 많고 웃음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사실 아빠랑 말이 더 잘 통했어서 아빠 편을 자주 들었는데 엄마는 말이별로 없었다. 항상 '아버지니까 존경해 드려라.'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을 만큼 힘든 시절을 겪으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전혀 다른 사람. 공허한 눈.

그렇게 나는 엄마를 잃어버렸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나서 몇 년 동안 힘들어하시면서도 꿋꿋하게 이겨내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정말 멋지면서도 미안했다.

괜히 내가. 나의 말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 거 같았다.

내가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이 상황이 달라졌을까.

이 무한 질문의 굴레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러다가 엄마랑 남자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된 날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생긴 남자친구에 신이 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더 조심해야 돼"


"뭘?"


"너희 아빠가 습관이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야 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음, 아빠가 바람기가 있었으니까 피가 유전될 수 있다는 거지. 아무래도 너는 아빠의 딸이니까."


그 순간 내 모든 몸의 피들이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빠르게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정답을 알 길이 없었지만 엄마의 마음에는

이미 그건 사실이었다.


우리 엄마.

엄마였지만 더 이상 내가 바라는 엄마가 아니었다.


어쨌든 확실히 엄마와의 정신적인 독립, 육체적인 독립이 필요했다.


나는 살기 위해 독립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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