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라

나라는 사람은 몇개인가?

by 생태정원가

나는 지금 삼남매의 엄마이자, 아내, 큰 딸 등등등 생물학적 관계에서 갖는 역할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1인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이기도 하고 박사과정생이기도 하다. 정원과 관련된 책을 번역하고 정원과 관련된 책을 가지고 동료들과 스터디를 하며, 정원을 만들기도 조경설계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5년전 암선고를 받은 암생존자이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마음 속 깊이 꺼내고 싶지 않은 단어는 암환자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은 것도 같다. 하지만, 내 삶에 훅 들어온 그 단어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도 불쑥 불쑥 튀어나오고,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좋은 쪽이기도 하고 나쁜 쪽이기도 하다. 세상에 모든 것은 여러가지 면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발을 쓰고 박사과정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고, 지도교수를 바꿔가며 그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수업도 모두 들었고, 박사논문을 쓸수 있는 요건도 다 충족해서 문턱앞까지 와 있지만, 또 다른 과정이 시작되고 있다. 왜 나는 논문을 써야하는지? 왜 나는 박사학위가 필요한지? 왜 나는 공부를 하고 있는지? 등등 지금 과정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답도 없다. 하지만 더는 도망갈 곳도 없고 그동안 들인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비용도 어마무시하다. 아이들을 방치하고 학교에서 날을 새며 과제를 한 적도 있고, 가족은 두고 산으로 들로 답사를 다닌 적도 많다.


그러다 어쩌다 한번씩 일들이 들어와서 오랫동안 켜보지도 않던 캐드를 실행하기도 하고, 어깨 넘어로 보던 현장에 나가 직접 식물을 심기도 했다. 설계도 하고 시공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 한달을 보내고 있다.


이런 나에게 누구는 분명한 캐릭터가 없다고 한다. 아! 최근에는 사진미술관 도슨트도 시작했다. 나라는 사람앞에 수식어를 붙이기기 애매하다는 거다. 그렇다 나는 애매한 사람이다. 어디 경계에 있는 그런 사람이다.


설계와 시공 그 사이, 정원과 조경 사이, 그리고 이론과 실무 사이에 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과 환자 그 사이에 있고 엄마와 개인 그 사이에 있다.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다가도 다시 그 사이에 서게 된다. 그래서 어느 날은 작업복을 입고 어느 날은 정장을 입고 어느 날은 호미를 들고 어느 날은 노트북 앞에 어느 날은 청중들 앞에 서서 발표를 한다.


어느 순간 엄마의 자리는 작아질 것이고, 박사과정은 언제고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정은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불러질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뭐~ 안 와도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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