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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방이 Sep 22. 2022

풍경에 대하여를 또 읽고

풍경으로 살아가기

'풍경에 대하여'를 읽고 있으면 나 역시 풍경의 한 부분이, 혹은 풍경 자체가 된다. 고요해지고 침전해 들어가는, 동시에 긴장과 설렘이 나를 끌어안고 훨훨 날아간다. 너와 나는 이해되고 이해되어지고, 삶은 덧없다가도 충만해진다. 책은 눈으로 읽는 것인가? 머리로 읽는 것인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인가, '풍경에 대하여'는?


나는 책, '풍경에 대하여'를 사랑한다. 짝사랑이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거의 이해 못 하기 때문이다. 10%도 이해를 못 했다. 그러나 나는 '풍경에 대하여'를 읽음으로써 '어떠한' 풍경으로 남게 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느낌을 사랑한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의 풍경이 새로워지는 느낌. 자동차 경적 소리나 골목의 빈 화분들마저 새롭다. 모든 것에 조용한 햇살이 고요히 담기는 것 같다.


'풍경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궁금했다. 풍경은 현상인가? 관념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한참 고민하다 보니 문득 궁금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지?' 풍경을 생각할 때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을까? 내가 소멸되는 상태. 그건 분명, 이미 풍경이 아닐 것이다. 저자 프랑수아 줄리앙도 그건 풍경이 아니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줄리앙은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는 서양과 동양의 비교 철학으로 유명하다. 줄리앙은 풍경에 대해 서양과 중국(동양)의 관점을 각각 소개한다. 그리고 풍경에 대해 서양은 중국의 관점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줄리앙에 따르면 서양의 풍경은 관찰자와 풍경이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 관찰자는 풍경을 본다. 그것은 관찰자와 풍경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풍경의 범위를 제한하고 풍경을 규정하여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 관찰자는 사냥꾼이자 절대자이자 신이 된다.


그러나 중국의 풍경은 다르다. 산수(산과 물), 동서(동쪽과 서쪽), 그리고 풍경(바람과 빛) 등과 같이 모든 것이 의존 관계에 있다. 마치 상대가 없으면 내가 없다는 듯이. 임금은 백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백성은 임금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존재로 인해 의미가 생긴다.


중국의 언어-사상은 '존재'라는 것을 고립시켜 절대적인 의미, 즉 '실존'의 의미로 말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내가 "존재한다"라고 표현할 수 없고, 섬처럼 고립된 '나', 독아론적 '나', 더군다나 '관점'으로 분리된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중국의 풍경은 대립 관계를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산의 풍경은 물이 있음으로 해서 그 의미가 다채로워지고 달라진다. 같은 모양의 산일 지라도 곁에 강이 흐르는 산과 흐르지 않는 산은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의 풍경은 그렇게 서로서로에게 다가옴을 강조한다.


하나가 나머지 하나와 짝을 이루고, 모든 것이 서로에게 화답하며 그 관계가 강화되고, 그러면서 모든 가능성이 발현된다.


철학은 무엇인가? 사물을 보는 관점이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우리는 모두 다르게 해석한다. 절대적인 옳음과 그름은 없다. 시대를 초월하는 철학 사상도 없다. 다만 시절에 어울리는 사상이 다수에 의해 공유되거나, 철학자들에 의해 주장될 뿐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풍경으로 살아가기'가 옳은 것인지 아닌지 모른다. 다만, '풍경으로 사는 삶'을 소개함으로써, 삶의 풍요를 더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풍경으로 사는 것이 자본주의 논리로 어떤 이득이 주워지지는 않는다. 다만 풍경으로 살아가는, 어떤 다른 세계에 속함, 그 세계는 풍경인데, 풍경에 속해 살아간다는 인식은 자기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든다. 그래, 바로, 단지, '기분 좋음'. 그리고 '풍경에 대하여'라는 책의 효용은 어쩌면 그게 다일지도 모른다.


도덕이건, 종교이건 사회적 효용에 대한 주장은 오히려 이 책을 우리로 하여금 요원하게 만든다. 그저 기분 좋음의 상태를 잠시나마 영위하는 것. 달 구경을 위해 망원경이 아닌 와인 한잔을 가져가는 여유와 즐거움, 그거면 족하다. 내가 풍경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나를 배치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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