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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방이 Sep 19. 2021

'느릿느릿 복작복작'을 읽고

포르투갈 오래된 집에 삽니다

포르투갈 남자와 결혼해서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인 알비토에 사는 라정진 작가. 작가는 여유롭고 행복한 알비토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함께 알비토를 산책하는 기분이 듭니다. 저녁 식사에 초대되어 각종 치즈와 빵을 먹으며 소소한 대화를 하고, 식사 후에는 마을을  바퀴 돌며 산책을 하듯 독서를 즐겼습니다.


알비토에서는 모든 집의 현관 열면 바로 자연이 펼쳐집니다. 식사는 종종 앞마당에서 합니다. 식사 후에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어른들은 차나 술을 합니다.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 노는 모습도 보고 자연을 만끽합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아침 식사는 거르고 허겁지겁 출근합니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 야근을 하면(야근을 종종 합니다) 중국 음식 등으로 대충 때우고(거의 10분 만에 먹습니다) 다시 일을 합니다. "난 무얼 위해 살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여기 서울은 알비토가 아닙니다. 알비토처럼 살 수 없습니다. 도시 삶은 늘 빡빡하고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알비토에서는 온 마을이 가족이고 친구이지만, 서울 아파트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모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따뜻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시골 생활에 대한 동경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당장 시골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한국의 시골에서 그런 정서를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 두면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앞섭니다.


우리 집의 가난한 평온 속엔
사랑이 넘쳐흐르네
창가의 커튼과 달빛
그리고 또 이를 비추는 햇빛
조금만으로 즐거워지기에 충분하지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포르투갈의 집> 중에


작가는 책의 말미에 <포르투갈의 집>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시를 읽고 가만 생각해보았습니다. 서울에도 커튼이 살랑거리고 햇빛이 드는 방이 있습니다.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나누는 소소한 담소가 있습니다. 틈틈이 한강을 달리는데, 땀을 흘리면 기분이 좋습니다. 달리고 돌아오는 길에 성당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기도를 하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점심시간 직장 동료들과 수다도 좋고 저녁 술자리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라정진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을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도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 말미에 시를 읽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시골 마을을 부러워하기보다 내 삶에 드리워진 햇빛에 작은 화분을 키우는 건 어떨까 하고.


요즘은 자극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뉴스도 자극적이어야 잘 팔립니다. <느릿느릿 복작복작>은 긴장감 있는 스토리 전개는 없습니다. 그저 해질 무렵, 오렌지 색 하늘 아래 어느 시골 마을을 산책합니다. 산책하다 나무에 열린 과일을 맛봅니다. 맛본 과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풀벌레 소리와 작은 동물 친구들이 함께 합니다.  알비토를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됩니다. 꼭 가보고 싶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귀엽고 재밌던 부분을 소개하며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우리나라의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가 생각납니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었습니다.


알베르토(작가님의 남편분)가 젊었을 때 언젠가 한번은 어미가 출산 도중 죽어서 갓 태어난 새끼를 돌봐야 했던 적이 있다.

"어떻게 돌봤는데?"
"아기들 신생아 때와 비슷해. 3~4시간마다 우유를 줘야 해. 새끼지만 덩치가 있어서 먹는 양도, 빠는 힘도 엄청났어. 자다가 일어나 꾸벅꾸벅 졸면서 우유를 줬지."
"그래도 그 새끼양은 당신을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잘 따랐겠다."
"내가 어딜 갈 때마다 졸졸 따라다녔어.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지. 나도 예뻐하면서 잘 돌봐 줬고."

미소를 지으며 어릴 적의 추억을 풀어놓던 그는 이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슈파디냐라고 이름도 붙여 줬었어."
"어감이 귀엽네. 무슨 뜻이야?"
"작은 양고기 스튜라는 뜻이야. 엔수파두 드 보레구라고, 양고기와 감자를 넣어 만드는 스튜 요리가 있거든.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네. 거기서 따서 엔수파디냐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더 줄여 슈파디냐라고 불렀어."
"너무한 거 아냐? 양한테 양고기 스튜라는 이름이라니!"
"하하하, 왜? 시골 생활은 그런 거지. 슈파디냐는 사랑받고 잘 뛰어놀면서 행복하게 살았어. 평생 좁은 우리에 갇혀 항생제를 맞으면서 고기만을 위해 키워지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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