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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재희 Dec 04. 2021

쾌감과 불쾌감 사이

제주 오메기떡

이윽고, 그날이 찾아왔다.

     

오메기떡을 먹는다는 생각에 잠을 깨면서부터 군침을 삼켰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젯밤부터. 아니 더 솔직히는 제주행 비행기 표를 결제하면서. 어쩌면 제주를 가려고 했던 마음에 오메기떡이 크게 자리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 바로 ‘나’이니깐.    

 

이번에는 정말 <진아떡집>을 가고 말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지금 가장 뜨거운 공간에 대해  알고 있는 종짱(친한 친구 유나의 연하 남편, 존대도 하고 은근슬쩍 반말도 하지만 이름을  부르기엔 조금 그래서 ‘종짱 별칭으로 부른다) 일전에 여기는  가라며 친절하게 위치까지 알려준 덕에 알게  곳이다.      


눈을 뜨자마자 제주시에 위치한 ‘동문시장’까지의 거리를 확인했다. 제주여행 일정 가운데 제일가도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정이었다. 다른 건 상황에 따라 포기하고 변경해도 괜찮지만, <진아떡집>만큼은 절대 타협할 수 없었다. 사실, 지난 여행에서도 이곳을 가겠다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었으나 상인들이 더이상 나에겐 흥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시장을 몇 바퀴 돌고도 못 찾아 포기하고 다른 떡집에 방문하기도 했다. 다른 떡을 먹은 건 포기가 아니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음식을 먹지 않는 포기는 내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실패의 경험은 철저하게 공부하도록 만들었다. 그럼 또 그러겠지.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이 부분은 말 줄임표로 말을 줄이겠다. 여하튼, 왜 지난번에는 찾을 수 없었는지부터 잘 찾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경청했다. 복습과 예습의 시간을 수차례 거쳐 결전의 날에 당도했다.     


다부진 표정과 걸음으로 10시쯤 숙소에서 나왔다. 밤사이 비가 내려 축축해진 땅에 발을 디뎠다. 숙소에서 ‘동문시장’까지 가는지 다시 노선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가까운 거리라 정신을 잘 차리고 음성안내에 귀를 기울였다. 이내 버스에서 내려 시장 입구를 찾았다. 나의 짐작을 믿지 않고 돌아가더라도 학습한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여러 사람이 알려준 1번 입구를 정확히 찾아 들어갔다. ‘이쪽으로 쭉 가다가 왼쪽 골목으로 고개를 돌리라고 했지.’ 혹시 놓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골목만 보이면 좌우 상관없이 고개를 돌려댔다.


‘휙- 휙’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획’하고 돌리다 마스크 속으로 안도의 웃음을 밝게 지었다. 찾았다. 앗싸.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이곳을 지난번에는 왜 밤, 낮, 아침을 헤맸던 건지, 찾고 나니 약간 허탈하기까지 했다. 여하튼 그건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니 단번에 찾았다는 쾌감을 실컷 만끽했다. 그렇게 싱글벙글한 얼굴을 한 채로 <진아떡집> 앞으로 걸어갔다.     


싱글벙글한 얼굴이 울상으로 바뀐 건 몇 분 사이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떡집 앞으로 늘어진 줄 때문이었다. 선두에 서 있던 몇 명이 무표정한 얼굴로 싱글벙글한 나를 쳐다보긴 했지만 지금 기분이라면 얼마든지 기쁘게 줄의 마지막으로 가서 기다릴 수 있었다. 끝으로 가는 길에 눈으로 몇 번째인지 세며 갔는데 이 정도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기다릴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주 대단한 착각을 했지.     


몰랐다. 정말 몰랐다. 왜 많고 많은 오메기떡을 파는 곳들을 뒤로하고 이곳을 사람들이 찾는지, 왜 여기만 이렇게 줄이 있는지. 정말로 몰랐다. 찾는 거만 열중을 했지 그 외에 다른 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남녀커플이 내쉬는 한숨 소리와 짝다리, 팔짱 세트가 영 석연치 않았다. 줄에 서 있는 사람 중 누구도 나처럼 싱글벙글한 손님은 없었다. 싸늘했다. 싸늘함을 뚫고 매장 안쪽을 기웃거렸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 무리의 어머니가 커다란 가방을 양손에 들고 있었고, 가방을 들지 않은 분들은 만들어지는 떡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알았다. <진아떡집> 앞에만 유난히 줄이 있었던 이유. 만들어진 떡을 파는 게 아니라 주문과 동시에 떡을 담고 팔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을. 많은 직원이 빠른 손으로 쉴 틈 없이 뜨거운 팥을 펼쳐 식혀가며 오메기떡을 만들어 포장하지만, 수요가 공급보다 큰 상황. 갑자기 조금 전 한 대단한 착각을 철회하고 싶어졌고 나 역시 싸늘해졌다.


큰 욕심 없이 오메기떡 8알이면 됐다. 난 정말 그거면 됐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줄은, 느리게 줄어갔다. 단번에 찾았다는 쾌감을 금방 잃었고, 40분 동안 서 있다는 불쾌감을 곧장 얻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걸 좋아하지만 불호가 분명한 편은 아니라 어떤 걸 먹어도 웬만하면 입에 맞는 편이다. 그러니 줄까지 서서 먹어야 한다면 바로 포기하는 쪽이다. 아쉬운 마음이 들기 전에 바로 입에 음식을 넣어주면 되니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내가 줄까지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뻔했다. 10분 정도 됐을 때 여길 알려준 종짱의 아내에게 연락했다. 20분쯤 됐을 때는 여길 찾아간다고 알렸던 친구에게 연락했고, 30분쯤 됐을 때는 전날 우연히 제주에서 만나 <진아떡집> 가는 길을 자세히 브리핑해준 언니에게 연락했다. 불쾌감을 가득 담아 ‘나 이러고 있음’을 알렸다. 불쾌감을 한껏 끌어 올리던 그때였다. 드디어 <진아떡집>의 문턱을 넘었다.     


보슬거리는 팥알들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와 바삐 움직이는 손들을 보니 심장이 콩닥거렸다. 불쾌감에 ‘ㅂ’ 정도가 팥알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짝다리와 팔짱, 그리고 미간의 주름은 포기하기엔 일렀다. 함께 문턱을 넘은 앞쪽 커플도 여전히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직 오메기떡 정상에 오르지도 못했던 거다. 그 앞으로는 오래 기다려서인지 모두가 양손을 무겁게 해서 나갔다. 그런 모습을 계속 지켜봐 왔던 커플은 본인들도 몇 알을 사야 하냐며 남자는 적당히 사라고 하고, 여자는 다 저렇게 사는데 우리도 많이 사야 하는 거 아니냐며 서로를 한심하단 듯 째려봤다. 그 뒤에 덩달아 고민을 하는 내가 있었다. 떡이라는 것이 냉동실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면 지금의 맛과는 달라진다. 제아무리 잘 해동을 한다고 해도 저렇게 코앞에서 만들어진 것을 바로 먹는 것과 냉동과 해동을 거친 것은 다르다. 그러니 오늘 먹을 8알만 사자고 마음을 먹으면 곧바로, 다음 일정을 줄줄이 미루면서까지 기다렸는데 8알은 너무 소박한 거 아니냐는 마음이 충돌한다.


충돌하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다 보니 커플의 차례가 왔다. 주문하는 걸 들으니 여자가 이겼다. 그때까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급작스레 치고 들어오는 사장님의 친절함과 더 길어진 줄을 보며 “8알 주세요.”라고 말했다. 결정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이게 뭐라고 이럴까(그니깐 나는 정말 진심이다). 잠깐, 원하던 오메기떡을 샀다고 불쾌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아직은.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오메기떡 8알을 들고 웃었다. 환희의 웃음이 아닌 어이없음의 웃음이었다. 이 8알을 얻기까지 40분을 넘는 기다림을 견뎌냈다는 어이없음과 그래놓고 고작 8알을 샀다는 어이없음,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는 어이없음이었다. 일단, 제주시외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걸었다. 검정비닐 봉지 속 오메기떡은 가방에 고이 넣었다. 고이.


제주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가방을 열었다. 부스럭거리며 검정비닐 봉지를 꺼냈다. 또다시 부스럭거리며 페트상자에 담긴 오메기떡 한 알을 들어 올렸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이용해 아주 소중하게 꺼냈다. 떡 겉에 붙어있는 보슬보슬한 팥알을 최대한으로 보존해 입속으로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떡을 만지니 조금 전 불쾌감의 ‘부’가 희미해져 가고 기대감이 솟구치려 했다.     


오메기떡을 처음 먹어봤을 때 떡의 쫄깃함은 물론이거니와 특유의 옹골찬 질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원래 팥도 쑥도 좋아하는 편인데 입안 가득 딴딴한 쑥떡의 질감이 달지 않은 팥의 맛과 어울려 아주 만족스러웠다. 더군다나 너무 쫄깃하거나 부드러워 엿을 먹은 듯 입에 들러붙으면 맛있게 먹어도 다 먹고 난 뒤 혀를 쓸어내리느라 영 지저분하고 불편함이 가시질 않는데 오메기떡은 그렇지 않았다. 오메기떡의 쫄깃함은 아주 깔끔했다. 물론 팥 껍질이 잇몸에 붙을 수도 있으나(근데 진짜 잇몸에 붙어서 불편했었나? 기억이 나지 않네). 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음식을 먹는 순간을 기다리고, 그 순간을 사랑하는 내가 대합실에서 오메기떡을 들어 올렸을 때 기대감이 없었을꼬. 다시 생각해도 기대감이 솟구치고 오메기떡 먹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아무튼, 그렇게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오메기떡을 한입 크게 베었다. 아무리 조심을 기해도 팥알은 도망쳤다. 괜찮았다. 여전히 팥알은 많이 붙어있었으니깐. “쩝쩝” 귀에서 ‘쩝쩝’거리는 소리가 골을 울렸다. 쉬지 않고 ‘쩝쩝’댔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쩝쩝’보다는 조금 더 쫀득한 소리가 나는데 나는 이것을 “쫘압-쫘압”이라고 굳이 쓰고 싶다. 이 소리가 이 글에서 들렸으면 좋겠다.


“쫘압-쫘압-쫘압”      


손님 코앞에서 바로 만들어 바로 손에 쥐여준 떡을 바로 먹었으니 맛없기가 더 어렵겠지만 이건 진짜 맛있었다. 이건 진짜였다. ‘쫘압’ 소리 하나에 별이 하나. ‘쫘압’ 소리 둘에 별이 두 개. 그렇게 대합실은 ‘쫘압’거리는 소리와 별빛으로 물들었고, 40분을 기다렸다는 불쾌감에서 맛있어 죽겠다는 쾌감으로 바뀌었다. 세 번을 베어 물었더니 오메기떡 한 알이 배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부스럭거리며 다시 한 알을 더 먹어 볼까 망설였지만, 오메기떡이 먹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한 알씩 먹자며 더 먹고 싶어 안달 난 마음을 달랬다.     


“떡 진짜 맛있다. 40분 기다린 거 까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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