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의 술맛을 이어나가며
여행을 가면 맛있는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함께 걸치는 술은 서울 어떤 맛집에서도 맛볼 수 없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낯선 분위기와 함께 첫 끼를 시작한다. 그리고 낮이든 저녁이든 반주를 꼭 걸친다.
로컬 맛집을 좋아하는 편인데 맛집이라는 게 꼭 유명한 곳이 아니라 내가 맛있어 보이는 집을 간다. 예를 들면 주인 할머니의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나 창 밖 풍경이 좋아서 뭘 먹어도 맛있을 집.
여행지에서는 단순히 음식 자체뿐만 아니라 분위기까지 맛에 녹는 편이라 생각한다. 대낮에 마시는 반주도 그 분위기의 일부로 마신다. 그렇게 가볍게 백반에 반주를 걸치면 여행을 즐길 정도의 취기만 살짝 올라온다. 그리고 이내 낯설었던 여행지의 공기도 편안하게 바뀐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푼 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가고 싶었던 장소들을 가고, 보고 싶었던 풍경들을 실컷 보고 난 후 저녁이 되면 또다시 술과 음식 앞에 자리를 잡는다.
여행지에서 마시는 술은 특별하다. 휴식이라는 해방감과 평소에 볼 수 없던 풍경 그리고 여유로운 분위기는 술의 맛을 더한다. 막차 걱정, 택시 안 잡힐 걱정도 안 해도 된다. 온전히 그곳의 공기와 술에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호사는 길게 가지 않는다. 여행의 마지막날은 금방 밝아오기 때문이다.
마지막날 아침이 밝아오면 해장을 하고 집으로 갈 채비를 한다. 이 때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왜냐면 또 여행지에 취해버려 가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이별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비몽사몽 서울로 돌아가지만 마음이 무겁지 않다. 왜냐면 바로 여독을 풀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여독이라고 하면 여행으로 생긴 피로나 병이라고 한다. 나는 이걸 마음의 병으로 여긴다. 집에 가서 짐을 풀고, 다음날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망감에서 오는 마음의 병.
“서울 가서 마무리할 거지?”
“당연하지.”
나는 여독을 술로 푼다. 서울로 돌아가자마자 근처 맛집으로 향한다. 여기까지가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짐을 들고 식당에 앉아 삼겹살과 소주를 주문한다.
여행의 간단한 후기와 함께 평소 서울에서 술 마실 때처럼 대화를 섞어 나간다. 이렇게 현실에 다시 익숙해져 갈 무렵 취기가 올라온다. 그러면서 또 택시 안 잡힐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현실에 완전히 적응하게 되는 순간이다. 아무렴 어때? 낭만을 즐기다 왔고, 아직도 난 취해있는데.
다음날 아침. 월요일이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짐들을 뒤로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여행은 마치 꿈이었던 것 같고, 출근길의 상태는 어제 동네에서 약간 과음을 한 정도의 느낌이다. 여행이 꿈이라 해도 최고의 꿈을 꾸고 왔으니 괜찮다. 그렇게 또 다음 낭만을 기대하며 직장 동료들과 술 약속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