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웹툰 <미생>의 등장인물 중 김부련 부장이 있다. 원인터내셔널을 퇴사한 후 온길 인터내셔널의 대표가 되는 사람이다. <미생>은 김부련 부장을 이렇게 소개한다.
언제나 사전을 끼고 다닐 정도로 적확하고 단어 하나를 사용할 때에도 오해의 여지가 없기에 그의 보고서가 신입들의 오리엔테이션에도 자주 사용되었다.
깐깐하지만 의외의 속물적인 순발력도 있어서 실적을 잘 관리했으며, 자신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온 몸으로 떠맡는 스타일이다.
'문턱주의자'. 자신이 설정한 '문턱'은 이유없이 넘지 않으며, 넘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넘게 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2.
평소에 고민이 많은 편이다. 일하면서도 완벽을 추구한다. 주니어 시절, '만약 품질과 납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입니까?'라는 면접관의 대답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품질을 선택했다. 납기는 의외로 통제가 가능하고 조정이 가능하지만, 품질은 영원히 남기 떄문이다.
3.
나는 완벽주의자다. 그런데 그 표현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완벽주의자라는 말로는 완벽하게 나를 정의할 수 없기에 더 적확한 단어를 찾던 중 <미생>을 보면서 마음에 쏙 드는 표현을 찾았다. 그게 문턱주의자다. 단어 하나하나를 적확하게 쓰려고 노력하고, 깐깐하지만 순발력 있게 책임을 온 몸으로 떠맡는 김부련 부장의 스타일은 나와 많이 닮았다. 그래서 <미생>을 읽으며 김부련 부장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
4.
이런 내 성향이 심리학에서는 꽤 가지고 놀기 쉬운 장난감으로 보인다. 시작을 제대로 못 하거나, 자신이 만족하지 못해서 납기를 지키지 못 하거나, 협업할 때도 자기만의 기준으로 하기에 동료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받는다.
5.
그렇다고 완벽주의자는 불필요한가? 나는 이 사회에서 불필요한가? 아니다. 완벽주의자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문명과 문화가 과연 존재했을까? 우리가 아는 위인들은 모두 완벽주의자다. 이들은 누가 보기에는 '굳이' 불필요해보이는 것까지 챙기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더더더'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사회 곳곳의 완벽주의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다.
6.
나는 미디어에서, 주변에서, 혹은 누군가가 완벽주의의 단점을 떠들어대도 나의 스타일을 고수할 것이다. 나라는 완벽주의자는 아직 완벽하지 않겠지만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 나아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퍼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7.
참고로 완벽주의를 비난하는 사람 대부분은 진심으로 완벽을 추구한 적이 없거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완벽주의자는 단점까지 극복하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