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조명 때문에 밤에도 매미가 운다.
예민하신 분들은 숙면을 취하지 못해 고통 받고 있다.
나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문득 궁금하다.
심야에 매미가 운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인가?
1. 낮이 아닌 밤에 울어버린 어리석은 매미의 잘못이다.
2. 매미는 본능에 충실했을 뿐, 착각하게 만든 인간의 잘못이다.
3. 서로 잘 살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둘 다 잘못이 없다.
4. 서로 노력하지 부족하다. 둘 다 잘못이다.
이렇게 같은 현상이라도 신념에 따라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각 번호를 선택한 사람의 신념을 유추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번은 개인의 책임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
2번은 환경의 책임을 중시하는 진보주의자.
3번은 긍정적인 관점을 가진 낙천주의자.
4번은 부정적인 관점을 가진 비관주의자.
팩트를 제시해도 상대방을 온전히 설득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설득은 동일한 신념을 가진 사람끼리나 가능한 것이다. 신념이 다르면 설득 자체가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수사학의 3요소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를 제시한다. 차례대로 이성적인 논리, 감성적인 공감, 설득하는 사람의 매력을 의미한다. <시학>에 따르면 논리적인 설득은 공감을 이기지 못하고, 공감은 사람의 매력을 이기지 못한다.
여기서 사람의 매력에는 외모, 지능, 인연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제일 큰 비중은 신념이 차지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는 신념이다. 이는 사이먼 시넥이 줄곧 이야기하는 문장과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일이 아닌,
그 일을 하는 이유에 끌린다.
People don't buy what you do,
people buy why you do it.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 상대방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같은 신념을 가진 상대방을 찾아서 같은 편으로 만들고, 신념이 약한 부류를 추후에 포섭하는 게 세력을 키우는 가장 기본적인 정석이다. 왜 세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냐고? 그게 생존에 더 유리하니까.
이 방식은 정치와 경제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정당이 우선 극단층을 결집시키고 중도층 유권자를 공략하는 방법, 기업이 우선 핵심 고객을 모으고 대중 시장에 진출하는 방법이 그렇다.
특히 기업에서 미션을 내세우고 조직문화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모여야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의 에너지 낭비가 덜하기 때문이다. 신념이 다른 사람끼리 모여서 논쟁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구성원이 모인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구심점이 되는 신념이 필요하다. 이걸 모르거나 무시하고 구성원을 그저 합리적인 숫자로 설득하려는 경영자와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생존의 핵심은 같은 신념을 가진 무리가 얼마나 단단하게 결집하냐에 달려있다. 어떤 신념이 우세하냐에 따라 매미의 잘못일 수도, 인간의 잘못일 수도 있으니까.
이상 심야에 매미가 우는 소리를 듣고 떠오른 생각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