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학대식 Apr 14. 2020

착한 임대인

기본이 안된 지자체의 대응과 딜레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허덕인다. 마스크가 구하기 힘든 잇템이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정부의 어눌한 정책의 폐해임이 분명하다. 처음부터 마스크가 필요하고 강제되는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고, 이의 수급을 정확히 예측했어야만 했다. 코로나의 발병 이후 이것을 불법으로 매집하고 유통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비도덕적인 사람들을 찾아내 국민의 생명을 담보한 그들의 행동에 철퇴를 내리는 것이 신속히 집행되었어야만 했다. 설사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을 위해하는 일라고 해도 말이다.


우리 모두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로 인도한 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현 정부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하고 싶지 않다. 다 이겨낸 다음에야, 다 참고 견뎌낸 다음에야, 비로소 이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맞지 싶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계의 모범이 된다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이번 방역이 순간의 방심으로 물거품.. 아니 거품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유흥업소, 대형교회, 학원 등 필연적으로 근거리에 사람이 위치하는 장소에 대한 행정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결국 안정세에 접어든다는 뉴스에 눈 녹듯 내려앉은 우리들의 경계심이 이런 장소를 빌어 엄청난 비극으로 번져 나가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상당히 조심스러운 본인의 최근 경험을 하나 고백해본다. 유난히도 자기 자랑에 열을 올리는 정부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을 [착한 임대인]이란 캠페인과 관련해 얼마 전 강동구청에서 임대료 인하운동에 동참해 달라는 공문을 받았다. 물론 상가의 소유자인 어머님께 온 서신이지만, 대부분의 행정업무들은 본인이 처리하고 있기에 관리사무소에서 본인에게 사진을 찍어 보낸 것이었다. 이미 뉴스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본인이 접한 공문의 전달 방식과 내용에 기가 막혔다. 취지는 좋다.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포기한 경제적 부분의 페이백을 기재한 공문의 내용 역시 (전부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이해가 된다. 힘든 시국을 함께 이겨나가자는 큰 뜻은 분명 동감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것을 처리하는 과정은 정말이지 졸속이다.


국가나 국가기관이 그들이 소유한 시설의 임대료를 내리는 것에 앞장서고 전국에 건물주들이 건물 임대료를 내려 [착한 임대인] 캠페인이 사회 전반으로 퍼질 수 있도록 장려하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행정기관 특유의 강압적 고자세로 일관하지 않고 좋은 일에 힘을 보태어 달라 쿨하게 부탁하는 것은 멋진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두가 힘든 이때 조금은 여유가 있을 법한 임대인들에게 도움을 호소하자는 생각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임대료 인하를 종용받는 듯 느껴질 만한 문서를 관내의 모든 임대인들에게 일률적으로 뿌리는 일은 정말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 공문을 받을 임대인들의 심정 따위는 고려치 않았다


임대인이라고 다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들 나름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흔히들 임대소득을 불노소득이라 한다. 이 불노소득을 가지려면 대부분의 경우 은행 대출을 일으켜야 하고 이것은 분명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리스크를 지렛대로 임대소득이 발생한다. 즉, 위험을 무릎 쓴 투자가 선행되어야 임대소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위험은 전적으로 임대인의 몫이다. 은행이라는 기관은 절대로 이 위험을 같이 나누는 법이 없다. 그들은 그들이 대출해준 금액 이상의 금액을 담보로 설정하고 대출금의 이자는 물론 원리금을 상환하는 계획을 차주에게 강요해 그들의 리스크를 해치 한다. 물론 서류상으로는 권유 정도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본인의 모친 역시 다를 바 없다. 대부분의 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대출금의 이자와 원금 일부를 지속적으로 상환하는 약속을 담보로 대출을 진행했고 지금도 실행 중이다. 따라서 이 계획에 따라 자금이 집행되어야 하며 코로나 사태로 인한 예외는 없다. 게다가 소유한 물건 일부에 공실이라도 있는 경우라면 임대료 인하는 더더욱 힘든 일이라는 것은 쉽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 물론 어머님의 경우 공문을 받기 이전 이미 일부 임차인분의 월세를 조정해주셨지만, 위의 공문을 받는 순간 기분이 상하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분명 소유주들의 거주지 주소를 인지하고 있을 만한 위치를 가진 구청에서 개별 소유자의 주소가 아닌, 소유물이 위치한 건물의 관리단을 수신인으로 지정하여 달랑 한 장의 공문을 발송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본인 역시 건물의 한 층을 임대해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 억울함의 대명사인 "을"의 입장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겠다. 공문을 수령하고 며칠 지나 우연히 본인이 임대하고 있는 건물의 사장님을 주차장에서 만났길래 조심스레 물었다. 혹 사장님도 구청에서 임대료 인하에 관련한 공문을 받으신 적이 있으시냐고 말이다. 그리고  본인의 임대료는 전혀 감면받지 못했다는 문장으로 대답은 충분하지 싶다. 그렇다. 이 임대료 인하 공문은 각 구청별로 시행을 한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을 하던 그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공문을 내리기로 결정한 강동구청은 분명 조심스럽고 상냥하게 임대인들에게 협조를 구해야만 했다. 엄연히 개인의 재산권에 대한 포기에 관련한 내용이니 말이다.


각각의 구분 상가의 소유주들에게 따로 공문을 보내는 일, 좋은 일에 동조하자 자분자분 부탁하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이었던가. 구분 소유주들을 확인하는 일이 전혀 새로운 일도 아니고 이미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그들의 거주지 주소로 공문을 보내면 해결되는 단순한 행정을 이리도 성의 없이 처리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왜 남의 것을 포기하라 말하며 일말의 미안함도 없이 건물의 관리사무소에 달랑 한 장의 공문을 송부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가. 마스크를 매점 매석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에게는 쓸데없이 너그럽고 불노소득을 가진다는 이유로 임대인들에게 재산권을 포기해 달라 요구하는 데에는 이리도 당당한 것인가. 


미안한 것을 미안하다 말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부분이다. 의사표현을 막 시작한 어린아이가 제일 처음으로 자신의 표현에 힘들어하는 것이 잘못을 저지르고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다 말하며 사과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상대방에게 미안하다 고백하는 것은 큰 결심을 요구하는 것이다. 설사 그 미안함의 크기가 성인에 비해 엄청나게 작을지언정 말이다. 잘못을 해야만 미안한 것이 아니다. 설사 내가 미안함을 주는 그 장본인, 주체가 아니더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은 응당 미안하다 표현하는 것이 세상살이의 기본이다.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출 줄 모르는 인간들과 그런 조직에게 과연 [착한 임대인]과 같은 양보와 동조를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눈에 띄는 뉴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