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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학대식 Apr 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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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향 평준화되는 도덕의식

AIRBnB라는 서비스가 등장하고 해외여행에서 이 새로운 숙박 형태를 이용한 후기들이 올라오며 여행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한 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인터넷에 자신의 여행기록을 올리기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들의 힙(HIP)한 경험을 자랑하기 시작했고 SNS는 그들의 욕망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과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 AIRBnB, 그리고 이런 경험들을 쉽게 자랑할 수 있도록 고안된 SNS는 서로 궁합이 잘 맞을 수밖에 없는 3박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AIRBnB를 이용하는 수많은 소비자들이 서비스의 시작과, 그리고 그 선한 초심을 기억하기는 할까?


물론, 자신이 이용하는 서비스나 재화의 시작과 이에 얽힌 사연들을 모두 인지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래야 할 의무도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이런 여유를 허락지 않는다. 하지만 위와 같은 기사들은 인간이 그저 몰라서, 시간이 없어서 내지는 무지의 소치로 저지를 수 있는 실수 정도로 이해하긴 힘들다. 자금을 투자를 할 때 우리는 대부분 분석이라는 행위를 선행하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분석이란 행위 안에는 분명히 이것의 시작과 현재 상황 그리고 향후의 진행방향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가 전제되었으리라 짐작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즉 에어비앤비로 돈을 벌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기존의 다른 숙박시스템이 아닌 이 시스템을 이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자 마음먹었다면  다른 숙박업체에 비교해 어떤 장점들이 있는지 어떤 시스템으로 고객이 확보되고 어떤 식으로 수익이 분배되는지, 마지막으로 합법적인 경제행위인지를 분명히 인지함은 물론, 이 서비스의 시작과 선한 초심을 분명 인지했을 것이라 짐작한다는 말이다. 이런 분석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투자를 시작할 수 없는 법이다.


한 지역에 급작스레 몰리는 관광객의 숙박을 해결할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기존의 숙박업체들의 다각적인 이해와 양보 위에 시작된 이 AIRBnB라는 서비스는 분명 기존의 시스템을 반하는 일이었다. 기득권들은 지역사회의 더 큰  행복을 위해 기꺼이 수익에 해가 될만한 요소를 대승적으로 포용한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이 엄청난 영향력을 떨치며 그들을 압박하리라 짐작조차 못했겠지만, 분명 그들이 양보위에 서비스는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한 공유경제 서비스의 본질은 어느덧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고 이를 악용하는 이들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그중 무지로 인해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다반 수임을 잘 알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분명 삶의 어떤 부분에서 위법이나 범법을 행하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오피스텔 14개를 빌려 관할기관에 신고도 없이 에어비앤비라는 선한 서비스의 의도를 악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려 하는 위와 같은 행위는 분명, 의도적이었기에 비난을 받고, 처벌받아 마땅하지 싶다.  서비스의 본사가 한국이 아니었기에 당국의 제재가 힘들다는 법의 허점을 분명 인지하고 이를 이용하리라 결심했으리라 짐작하는  역시 지나친 논리의 비약은 아니겠다.


한동안 게스트 하우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숙박 형태가 유행하면서 기업적으로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어 본인 역시 가끔 그들의 무용담(?)을 영상을 통해 접했고 가슴 한 구석으로 혹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살펴보니 게스트 하우스 운영은 법적으로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존재했다. 물론 모든 게스트 하우스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한 경우가 불법인 경우가 많았다. 인허가를 제대로 받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으며, 내국인을 손님으로 유치하는 경우는 사실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에 너무나 근접했기에 언제고 폐업 등의 행정절차가 진행될 수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숙박업 인허가를 받지 않은 동해의 펜션에서 가스누출로 일가족이 세상을 떠난 참담한 사건 역시 이와 무관하다 할 수 없겠다. 경치 좋은 곳에는 여전히 허가를 받지 않은 수많은 시설들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들 대부분은 그들의 운영형태가 불법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돈을 번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유한정 한 돈이란 경제적 가치를 내 것으로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땅이나 바다에 심고 키워 때가 되어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에게 있는 무엇을 사유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네의 생각이지만 그리고 이것에서 본인 역시 완벽히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범법행위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일은 지금껏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식의 부당한 경제행위는 하지 않겠다 다짐해 본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이 단순히 멋져 보여 자신의 집 한구석을 빌려주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 새로운 시간을 경험하는 정도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설사 한 두 번 실수로(?) 내국인들에게 방을 내주는 범법행위를 저질렀대도 그 정도는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법적인 조치를 당하지 않는다. 물론 불법을 인지하고도 지속적으로 행한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피스텔 14개를 빌리고 기업적인 숙박업을 하며 세금은 하나도 내지 않는 행위, 그 행위를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떼어야 하는 30대가 자행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타락한 도덕의식을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최대의 미덕은 돈을 버는 것이라 했다. 누구든지 노력하면 부를 쌓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자본주의자들 스스로가 믿고 대중들에게 선전하는 그들의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 하지만 부의 결과만을 집중하며 그 과정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으면 위와 같은 참담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노동은 신성하다. 돈이 신성한 것이 아니다. 부가가치를 창출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 숭고하다. 과정이 의미 없다면, 노동은 신성한 일이 아니다. 쓸데없는 몸부림일 뿐이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오직 돈 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니 편법과 위법이 난무하다. 기본적 소양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며, 전반적인 사회의 도덕 수준이 하향평준화되었다. 나를 둘러싼 집단의 수준이 떨어지면, 자신의 가치관이 아무리 숭고하여도 이와 비슷한 색깔로 동하는 법이다.


최근 모든 사람을 분노케 했던 박사방 사건 역시 위와 같은 사회가 만들어낸 흉측한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그 채팅방에 접속해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 사건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결국엔 어떻게든 연계되어 있으니 말이다. 사회 전반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두 손을 놓고 방관하는 것도 우리의 책임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동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경각심이 우리 사회를 조금 건강하게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 자신한다. 코로나 19와 박사방 사건, 거기에 조잡한 대선까지 치러지는 2020년 4월은 시간이 흘러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너무 흉측한 기억으로 단지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머무르는 데에 멈추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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