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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학대식 May 29. 2020

눈에 띄는 뉴스

대탐소실 or 소탐대실

큰 것을 얻기 위해 약간의 희생은 의례히 감래해야 한다고 믿는 현대사회에서 [작은 것]을 얻고자 [큰 것]을 잃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소탐대실]이라는 사자성어로 우리에게 익숙한 다소 어리석은 이 인간의 행동은 기실 역사 이래 늘 존재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인가를 빠뜨리고 일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니 어쩌면 [늘 함께했다] 라 말하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이지 싶기도하다. 의미있는 무언가를 위해 내린 결단이 시간이 지나 의미없는 일로 판명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지는 곳, 그곳이 우리의 삶이고 인류의 역사이니 어느 누구도 어떤 것이 크고 어떤 것이 작은 것인지 쉽사리 확언할 수 없다. 오직 시간이 지나야 그것의 진가가 발현하는 법이니 말이다.

근래 우리 삶에서 너무나 쉽게 목격되는 이 전동킥보드에 관한 뉴스가 뜨겁다. 자전거 도로를 달릴 수 있고 심지어 운행을 위한 면허가 필요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기실 킥보드를 타는데 면허가 필요한 지도 몰랐던 본인은 위의 뉴스에 상당히 놀랐다. 분명 운전면허를 가질 수 없는 어린 학생들이 킥보드를 타는 모습을 수차례 목격한 후라 더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매일 아침 길가에 조금의 배려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킥보드를 보며 한숨을 쉬며 답답해했기에 그런 것 일수도 있겠다. 적어도 본인에게는 킥보드를 이용객들에게 그 어떤 조건도 에티켓도 없는 듯 느껴진다.


예상되는 통행의 예절과 규칙도 없는 도로위의 무법자는 이제 오토바이가 아니다. 기실 오토바이는 운행 시 시끄러운 잡음으로 그들의 존재라도 드러낸다. 사람들에게 "나 지금 가요" 하고 통보는 하고 자기 맘대로 행인 사이를 자동차 사이를 종횡무진 활주하니 말이다. 전기를 주 동력원으로 운용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동 킥보드 등의 이동수단은 이용자들에게는 이런 잡음이 전혀 없어 소음발생의 이슈에서는 자유롭지만 너무나도 미미한 그들의 존재감은(??) 보행자들에게는 더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어폰을 끼고 휴대전화를 보며 걸어가는 행인들에게는 잠재적인 암살자가 아닌가. 인도 사이를 무자비하게 휘젖는 킥보드로 인해 위험했던 경험은 이제 한 두사람의 특별한 경험이라 할 수 없다.


기실 전동킥보드는 인도를 주행할 수 없다고 한다. 2019년 3월,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전동킥보드의 자전거도로 주행을 허용하기로 하였고, 이에 따라 전동킥보드는 제 2종 원동기장치로 구분되어 면허취득 후, 안전모를 착용하여야 하며, 음주운전시에도 단속대상이 되며, 인도로 주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우리 주위에서 안전모를 쓰고 킥보드를 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그나마 이용객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인 운전 면허증마저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눈치를 보며 킥보드를 빌렸던 수 많은 무면허자들이 이제는 떳떳하게 킥보드를 빌리고 지금보다 더 수준 떨어지는 매너로 운전하고 한층 개념없는 주차를 할 것으로 예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헬멧이 없는 인도에서의 운행은 그러려니 넘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논고의 가치조차 없다.


이번 결정이 얼마나 큰 것을 얻을 수 있는지를 확언할 식견을 갖추지 못한 본인이지만 킥보드가 지금보다 훨씬 골치아픈 도로의 무법자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얼마되지 않는 자전거 도로를 운행할 수 있다는 점은 킥보드가 차도만을 주행해야했던 기존 제도에서의 위험성을 일정부분 상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주위의 자전거 도로는 그 환경이 매우 열악함을, 자전거 도로를 존중하지 않는 수 많은 자동차 운전자들로 인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없음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운전자중에 본인 역시 포함됨을 고백하며 반성한다.


물론 개중에는 모범적인 이용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도로 이동해야할 때는 보드에서 내려와 힘들게 끌고 가고 나름 최선을 다해 자동차의 주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 킥보드를 세워두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다(물론 이분들도 인도로 주행한다).하지만 이런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운행자들은 그들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니 킥보드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이를 바라본다. 일방통행의 도로를 역주행하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운행하는 그들의 모습에 혹시나 큰 사고로 이어질까 걱정한다.


운전을 하는 입장에서 또 인도를 걸어다니는 보행자의 입장에서 본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이 킥보드라는 이동수단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주위에서 킥보드를 이용하는 친구들의 [킥보드 예찬]에도(대부분 시간단축에 관련한) 한번도 이를 실행할 생각이 없었던 것은 평소 본인의 터프한(?) 운전습관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운전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평소에 넉넉하고 여유있던 사람도 운전대를 잡으면 쫓기듯 운전하는 것이 대부분인지라 또 목적지에 1분이라도 일찍 도착하는 것이 운전의 기술이라 오인하는 것이 본인을 비롯한 운전자의 마음인지라, 이런 사람의 마음을 믿지 못하는 것은 비단 본인만은 아니리라.


불편한 것을 편하게 만드는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을 이용해 인간이 편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자체는 우리 모두가 환영한다. 단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게다가 그것이 인간의 생명과 관련되는 이슈를 가지는 것이라면 개인적으로 서비스 이용에 제한을 두어함이 마땅하다 생각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며 늘 짜증나고 신경쓰이는 존재인 오토바이도 모자라 킥보드가 공존해야한다고 생각하니, 운전의 짜증은 차처하고 이용자들의 안위가 걱정이다. 그리고 킥보드에 깔리고 치일 가능성에 직면한 보행자들의 안녕이 더 걱정이다. 인간의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서비스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것을 도입하는 것은 과연 큰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하는 것인지 아니면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 일일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한다.


규제를 풀어 산업을 육성하고 사람들의 불편을 해소해주는 것은 분에는 이의가 없다. 단지 규제를 푸는 행위에 치우쳐 고귀한 목숨을 내어주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을 수업료라 여기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차도를 주행해야만 하는 킥보드 이용자들이 자전거 도로를 이용함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그들의 안위를 보장 받을 수 있다면 이는 분명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로안전과 생명보호를 위해 면허등을 요구하는 행위조차 강제하지 않는 것, 또 규제를 푸는 것에만 급급해 필요한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안전교육이나 교통교육을 이용자나 킥보드 공유업체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일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규제를 풀었으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 역시 정부가 해야할 일이다. 정기적인 안전교육 이수를 강제한다던지, 헬멧을 착용하지 않으면 정말로 강력히 단속을 한다던지, 무분별하게 세워진 킥보드를 강제회수 한다던지 하는 등의 직간접적인 조치를 통해 이용객과 이를 이용하지 않는 타인의 안전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조치들이 동반되어 모두가 이런 강제에 동의할때, 그때에야 비로소 책임있는 킥보드 운행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 믿는다.


독일에서의 짧은 경험을 하나 드러내며 생각보다길게 쓰여진 글을 마무리한다. 독일에 도착해 제일 많이 듣는 문장 중 하나는 "RAD WEG!!!!" 이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자전거도로"라는 뜻인데 이들은 이 말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의 주행을 방해하지 말라 소리친다. 별 생각없이 걷다보면 어느샌가 자전거도로를 침범하는 것이 자전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본인의 삶이 었기에 이를 고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어느 날인가 학교 앞 펍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귀가를 하려는데 한 독일인 친구가 꽤나 맥주를 많이 마신 터키 친구에게 '자전거를 두고 걸어가라'고 하길래, '왜냐' 물었더니. '경찰들이 검문을 한다'고 한다. 자동차도 아닌 자전거를 말이다. 운전면허를 취득하는데 엄청난 금액과 시간이 소요되는 독일의 엄격한 운전환경은 알고 있었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음주검사한다는 것은 미처 상상해보지 못했다. 본인의 매우 신기하다는 반응에 독일친구가 한마디 한다. "Sicherheit für alle"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런 말을 남기고 첼로 케이스를 메고 걸어가는 친구가 생각난다.


Jahannes alles OK bei D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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